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하고 며칠이 지난 다음, X가 말하던 회사에서의 시끄럽던 사안들이 어느 정도로 정리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X에게 수습 잘 되었냐고 연락을 취했다. 그랬더니 X는 며칠 후에 시간이 되니 그때 만나자고 했다. 만나려고 연락한 게 아니었고 취하한 마당에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X 쪽에서는 일이 어느 정도로 마무리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수락했다. 만나고서 고소를 취하한 것을 후회하기까지는 고작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X는, 취하한 마당에 하는 말이지만 왜 다른 사람에게 다 이야기를 했냐며 그건 충분히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 상급자로서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날 내가 혼자 있는 방에 들어간 것도 그런 맥락에서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꿈속에서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하고 X의 자리로 옮겨온 아무 잘못 없는 직원까지도 불편하다고 했다. 이는 모두 그 일을 겪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래서 X에게 내가 겪은 일은 무엇이냐며, 명예훼손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최대한 둘이 풀고 싶었다고 말했다. X가 제대로 사과를 못했기 때문에 나는 너무 힘들어서 어딘가에 하소연을 해야 했는데 그러면 나더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혼자 누르고 참으라는 의미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X는 그건 아니지만 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냐고 답해서 모든 이야기가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이 문제는 두 사람 선에서 해결하자고 처음에 말한 바 있었다. X는 이 시점에 둘이 해결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고소하는 것은 무슨 경우냐고 물어왔다. X는 내가 고소를 결정한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고소 취하 이후의 상황 수습이 아니라 고소한 이유에 대해 심문을 받고 있었다. 어쨌든 대답은 했다. 나는 사과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X는 사과에 성실하지 않았기에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책임을 지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뜻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X는 내게 배신감을 느꼈다며 정말 감옥에 집어넣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지, 고소해서 마음이 풀렸는지, 결국은 너도 힘들지 않았는지, 고소가 답이 아니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문 폭탄을 쏟아냈다. 이 기간에 괴로웠던 것은 사실이라 힘들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였지, 당신이 처벌받을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아니었으며 당신이 처벌받으면 내 마음이 풀리지 않았어도 당신이 책임지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내가 문제 삼을 명분이 없어진다고 답했다. 여기까지의 대화 내용이 하도 답답해서 나도 내가 왜 고소했냐고 따지러 왔냐고 물었다. X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문제를 잘 풀고 싶다며, 답이 아닌데 대체 왜 그랬냐고 내게 물었다. X는 고소가 진행되어 내게 사과할 때 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했던 것인지 나로서는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내가 받는 질문들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소를 취하해달라며 나에게 했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을까.
한편 X는 자신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도 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앞서 밝혔다시피 X는 나에게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겠다고 회사의 몇몇 사람에게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고 그 정보가 내게 들어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소를 취소할 때, 만약 내가 고소를 취소하면 내 손에는 아무 카드가 없고 X는 무고와 명예훼손을 걸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형사는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X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해서 고소를 취하했다. 아마 담당형사가 X에게 주의를 준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X는 형사에게 들었다며 내가 취하 이후의 보복을 걱정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온 회사에 무고에 명예훼손 이야기를 하고 다닌 것을 아는데 그럼 그 걱정이 안 되겠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한 X의 답은 매우 자신의 입장에 따른 것이었다. 그건 고소가 진행되면 그렇게밖에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X가 이 이야기를 하고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이 의미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라고 말했을까? 난 아닐 것으로 본다.
이 상황을 겪고 보니 고소를 취하한 일이 후회되었다. 고소가 진행되는 기간에 참 힘들었지만 취하하고 돌변할 것 같았으면 절대 안했을 것이다. 형식상으로 내 마음을 풀겠다고 마련한 자리였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황당했다.
내가 피해·가해 당사자끼리 일을 해결하자고 했던 모든 시도는 스토킹의 증거로 전락했고 고소도 취하한 상태. 경찰고소를 취하했어도 아직 감사실이 남아있으니 정 화가 안 풀리면 그쪽에 다시 신고하라는 말을 듣기는 했다. 감사실이 원래는 보안을 유지해줘야 맞는데 어차피 직원들이 로테이션으로 감사실에 들어가기 때문에 직원들과의 친분관계나 혹은 조사하는 과정상에서 이야기가 퍼진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원래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맞지만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경우다. 내가 이 일을 감사실에 알린다면 그때는 공식적인 처벌 외에 사내에 소문을 퍼뜨려 매장시키려는 의도까지 포함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