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물건 2.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나는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홍대 앞 미술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1분, 1초라도 아끼고 싶다는 내 마음을 헤아려준 엄마는 학원 근처에 하숙방을 구해주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하숙집의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지낼 방을 안내해주었다. 긴 복도의 세 번째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 아주머니는 옥색으로 페인트칠되어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문 너머 스위치를 켜니 형광등의 푸른 하얀빛이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는 스폿라이트를 받듯 그 조명을 한껏 받은 화려한 연두색 빛깔의 이불이 놓여 있었다.
눈부신 아우라는 곧 그 이불이 극세사임을 알게 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색색별 극세사 이불이 유행했던 때였다. 극세사에도 '급'이 있다며 엄마는 정전기가 나지 않는 값비싼 것으로 골랐다고 내게 누누이 말했다. 연두 빛의 바탕색 위에 보라색, 다홍색, 바다색의 큼지막한 원형 패턴이 나름 조화를 이루었다. 마치 유록색 잔디밭 위에 저마다 다른 색의 얼굴을 내민 꽃들이 어우러진 모습처럼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모양새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 아래의 두 명의 동생을 홀로 돌보아야 했던 엄마는 나를 서울에 바래다줄 수도 단 하룻밤을 함께 지낼 수도 없었다. 딸을 홀로 보내야 한다는 말에 주인아주머니가 어떻게 이 늦은 시간에 아이 혼자 서울에 보내냐며 엄마를 나무랐다고 한다. 그 말은 서울에서 혼자 입시를 치르는 딸을 향한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번졌다. 흘러넘치는 딸에 대한 가여운 마음을 주워 담으며 엄마는 당신을 대신해 새로 장만한 이불을 보낸 것이었다.
입시를 치르는 동안 매일 똑같이 찍어낸 것과 같은 일상은 지루함보다는 깨서는 안 될 고요에 가까웠다. 입시의 배경은 이 혹독한 겨울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부터 10시가 넘도록 그림만 그리다 뒤엉킨 마음으로 하숙집으로 돌아오면 방 한 구석에 깔아 놓은 이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던 엄마처럼 보였다. 나는 방의 불빛도 거두지 않은 채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노곤한 몸을 웅크리고는 깊게 숨을 내 쉬었다. 꼭 포근한 엄마 품에 안겨있는 듯했다.
달력을 두 번 넘길 만큼 시간은 흘러 어느새 새해를 맞이했다. 불완전한 성인이 된 나는 가, 나, 다군 세 번의 입시 시험을 치렀다.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두 달간 나를 재워준 이불과 단출한 짐을 꾸리고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 소리에 고속버스 안에서 깜박 잠에 들었던 것을 알아챘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번잡스러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수만은 절대 안 된다는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대학에 합격했던 것이었다.
나의 홀로서기 시작을 함께 한 이불은 지금도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여전히 서울에서 가족과 떨어져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씩 다르지만 실은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간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그 이불을 꺼낸다. 추운 겨울 고단한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이가 없어도 그 이불은 항상 내게 있다. 이불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다독였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며 따스함 속에서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