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의 명대사
회사에서 문서 작업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누르는 단축키는 나의 구세주인 'Ctrl'과 'Z'이다. 이전 작업을 지워주는 단축키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일도 못했을 것 같다. 생각 없이 누르다 보면 바로 이전의 작업을 날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오타는 수도 없이 많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하루에 이 단축키를 누르는 경우는 적어도 수십 번은 될 것이다.
검색하다 맘에 드는 사이트에 가입할 때 설정하는 비밀번호는 한 번이 아닌 두 번 입력을 요구한다. 생각지도 못한 오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적 오류(human error)'에 대한 예방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가정 속에서 만들어진 방법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실수를 많이 한다. 비밀번호를 누를 때 오타가 흔히 나오기도 하고 실수로 0을 하나 더 넣어 큰일이 나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내손으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우리의 삶에 떨어질 수 없는 개체가 되면서 매일 키고 끄는 일이 많은데 그때 갑자기 넣던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몇 번이나 팝업으로 뜨는 '비밀 번호를 변경하세요'에 못 이겨 견디지 못하고 바꿨던 모양인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손은 기억하겠지라며 잠시 후 다시 눌러봐도 틀렸다는 메시지뿐이다.
큰일 났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때만큼 큰일이 일어난 것이다. 반복된 비밀번호 오류로 컴퓨터를 아예 못 키는 상태가 되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다행히 자비로운 누군가가 캡처까지 해가며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글을 찾았다. 한국인 만세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니 비밀번호가 초기화되었다. 나도 모르게 컴퓨터 넘어 자세히 알려준 그에게 존경의 폴더인사를 하게 된다.
미국의 스프링필드라는 도시에 사는 호머, 마지, 바트, 리사, 매기 심슨가족이 있다. 노란색 피부와 동글동글한 그림체, 알록달록한 색채로 우스꽝스러운 삶 뒤에 훈훈하게 결말을 끝내는 방식이다.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대표적인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때 심슨 가족이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2021년 34기가 방영이 확정되면서 31년에 이르는 방영 연수에 접어들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심슨 가족은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벗어나 그야말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 풍자에만 집중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공감할 수 있는 가벼운 일상적인 주제를 내세워 그 사이에 풍자적 개그를 집어넣어 웃음을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심슨가족은 현대 미국 애니메이션의 커다란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멍청한 아버지, 멍청한 아들 그에 비해 정상적인 딸과 어머니가 나온다. 애니메이션이라 편안하게 누워서 웃을 수도 있지만 또한 그 안의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한 장면에 여러 의미를 담기도 하고 또 생각을 하게끔 하는 장면이 지나가기도 한다. 큰 연관이 없는 두 사건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래의 캡처는 심슨가족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니깐 연필 뒤에 지우개가 붙어 있는 거지."라는 대사와 벽에 붙은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직접 치우세요.'라는 메시지는 심슨가족이 그저 애니메이션이 아닌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수십 년간 사랑받은 이유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아이들도 실수하고 넘어지니깐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 보호장비를 끼는 것이고 시험을 보다 틀릴 때가 있어서 연필에도 지우개가 있는 것이다. 수정테이프, 찌그러진 차 땜빵, ctrl+Z 키, 수선점 등 인간의 실수에 대비해서 많은 장비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이기에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하기도 한다.
미국 학부 시절, 기말고사 기간에 정신없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시계를 보면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서둘러 도서관을 떠나다 보면 입구에는 붉은색 조끼를 입은 학생들이 몇몇 서있다. "Safety Walk*?"라 물어본다. 어두운 저녁이자 위험한 동네이기에 주차한 차가 있는 곳이나 원하는 곳까지 안심귀가를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어느 날 선배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마약 흡입이나 총기 소지 등 물의를 일으킨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내린 봉사활동 명령이라는 이유였다. 그 이후 친절하게 묻는 학생들을 달리 보였지만 이 또한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실수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계속 사회에서 배척시킨다면 돌아올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Safety Walk: 안전한 귀가를 위해 봉사자들이 주차장 또는 집까지 동행하는 안심귀가 서비스
형법을 위반한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는 집 고치기, 화재현장 복구, 제방복구, 수해복구, 장애인 돌봄 서비스, 길거리 청소, 폭설 피해 복구지원 등을 하게 된다. 사회봉사명령을 실시하는 이유는 교도소 수용 시 예상되는 사회와의 단절을 방지하고 지도 감독으로 재범을 방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또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장점도 있다.
물론 형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해야겠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이해하고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주기도 해야 한다. 법무부 블로그 기자인 초등부 김규민 학생이 사회봉사명령 대상자와 관련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방문한 곳은 결코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봉사 명령자와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가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은 법무부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우리가 만든 법과 질서는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한 실수에 대해서는 연필에 달린 지우개처럼 한번 지울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또 자신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본인 손으로 치우는 기회를 주는 건 어떨지? 아무리 지워도 흔적은 남아있겠지만 지우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더 깨끗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지우개의 힘을 빌어 사회로 간절히 돌아오고 싶어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 심슨 가족: https://namu.wiki/w/%EC% 8B% AC% EC% 8A% A8%20% EA% B0%80% EC% A1% B1
- 법무부 블로그: https://blog.daum.net/mojjustice/8707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