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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자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상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모든 이들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치. 종교. 사회 등 삶의 전반적인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밀턴 프리드먼이라는 경제학자가 말했던 선택할 자유다. 그의 선택할 자유를 잘 살펴보면 좋은 선택도 좋지 않은 선택을 할 자유도 본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기회의 불균형 따위는 상관이 없고 모든 것은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게 귀속된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시간당 1만 원을 받는 일에 종사하는 것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시간당 10만 원 혹은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선택할 자유가 모든 이에게 있을까. 매끼니당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으며 병에 걸리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좋은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을까.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는 선택할 권리는 아주 제한적으로 선택할 권리다. 이전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던 것이 케인즈 주의였는데 케인즈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했던 경제학자였다. 그렇지만 프리드먼은 작은 정부와 자유를 강조하였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들고 사회를 알기 시작하면 한국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다시 일어서기에 힘든 나라인지 알 수가 있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면 상관이 없겠지만 선택을 잘못함으로써 일어나게 되는 파괴적인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선택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존재해야 하며 그 선택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왠지 선택할 자유라고 하면 무언가 자유롭게 기회가 많으며 많은 것을 모색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자신이 들고 있는 선택지와 어떤 이들의 선택지와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기회의 불공평으로 인해 소득과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 선택할 자유는 상위 5%에 들어가는 사람들 외에는 자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일자리가 없어 폐지를 주어 연명하는 사람은 그걸 선택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일까. 회사에서 일하면서 상사가 음식을 먹으러 가서 나는 짜장면이면 충분해 마음대로 선택해라고 말하면 당당하게 팔보채정도는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존하기 위해서 하는 강요된 선택을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정치라는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공공의 자산을 어떻게 쓸지 대리하게 될 누군가를 뽑는 것이다. 지방을 가보면 알겠지만 사람수에서 타당성이 없어져서 무척이나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정치력이 발휘되는 더 좋은 대도시에서는 더 많은 투자가 일어나는 것도 주거선택의 영역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국가의 화폐의 가치는 그 나라가 가진 경제력의 상징이다. 한국의 달러대비 환율이 1300원 중반에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로 들어오는 외화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무역이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로썸 게임이다. 다른 국가가 한국보다 더 가난해져야 한국이 더 많은 것을 팔고 있으며 수입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환율이 떨어져서 미국 주식을 사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투자자가 있다면 당분간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지금 구매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국가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흘러서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년, 올해, 내년의 한국의 성장률은 아주 잘되는 기업만 잘되고 나머지 기업은 손을 빨게 될 의미다.


중국 역시 내수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아서 내부에서 생산한 아주 저렴한 제품을 알리나 테무를 통해 막 수출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의미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악성재고가 되어 결국에는 경제적인 문제를 만들게 된다. 중국은 그걸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등에 저렴한 인건비와 짝퉁을 상관하지 않고 생산된 제품을 수출해서 버티기에 들어가고 있다. 테무를 이용하게 되면 그들의 슬로건처럼 황제처럼 소비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택의 자유도 결국에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국가가 최소한으로 무언가를 하고 자유경제에 맡긴다는 가정은 한국에는 맞지가 않는다. 미국처럼 달러패권을 쥐고 인플레도 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나라나 가능한 일이다. 지방자치단체나 소상공인, 복지등에 들어가는 예산이 줄고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선택할 자유가 얼마나 있을까. 코로나19 때 올라간 환율이 고착화된다는 것은 한국의 경제체질이 생각보다 회복도 되지 않고 저질로 변하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준비를 해야 하고 투자할 곳도 찾아야 하며 미래에도 가능한 선택할 자유를 찾아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나 아주 제한적으로 맞을 확률이 높은 경제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가 경제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줄여야 개인의 자유를 늘리는 것이며, 시장 자체에 선순환을 통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중국이 전 세계의 공장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가 인플레가 없이 안정적으로 경제규모를 키워온 2020년대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1980년이라면 그럴 수는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전 세계의 경제규모가 커지지 않았으며 돈을 쓴 만큼 인플레가 있었던 과거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과거 30년 동안 참 많은 것을 끌어다 썼다. 그 과실은 공평하게 뿌려지지가 않았다. 특정세력이나 기업, 사람에게 쏠려버렸다. 미래의 부를 잔뜩 끌어다 쓴 지금 그 이후에 선택할 자유는 누구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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