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다

by 은영

십 년 만에 버린 파자마 바지가 있었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빨간색 체크무늬의 파자마 바지였다. 젊었을 때부터 옷을 만드는 일을 했던 엄마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종종 옷을 만들어 입혔다. 성인이 된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갔을 때 엄마는 내게 그 파자마 바지를 건넸다. 그 후, 기숙사 생활을 청산하고 원룸에서 자취를 할 때도 나는 밤마다 그 바지를 입고 잠에 들었다. 엄마는 멀리 있지만 곁에 있는 기분을 들게 하는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런 파자마 바지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었다. 무릎은 갈수록 나오고 결국엔 헤져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라이너스의 담요와 같은 파자마 바지를 어찌해야 할지 모를 마음에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나 이거 어떻게 해?"

"이걸 아직도 입고 있었어? 그냥 버리면 되지 뭐."

엄마의 답변은 너무나 간단했다. 나는 그제야 그 파자마 바지를 떠나보내도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못내 아쉬웠던 마음을 엄마의 말로 덜어내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바지를 버린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요즘 인기 있는 라이브 방송 소재로 유명인의 가방 안을 공개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은 그 사람의 취향이나 최근 관심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렇게 평소 지닌 물건으로 우리를 설명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고장이 났거나 유행이 지났거나 하는 경우가 그렇다. 사용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쓰임새가 실용적이지 못한 것들도 여기에 속한다. 또한, 구매와 소비가 빠르게 일어나는 요즘 같은 시대는 무언가를 버리는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 관련 콘텐츠를 보다 보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로 '잘 버리는 것'을 손에 꼽는다. 정리를 잘하고 최소한의 것들로 살림을 꾸리는 것이 대세인 시대에 필요 없는 것을 버릴 수 있는 과감함은 중요한 라이프스타일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겐 저마다 제수명을 다했는데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계절이 바뀌어 대청소를 할 때마다 쓰레기라는 범주에서 용케 살아남은 것들은 우리의 골머리를 썩히게 한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도 결국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무릎이 헤진 나의 파자마 바지처럼 남다른 사연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어느 순간 특별한 것이 되어 우리 곁을 오래 지킨다. 그런 물건들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만이 설명할 수 있는 의미에 닿곤 한다.

과연 물건만 그럴까? 인간에게 버릴 수 없는 것은 손에 잡히는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건에 깃든 사연 못지않게 인상 깊게 남은 기억은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 어떤 기억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어떤 기억은 트라우마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게 좋든 싫든 과거의 지나간 기억들은 얽히고 얽혀 결국 현재의 삶을 구성한다. 그 사람의 생활, 관계, 가치관을 이루게 한 것들은 이처럼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기억의 타래 속을 누비다 보면 표지만 보고 판단했던 책의 진수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누가 관심이 있겠냐, 하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나라는 사람을 내보이자 조심스레 첫 글을 시작한다. 더불어 20세기 막바지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의 글이 나름의 시대적 정서를 함께 나누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본다.

그럼 나의 버리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씩 소개해보겠다.


이 자리를 빌려 몇 해 전 떠나보낸 파자마 바지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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