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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an 28. 2021

람우 (蓝宇)

누군가는 '藍'을 사랑한다


■ 원어 제목: 람우 (蓝宇, 란위)

■ 영어 제목: Lan Yu

■ 장르 : 드라마 / 멜로 / 동성

■ 년도 : 2001

■ 감독 : 关锦鹏

■ 주요 배우 :  胡军,刘烨 등



(혹시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신 분이라면 여기서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배우 리우예(刘烨)에게 첫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람우(蓝宇)>입니다. 리우예는 세 번의 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 '세번의 금을 받은 영화계 대배우'의 의미로 삼금영제(三金影帝)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가 그 첫번째 수상작입니다. 이 작품 외에 <미인초(美人草)>, <추흉자야(追凶者也)>가 나머지 두 편의 작품인데, <추흉자야>는 일전에 매거진에서도 리뷰한 적이 있죠. 리우예가 데뷔작인 <그 산, 그 사람, 그 개(那山那人那狗)>부터 신인배우로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면, 그 이름이 진정 빛나기 시작한 계기가 이 <람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데뷔가 1999년인데 첫 남우주연상 수상이 2001년이니까,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의 성공이 무척 빨랐군요.


포스터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요즘 중국 드라마처럼 브로맨스로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인터넷 소설 <북경고사(背景故事)>를 영화화하였는데, 이후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감독 관금붕(关锦鹏)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마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다루는 주제도 주제고, 중간에 천안문 항쟁까지 등장하는 영화라 대륙 출신 감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것이고, 홍콩 출신인 관금붕이 메가폰을 잡습니다. 배경은 소설과 동일하게 북경입니다. 80년대부터 9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 급변하는 중국 대륙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형세와 그 안에서 체제와는 반대된 길을 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죠.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바로 전에 리뷰한 중국판 <아빠! 어디가?>를 통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 아빠들 중 리우예(刘烨, 유엽)와 후쥔(胡军, 호군)은 막역한 대학 선후배 사이로 나오는데, 둘이 함께 호흡을 맞춘 영화로 이 영화가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동성애가 느껴지게 하는 자료화면은 나오지 않았지만요. 누군가 그 영화를 언급하자 두 아빠 얼굴이 홍당무가 되더군요. 둘 다 이성애자인데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강한 중국 북방 출신들이니 이 영화를 찍을 때 여간 고생한 것이 아닐 겁니다. 또우빤에서 영화를 찾아보니 평점이 좋습니다. 일단 찾아서 보기로 합니다.


영화는 돈 많은 플레이보이 천한동(陈捍东, 배우: 후쥔)와 가난한 대학생 란위(蓝宇, 배우: 리우예)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가진 것도 많고, 지키고 싶은 것도 많고, 남의 눈도 꽤 신경 쓰는 한동은 사랑에 대한 태도도 그렇습니다. 그에 비해 가진 것도 없고, 젊음의 풋풋함과 순수한 감정만 가진 란위는 사랑에 있어 늘 진심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사회적으로 좀 더 보편적인 모습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한동은 란위를 거절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그 결혼 생활 속에서 감정적인 결핍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다시 란위를 찾죠. 란위는 한동이 그를 버렸을 때 크게 상심하고 오래 힘들어하지만 한동이 다시 그를 찾고 그의 마음을 밝히자 다시 그를 품에 안습니다. 란위는 한동이 겪게 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한동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을 포기하고 공사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죠. 결국 이것이 비극을 낳지만요. 이 일련의 모습들은 굳이 그들의 성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누군가가 사랑을 할 때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죠. 사실 제 생각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이 작품의 제목이 될 뻔한 또 다른 제목을 꺼내볼까 싶습니다. 최종적으로 이 영화에 붙여진 이름은 담백하게 남자주인공 이름만을 언급한 <란위>입니다. 하지만 최종 제목을 짓던 과정에서 이런 제목이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란'을 사랑한다(有人喜欢蓝)>. 그 누군가의 성별이 무언지, '란'의 성별은 또 무엇인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죠. 감독은 사랑을 하고 받는 주체의 성별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사랑은 다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좀 아쉬운 건, 이 영화에 붙여진 프랑스어 제목은 <Histoire d'hommes à Pékin>입니다. 해석하면 <어떤 남자들의 역사 in 북경> 정도가 될까요? 결국 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영화제 출품 시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 <Lan Yu>라는 제목으로 출품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앞서 이 영화는 '체제에 반하는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고 적었습니다만, 그 대표적인 인물이 주인공 란위입니다. 란위는 그 인물 설정부터 완전히 반체제적 인물입니다. 중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동성애 성향이 있고, 천안문 항쟁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죠. 예전에 제가 매거진의 다른 글에서 중국 드라마나 영화는 인물의 이름으로 줄거리를 스포하거나 인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일이 많다고 했는데, 란위 역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중국을 상징하는 색은 '붉은 색'이죠. 하지만 란위의 이름 속에는 람(藍), 즉 푸른 색이 담겨져 있습니다. 란위는 태생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미 체제에 반하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단 이야기죠.


여기서 다시, 앞서 언급했던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을 꺼내봅니다. <누군가가 '란'을 사랑한다(有人喜欢蓝)>. 란(藍)을 란위의 성으로 생각하면 저렇게 해석되겠지만, 만약 저 란(藍)을 그냥 푸른 색의 뜻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파란 색을 사랑한다'. 즉, 모든 사람이 다 붉은 색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누군가 파란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는 다소 다른 란위의 모습이 눈을 끌어서일까요? 영화는 시종일관 처음부터 한동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내레이션 역시 한동의 입에서 흘러나오지만, 막상 영화에서 저의 눈을 사로잡은 건 란위였습니다. 란위의 그 젊고 풋풋한 감정, 한동을 바라보는 눈빛, 사랑을 믿는 그 표정들이 나올 때마다 왠지 모르게 스무살 소녀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리우예가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죠. 물론 후쥔의 연기 역시 훌륭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영화 개봉 후 한동안 많은 동지들(同志, 중국어로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 그가 정말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줄 알고 연락을 했다고 하니까요.


서두에 언급했지만, 사실 두 배우에게 있어서는 이 작품을 연기하는 것이 무척 부담이었을 겁니다. 둘다 '사나이 대장부가 무슨 이런 연기를!'하고 펄쩍 뛰었을지도 모르죠. 리우예야 뭐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배우나 다를 바 없었으니 거절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겠지만, 이미 연극판에서 경력이 있던 후쥔은 좀 망설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확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두 배우의 막역한 관계로 봤을 때, 후배 살려주려고 선배가 약간의 희생을 감수했거나, 후쥔을 너무나 맘에 들어 했던 관금붕 감독이 끝까지 그를 고집했거나, 둘 중 하나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를 봤고, 여운이 오래 남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됩니다만, 아쉽게도 그 내용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영화나 드라마처럼 위챗 모멘트에 감상문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성적 지향이라는 것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누군가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언젠가는 이들의 사랑이 여느 커플들의 그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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