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없는 첫 번째 삶
"물을 무서워하면서 계속 물속에 있다는 거네요."
"그러게요."
"물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 생각 안 해봤어요. 무섭지 않을까요?"
17년 차. 인생의 40%를 한 가지 직업으로 살아왔다고 대단하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징그럽다고 대답했다. 그래, 2008년에 시작해서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이 일만 해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안 힘들었겠냐만은, 아니, 오히려 얼마나 괴롭고 힘든 시간들이 많았겠냐만은 그래도 좋아서 버텼다. 이 일로 얻는 성취감이 좋아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가 있어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찰랑찰랑 내 가슴팍에 물이 차더니 이내 목까지 차오르고 나중에는 아예 잠겨버렸다. 일과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엔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예상을 못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심각했다. 몇 번의 상담으로 나를 알게 됐고 수면 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숨을 쉬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살아보겠다고, 더 이상 CD로 살지 않고 카피라이터로 살겠다고 회사를 옮겼다. 그런데 웬 걸, 자꾸만 눈에 보이는 거다. 이 조직의 문제가 뭔지,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뭘 해야 할지. 또다시 "정복"하려 들지 말라는 농담 섞인 친한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결국 나는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팀장으로 발령이 났고 2년 반 뒤에는 50명의 그룹원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장이 되었다. 같은 그룹에 있던 팀장들 중에 가장 늦게 입사했으나 가장 먼저.
그때라도 그만뒀어야 했나?
12월에 발행될 퍼블리 콘텐츠에도 적었지만, 팀장에서 그룹장이 된다는 건 계단 하나쯤 오르는 승진이 아니었다. 실적의 압박, 리더들의 푸념, 상사의 폭언을 견뎌야 했고, 무엇보다 나를 계속 견뎌야 했다. 충전기를 꽂지 않으면 켜지지도 않는 노트북처럼, 한동안 방전 상태였던 나를 말이다.
작년 봄이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게. 정말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낼 수 있는 일이 보이는데 멈추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얻는 크고 작은 성취감들이 계속해서 나를 흔들었던 것 같다. 볼트와 너트 같은 삶이 아니라 엔진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러다 보니 남의 차까지 끌고 가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맘쯤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다.
나를 지탱해 주는 큰 기둥이 무너지고 있었다. 일과 연애. 그제야 그걸 제외하고는 제대로 세워놓은 기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어드벤처 영화에서 작은 돌덩이가 굴러 떨어지다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장과 온갖 조각상들이 부서지고 결국엔 동굴 자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그게 나였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커다란 댐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다가 점점 균열이 커지기 시작하자 '상담'이라는 임시방편으로 막았던 거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괴로움이 댐을 붕괴시켜 버렸지만.
이제는 약물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 말로는 자책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1년 가까이 약을 조절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이사때문에 옮기게 된 병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인정욕구가 엄청 강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내가? 그랬나? 성취감이라기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힘들게 일하는 거였나?
"제가 물을 무서워하거든요? 수영도 못하고 물고기도 엄청 싫어해요. 그래서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심해에 잠겨있는 느낌이에요. 끝도 모르고 저 깊은 곳에... 그러다 이렇게 병원에 와서 상담도 하고 약도 먹으면 수면 위로 조금씩 떠올라요. 그런데 쓰나미가 오고 해일이 몰려와요. 그러면 저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잠겨요.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에요."
"물을 무서워하면서 계속 물속에 있다는 거네요."
"그러게요."
"물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 생각 안 해봤어요. 무섭지 않을까요?"
바다에 한평생 살던 인어공주도 갑자기 두 다리 얻고도 멀쩡히 육지로 나가 잘 살았는데, 나는 왜 물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했을까. 의사는 불안하면서도 그 물속에서의 삶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 거라고 했다.
그랬다. 나는 어쩌면 대기업의 뽕에 취해있었는지도 몰랐다. 곧 1,000명이 다 되어가는 대기업에서 50명의 그룹원을 이끄는 리더라니.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복지도 좋고 누구나 들으면 알 법한 클라이언트를 가진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니.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일하는 건 쉽지 않다고. 겨우 25명밖에 안 되는 상위 리더그룹의 일원이고, 심지어 그중에서 여성 리더는 단 6명뿐인데 그중 내가 한 명이라고. 그 뿌듯함에 빠져있었다. 인정한다. 그게 나를 점점 더 물속으로 집어넣는 일인 줄도 모르고.
더 이상 이렇게 약을 먹으면서 버틸 순 없다. 그래, 그만두자.
퇴사를 결심하면서도 쓸데없는 고민들을 했다. 나약하다고 하면 어쩌지, 그 정도 위치면 그만큼의 스트레스는 당연히 받는 거라고 하면 어떡하지. 이직하게 되면 어차피 비슷한 포지션으로 갈 텐데 새로운 회사에서 날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엄청나게 유명한 대행사 출신도 아닌데, 일을 당장 그만둬 버리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
이제 나를 남들에게 뭐라고 소개하지?
지난 17년 동안 여러 번 이직을 하고 퇴사를 했음에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했다고 해서 감정의 동요가 크게 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퇴사를 결심한 날 밤,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결심을 번복할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강제로 시킨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울었다.
상사에게 퇴사를 통보한 뒤에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30분이 모자랄 만큼 떠들었다. 그리곤 의사에게 덧붙였다.
"저에게 지느러미랑 아가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코도 있고 입도 있고 두 다리도 있더라고요."
퇴사 후 4일 차. 잘 먹고 잘 자고 있다. 평생을 '직장형 인간'으로 살다가 한순간 벗어난 게 아직 어색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연차를 쓴 것 같지만 편안하다. 약을 줄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료에게, 선배에게, 클라이언트에게 그리고 나아가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지나치게 애썼던 나를 돌아보고 있다. 30년 전까지 멀리 돌아가 언제부터 나에게 이런 인정욕구가 생겼는지, 그리고 그게 언제부터 왜곡이 돼서 나를 옭아맸는지 천천히 알아볼 참이다.
지금 당장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읽고 쓰고 다시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