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창밖으로 상상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언제나 어디론가 도망치기만 하는
그러나 여전히 고여 있던 눈물
밤하늘 별들조차 사건사고처럼 느껴지던
매일이 장례식 같았던 나날들
기침 소리 하나에도 내 안에
불행해지는 상상을 심었습니다
눈물은 그곳에 갇혀 있습니다
불행을 기다리던 내가
그곳을 꽝꽝 두드리며 기다립니다
쏟아져 나오길요
왈칵 또는 펑
쏟아져 나가길요
그날은 이틀을 내리 병원에서 보낸 뒤 엄마를 잠시 두고 집으로 향했던 날이다. 조직 검사를 하느라 엎드려 있는 엄마를 계속 살펴야 했기에 유독 피곤했기에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에는 아빠가 먹다 남긴 동태탕이 식어있었다. 불을 올리고 상을 차렸다. 냉장고를 여니 소주 한 병이 보여 자연스럽게 꺼냈다. 그 일련의 과정은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는 행동이었다. 그저 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랐다.
소주를 마시는 내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내리 눈물을 쏟았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모르는 채 밥을 먹었다. 슬픔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은 채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소주 한 병을 아무렇지 않게 비운 뒤 문득 생각했다. 아, 이렇게 병드는 건가?
그날 이후 난 집을 치우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잠들기 직전까지 집이 무너지거나 범죄자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상상을 했다. 거의 매번 엄마의 장례식을 떠올렸고 혼자 도망가는 상상에 빠졌다. 동생이나 아빠가 집에 있으면 보기 싫어 사소한 일마다 신경질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엄마가 자다 일어나 앉아 기침하며 헛구역질을 했고, 내 귓가에는 “넌 행복할 수 없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간병은 가족 모두가 병드는 일이다. 한 사람의 병이 가족의 병이 된다. 당연히 아픈 당사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간병하는 이의 마음은 상상 이상으로 허약해진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별거 아니리라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이 큰 사고처럼 다가온다. 난 그 눈물 이후로 결심했다.
"가족이라는 걸 만들지 않을 거야"
시대가 변했어도 내 나이쯤 되면 미혼이 놀라운 일이 된다. 비혼도 그렇게 흔한데, 결혼 안 했다는 말에 "정말요?" 소리를 듣게 된다. 이유를 물으면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가족 안 만든다고. 사실 의식 없이 눈물을 쏟은 그날의 기억을 다 꺼내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냥 쿨한 척 군다. 그런 슬픔을 나눠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여전히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는 다짐을 곱씹는다. 어쩌면 여전히 내 안에 못다 흘린 눈물이 고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