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땀을 수확하는 마음으로 올해를 키웠다
맨땅에 떨어지는 여름을 한 방울씩 닦아내며
햇살은 속도를 내어 나에게로 오고
오동통통 열매들이 속삭인다
맺은 것인가?
열린 것인가?
성취를 맛볼수록
내가 선 땅이 줄줄 흘러내린다
나는 땅의 열매
서툰 걸음으로 겨우 매달려 있다
맨 땅에 욕심만 심어놓고
옹기종기 자라난 계절들
드문 드문 빠트린 계절을 파헤치며
나의 땅과 대화하는
오늘은
맺은 것인가?
열린 것인가?
땅과 땀은 받침 하나 차이만큼 아주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2023년 12월부터 2014년 6월. 겨울부터 여름 초입까지 나는 새벽 알바를 했다. 새벽 3시부터 오전 일이 끝날 때까지 근무해야 했던 사업장은 산 밑에 있는 곳이라 커다란 마당도 있었다. 노는 땅을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쓰던 사장님이 화기애애 잘 지내는 직원들을 위해 작은 텃밭으로 내어주었다. 그래서 일하는 언니들과 의견을 모아 4~5월에 씨나 모종을 심고 여름 먹거리를 가꿨다.
이른 새벽에 일을 마치고 아침이 되면 퇴근길인 텃밭으로 옹기종기 모여 아직 싹도 안 나온 땅을 유심히 살피며 ‘이건 뭘 심은 거지?’ ‘크면 알겠지~’ ‘얜 아직도 시들시들해’ ‘벌써 잎이 커졌네!’ 식물에 관한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 말을 듣는 건지 심어 놓은 초록이들은 저마다 속도를 내어 쑥쑥 자라났다.
텃밭을 서성이는 우리들 대부분이 맨땅에 밭 가꾸는 건 처음이라서 서툴기도 하지만 아침 햇살이 제법 뜨거운 계절이다 보니 돌 섞인 땅을 갈 때부터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는 내내 꾸준히 땀을 흘려야 했다. 잠깐 주저앉아 얼굴이 벌게지도록 상추를 솎고 호박 넝쿨을 뒤적이고 고추 여린 잎을 따주는 동안 땀이 줄줄 흐른다. 땅에 떨어지는 내 땀과 그곳을 기어다니는 이름 모를 벌레들, 작은 언덕에도 포르르 굴러떨어지는 자갈들까지 한통속이 되어 여름을 키웠다.
사흘에 한 번씩 상추를 따 먹으며 땅의 맛인지 땀의 맛인지 모를 여름의 맛을 느꼈다. 꽃 끝에 매달렸던 애호박이 오동통해져 내 손에 들어왔을 땐 어찌나 신이 나던지! 마트에서 천 얼마만 주면 사는 채소 하나가 이렇게 기쁠 일인가? 대량 생산하는 냉장고 채소가 아니라 따듯한 흙의 온기와 내 땀이 담겼기 때문이겠지. 키 작은 가지 나무에도 작고 소중한 가지 꽃이 꽃을 틔웠고 기특하게도 작은 열매도 달렸다. 고된 새벽 일에도 아침에 땅을 훑어 보고 땀을 흘리는 시간이 재미있는 치유가 됐다.
수확하는 마음, 성취하는 마음, 그리고 잔잔한 땀의 시간이다.
지난 여름을 기억하는 땅과 땀의 맛을 기억하며.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