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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비계덩어리

상류층의 위선과 현실 그리고 사람들을 속이는 더러운 욕망

43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1년 6개월 전에 그는 이미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바다와 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여행을 재미 삼아 시작했다가 한때는 아무 걱정거리도 없이 즐거웠던 휴가가 정신상태 때문에 강박관념의 지배를 받는 방랑증으로 바뀌게 되었다. 매춘굴과 창녀들에게 강하게 매혹되었으며 상류계층이 가진 위선과 기만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작품으로 지금까지 잘 알려진 작품을 남긴다. 인간의 탐욕과 위선을 차가운 시선으로 묘사한 비계덩어리는 작품이다.


그 작품을 쓴 작가는 기 드 모파상이라는 작가다. 기 드 모파상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당대에 잘 알려진 작가 플로베르에게 부탁을 하고 일요일 오찬에 초대해 문체에 대한 강의를 하고, 그의 미숙한 습작을 고쳐주곤 했다. 플로베르는 그의 문학적 멘토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에밀 졸라, 이반 투르게네프, 에드몽 드 공쿠르, 헨리 제임스 같은 당대의 일류 작가들에게 그를 소개해주었다. 플로베르는 작가 모파상을 격려하고 감화시켰을 뿐 아니라, 파경을 맞은 부부의 아들에게 양아버지 역할도 해주었다.


모파상이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 비계덩어리 (Boute de sulf)는 그가 쓴 작품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이후 1880~90년의 10년 동안 그는 놀랄 만큼 많은 글을 썼다. 발표한 단편소설 등으로 어느 정도 윤택한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강박과 불안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건강 때문에 리비에라에 살고 있던 어머니를 찾아가 가까이에 머물다가 목의 동맥을 끊어 자살을 기도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쯤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제 비계덩어리라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독일과 프랑스는 오랜 시간 유럽에서 서로를 적대하기도 하면서 전쟁을 이어왔다. 2차 세계대전을 마지막으로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이전에도 독일은 다른 이름의 국가였을 때에도 프랑스를 공격했다. 1870년 프로에 신과 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프로이센은 루앙을 점령하고 봉쇄정책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평온했던 일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일부 시민들에게는 다른 도시로 떠날 수 있는 통행증을 발급받을 수가 있었다.


- 시대적 배경 -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패배가 여러 번 있었지만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은 최악으로도 꼽히고 있다. 프로이센 군은 프랑스 영토를 점령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는데 이는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에 큰 충격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전쟁은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한다. 사람은 위기에서 그 진가가 나오는 법이다. 평온할 때 상류층이 보이는 그 우아함과 여유 같은 것은 위기에서 얼마나 극적으로 달라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이면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돈 뒤에 그 경박스러움을 숨기기 때문이다.


- 도시 탈출 -


루앙의 유지들과 상인들과 일부 시민들은 루앙을 떠나 르아브르로 피난하기 위해 줄을 선다. 10명의 승객들이 낡은 마차에 몸을 맡기는데 로제-이 부인은 포도주 장사로 부를 축적한 속물, 위베호 백작 부부는 몰락했지만 자신의 허세를 감추지 못한다. 여기에 콜네-뒤시스 부부는 중산층 지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며 카레-라마 부부는 면화 거래상으로 오로지 관심은 돈이었다. 여기에 위선적인 종교인인 두 명의 수녀가 동행한다. 이 일행에 이질적인 인물 비계 덩어리 (엘리자베트 루세)가 합류한다.


그녀는 통통한 체형으로 일명 비계 덩어리라고 불리고 있는 매춘부다.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했던 다른 일행들은 먹을 것을 거의 쥰비하지 못했지만 비계 덩어리는 음식을 충분히 준비해 왔다. 배고픔 앞에서는 어떤 가치도 의미가 없다. 처음에는 대놓고 저런 창녀와 같은 마차를 탔다는 것에 대해 무시하다가 점점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일행들을 보고 비계 덩어리는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준다. 그녀를 경멸하던 사람들이 친근한 태도를 보이며 그녀와 대화를 하게 된다.


비계덩어리를 빼놓고 오직 돈이라던가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 것 외에 관심이 없었다. 특히 자신의 조국을 짓밟는 프로이센 군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비계덩어리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다른 승객들은 전쟁보다도 자신들의 사업과 재산에만 관심이 있었다.


- 독일군 검문소 -


마차는 토트에서 독일군 검문소에서 정차하는데 프로이센 장교가 승객들의 통행증을 확인하면서 비계 덩어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는 비계 덩어리에게 하룻밤을 함께 보내자고 요구한다. 그렇지만 비계 덩어리는 단호하게 프로이센 놈들과 잠자리를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독일군 장교는 토트의 여관에 이들을 억류한다. 다른 일행들은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처음에는 존중하는 척하다가 서서히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일정이 지연되면 사업상의 손실이나 여러 가지 위험이 생길까 봐 불안해한다.


2일쯤 지나자 그들은 비계덩어리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더 큰 선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 로제-이 부인

"때로는 신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 - 수녀들

"조국을 위한 봉사" - 위베호 백작 부인


이들의 회유에 비계덩어리는 독일군 장교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잠자리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승객들을 환호한다. 그날 밤에 비계덩어리는 독일군 장교와 잠자리를 하고 다른 승객들은 아래층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 파티를 벌인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을 칭찬하며 즐거워한다.


- 다시 시작된 여정 -


다음날 드디어 마차는 출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승객들은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매춘부였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며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그들은 전날 축하파티를 하면서 음식을 준비했지만 비계덩어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자리를 하는 등의 이유로 거의 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녀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는다. 그런 여자와 같은 공기를 마시기 싫다고 말하기도 하고 수녀들은 죄인이라고 부르며 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여행을 보면 인간의 욕망과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볼 수가 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로제-이 부인은 그런 좋은 음식을 준비했다면서 현명하다고 비계덩어리를 칭찬하는가 반면에 위베흐 백작 부인은 여행에서의 신분의 치가 없다는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그녀는 평소에도 계급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정한 바가 있으면 적어도 일관성을 유지하라고 말하고 스스로도 그걸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 죄의식을 나누어가진 사람들 -


사람들은 학교폭력등을 보면서 분노하지만 그들도 사실 그런 환경에 놓이면 다를 것이 없다. 집단이 되면 죄의식이 희미해진다. 자신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경각심도 덜하고 서로 나누어가지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집단으로 약자에게 힘을 행사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얼마든지 약자를 찢어발길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하루 만에 자신이 말했던 것도 뒤집는다. 종교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다. 수녀들은 처음에는 신이 그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가 다음날에는 신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이나 이혜관계에 따라 말뒤집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정치인들의 특성이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모습은 실제에서도 볼 수가 있다. 모파상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고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관료제와 부르주아 사회의 허위의식을 혐오했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했기에 그들의 사회상을 알 수가 있었다.


지금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고 싶다면 이런 소설을 읽어보아도 좋다. 고위관료나 정치인들은 한국인들 대다수가 잘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도덕성을 가진 것처럼 포장을 한다. 그들의 위선과 모순은 이미 한국사회가 가야 할 길을 흐리게 만들어가고 있다.


"코르뉘데는 라 마르세예즈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다. 그는 드문드문 가사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조국에 바친 성스러운 사랑이여…' 마차는 더욱 빨리 달렸다. 비계 덩어리는 울고 있었다. 이따금 억누르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흐느낌이 노랫가락 사이에서 들려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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