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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바늘

03. 눈사람과 열대어

by 허니베리


췌장암입니다.


숨을 들이마시자, 얼음 바늘처럼 차고 날카로운 전류가 코끝에서 정수리까지 관통했다.


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심장도 시술하셔야 하는데 일단 췌장이 먼저예요. 심장 보시는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시고요.”

그는 봄기운에 녹는 눈이 아닌, 겨울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머릿속 어휘로 채워졌던 자리가 투명한 물음표로 메꿔졌다. 한동안 입술만 달싹일 뿐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흘러왔다.

전혀 고맙지 않은데.

의사의 양쪽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진료실을 나오자, 간호사가 종이를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했다.

"보호자분, 아시겠어요?"

"아니요, 다시 한번만...."

글도, 말도 해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간호사의 잔뜩 찡그린 표정은 읽을 수 있었다. 안내문에 빨간색 색연필로 거칠게 죽죽 줄을 긋는 그녀의 입에서 문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커다랗게 입을 벌려 내뱉은 ‘수납’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톡 떨어졌다.


수납처를 향해 출발한 나는, 나도 모르게 병원 한쪽 벽에 설치된 수족관을 찾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 아버지와 함께 구경하던 곳이다. 그 안에는 형광펜으로 그린 듯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빠르고 힘차게 오가는 열대어들 사이로 느릿느릿 힘겹게 헤엄치던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한 뼘만큼이나 올라가나 싶으면 이내 미끄러졌다. 하지만 포기라는 걸 모른다는 듯 다시 올라가길 시도했다. 그 친구가 여전히 물살을 헤치며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고 있길 바랐다.


수족관도, 수납처도 찾지 못한 채 병원 로비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안내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수납을 마쳤다.


환자와 그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지나갔다. 두 명은 각각 양쪽에서 환자를 부축하고, 뒤따르는 이는 가방을 들고 따라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꺼냈다. 누구에게 먼저, 이 소식을 전해야 할까.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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