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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20. 2019

고소 취소 후 다른 기자들의 이야기

내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조직은 언론사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이 조직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언론사의 사회 고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이미 그 전에 알았으면서도 여전히 기자 개개인에게 추상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었다. 극심한 감정적 고통을 겪으면서 여기서 벗어나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다른 기자들이 이런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처리할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음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개인적인 해결을 시도하고자 이 이야기를 가해자에게 꺼냈을 때,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가해자 두 명만 알고 있었다. 블랙아웃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인정하지도 못했던 가해자는 당연히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 역시 사적인 해결을 원했으므로 처음에는 가해자 이외의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이 반년 동안은 나와 가해자 외에는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간간히 감정이 터져 다른 직원에게 X의 신원을 제외하고 나의 피해 사실만 알린 적은 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사람 선에서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X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인정하기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내가 X와 대화하는 것으로 사과를 받기도 어려웠고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X의 상관을 찾아 이 이야기를 전하고 X의 사과를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X는 기묘한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랬다면 미안하다는 내용의 조건부 사과였다. 이 이야기에 더 화가 났던 게 내가 예민했던 탓은 아닌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지금 다시 되새겨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히 있었던 사건으로 누군가는 잠도 이루지 못하며 고통 받고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게 가정이고 조건이라는 데 화가 났다.

이 이야기를 내가 여러 동료들에게 알렸을 때 나는 나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의심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 대해 말을 해도 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결정을 못한 상태에서 넘치는 감정을 참지 못해 몇몇 사람에게 이런 저런 내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적잖이 놀랄 일이 있었다. 함께 일했던 여직원들이 나에게 자신의 피해 사례를 이야기한 것이다. 고소를 전후해서 내가 이야기를 했던 내부 여직원은 비율상으로는 소수지만 적다고는 할 수 없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내게 상세히 말해 주었다. 아내가 있는 선배로부터 느닷없이 포르노 영화를 메일로 받은 이야기, 버스 내에서의 성추행, 명백한 성추행 상황을 목격하고도 그게 뭐가 문제냐며 넘긴 동료들, 그 탓에 그를 억지로 용서해야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다른 사건으로 가해자가 처벌되었다는 이야기, 성폭력 목적으로 지인이 자신의 집 문을 깨뜨려 집에 침입하려고 했다는 이야기, 가족으로부터의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가운데는 최근의 이야기도 있었고 오래된 이야기도 있었다. 이 조직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놀랄 만큼 많았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갔다고 한다. 자신의 깊은 상처를 내보여서까지 나를 위로하려고 했던 그들에게는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후 나는 사과에 대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던 X를 고소했다. 이후로 X는 내 마음이 풀리도록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이 제안에 동의해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나와 비슷한 일로 휴직한 여직원은 내가 그 일을 겪고도 회사에 다니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라고 편해서 다닌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괴로웠고 휴직한 여직원이 부럽기도 했다. 심지어 회사 차원의 지원을 받는 소송에 걸렸다는 이유로 나에게 일을 모두 넘기는 상황을 겪어야했고 가끔은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그래도 버텼다. 나가면 피해자로서, 혹은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일 때문에 내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는 게 이 일을 벌이고서 지키려고 한 단 하나의 원칙이었다.

결국 이 일은 내가 고소를 취하하는 방향으로 끝이 났다. 고소를 취하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나는 우선 나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들에게는 고소 취하 사실을 알렸다. 내가 고소를 취하한 후 동료 기자 한 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X로부터 고소 도중에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메시지에는 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메시지를 받은 기자는 전화해서 지금 협박하는 거냐고 말하려다가 내가 고소한 것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그런 식으로 개입하면 일이 어떻게 번질지 몰라 그냥 참았다고 했다. 고소가 취하된 후에도 일괄적으로 고소 취하 사실을 알리는 단체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 하나를 첨부했다고 한다.

한 번은 업무의 연장으로 어떤 기자가 직장 내 성범죄 피해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묻기에 나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기자는 잠시 말을 못하더니 혹시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냐고 되물었다. 이 기자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는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고 그에 대해 사과를 표시한 것이다. 이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낄 만큼 지쳐 있었다.

사건에 대해 내게 묻는 사람은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내 버전과 X의 버전 두 가지가 돌고 있었고 이 둘은 내용상 차이가 커서 구분하기 쉬웠다. 이 기자가 가진 정보는 내 버전에 가까웠다. 나는 질문에 답했지만 나 역시 정보의 출처를 되물었다. 기자는 처음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추궁 끝에 출처가 되는 다른 기자를 알아냈다. 그런데 그 기자도 내가 사건에 관해 전혀 알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기자를 찾아가 다짜고짜 정보의 출처를 물었다. 말하지 않으려고 해서 두어 번 더 물었더니 컴퓨터에 최고위 간부 한 명의 이름을 타이핑했다.

이제야 거미줄 같은 정보망이 제대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해당 최고위 간부와 안면이 없었으므로 또 다른 출처가 있었을 텐데 그 출처가 누군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딱히 그 정보 제공자를 찾아가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 생각도 없었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는 게 맞겠다. 내가 그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무슨 타격을 입겠는가. 이 일은 그저 진작 경고를 듣지 않은 내 탓이었다. 그러니까 이 회사는 회사 차원에서 이미 모든 사건 내용을 수집했고 파악하고 있었지만 나를 위해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사건 해결을 위해 조직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피해자인 나를 위해서도, 가해자인 X를 위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고 커지지 않는 이상 이들은 아무 일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그게 나를 위한 일이든 X를 위한 일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조직이 타격을 입지 않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X는 물론이고 나도 조직이 타격을 입는 선까지 일을 진행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내가 그 안에서 죽어가든 비명을 지르든 내버려두면 되었다.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이유를 들어 나를 해고하면 될 일이다. 참 기자다운 대처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사안을 지켜보고 동향을 파악하지만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최고위 간부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이 회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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