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물건 1. 지나간 추억과 만들어 갈 추억 사이
한라산의 눈꽃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우리는 분주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한 이번 산행은 생각에서 그치던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해 보자는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앞뒤로 이어지는 등산객의 행렬로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이 산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일행처럼 여겨졌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두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앞만 보고 한참을 오르다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민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그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올 때까지 잠시 멈추어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장갑이 날아가버렸어요."
그날 한라산의 바람은 무척 거셌다. 한라산의 가파른 산길 보다 바람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버거울 정도였으니까. 보통 바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바람 때문에 민이 내가 빌려준 장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괜찮다는 말로 상대를 안심시켜주는 것이 보통인데 그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장갑은 나와 34일간의 스페인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함께 걸었던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겨울이었다. 겨울에 카미노를 가겠다는 내 말에 산티아고 대학인 순례자 협회 한국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예요. 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하이힐과 원피스 차림을 고수하는 20대 중반 여성을 향한 염려 섞인 눈빛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꼭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겨울 산행은 어느 곳이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겨울이 지나면 나는 복학을 해야 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정을 들은 대표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결국 필요한 것을 도와주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받아 온 준비물 목록을 보며 겨울 순례를 위한 물품을 하나 둘 마련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 장갑이었다.
마침내 순례길에 오르던 날, 내 옷장에 있는 옷들과는 거리가 먼 겨울 산행 복장으로 갖춰 입었다. 알베르게(숙소의 스페인어)의 창에 비춰 본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순례자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번졌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마침내 그 여정을 시작했다. 해가 뜨는 쪽에서 해가 지는 쪽으로 걷는 그 길은 무척 고단했다. 12kg의 배낭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온통 Cerado(문 닫음의 스페인어)를 내 걸은 식당들은 겨울엔 순례자가 없다는 이 길의 사정을 알게 해 주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알베르게에서 침낭에 의지하며 겨우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한 번은 해발 1330m 높이에 있는 갈라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 오 세브레이로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단체로 미아가 되어버린 적이 있다. 눈이 무릎 위까지 쌓여 길을 안내하는 노란색 화살표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꽁꽁 얼어붙은 손끝은 빨갛게 부어오르기까지 했다. 원체 손이 유난히 차가운 편인 나는 그때 그 장갑으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장갑을 보면 그때의 아찔한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아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그 때문이었다. 920km의 여정을 완주하며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한 녀석이었기에 장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이토록 헛헛한 것이었다. 나중에야 그 사정을 알게 된 민은 내게 무척 미안해했다. 그러고는 그 마음을 대신하여 멋진 새 장갑을 내게 건네주었다.
"추억이 있는 물건이라 더 미안해요."
"그래도 한 짝은 남아 있으니까, 그걸 보며 추억할 수밖에요. 그리고 민이 준 새 장갑으로 더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가면 되죠! 그러니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아요. 오히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그 장갑을 받은 날, 나와 한라산을 마지막으로 여행한 남은 한 짝의 장갑을 더 이상 서랍 속이 아닌 오며 가며 잘 보이는 벽에 걸어두었다. 한 짝뿐이라 더 이상 쓸모는 없을지 몰라도 눈에 띌 때마다 기억을 어루만지기에는 충분했다. 그제야 아렸던 마음이 정말 괜찮아졌다. 그러고선 러닝을 하러 길을 나섰다. 양 손에 새 장갑을 끼고 말이다. 이 녀석과의 첫 추억을 만들기 위한 외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