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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04. 2019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the 청춘”에 바란다. 1

민중가요 이야기 #9

시간, 그리고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후배한테 대략 10여 년 만에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21세기가 훌쩍 지나 20년째가 되는 내년 2월 1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를 하려고 하는데, Pre Event로 민중가요 이야기를 좀 써 달라는 것이었다.

날 뭘 믿고?

생각해 보니 이 후배는 대략 20여 년 전에도 몇 년 만에 나타나 다큐멘터리 PD를 하고 있으니 자신의 입봉작에 들어갈 타이틀 음악과 BGM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난 생각했다.

날 뭘 보고?

제대로 된 작곡가나 작가를 쓰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나한테 부탁을 했을 수도 있다. 싸구려라고 자학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비교적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늘 여기저기에 불려 다닌다. ‘착한 아이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거절도 잘 못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게 오늘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거 음악으로 벌어먹고 살려고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은 글 쓰는 재미에 푸욱 빠져 있는 나에게 그 뜬금없는 후배는 고맙게도 늘 과분한 제안을 해 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내가 어설프다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느 시대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늘 있었다. 전통적인 진보의 관점은 “더 이상 못 참겠다”이고, 그에 대응하는 전통 보수의 관점은 늘 “아직은 때가 아니다”이다. 대중들이 전자에 폭발적으로 동의했을 때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 바로 ‘혁명’이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는 서서히 변화의 불씨를 축적한다.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하지만 100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늘 조급하다. 그래서 나처럼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 한 특정한 입장 속에서 살아가며 의도와 무관하게 역사의 진보에 크고 작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삼원색 중 하나인 빨강은 흰색과 만나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핑크가 되었다. 하지만 원색주의자(이런 말이 있나? 그냥 원리주의자의 패러디 정도로 이해 요망... ㅋㅋ) 입장에서 보면 빨강도 하양도 아닌 애매모호한 핑크가 자신들보다 더 사랑받는다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토록 사랑스러운 핑크는 어쩌면 빨강과 하양에게는 저주스러운 색깔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핑크는 너무 아름다운 비유고... 그렇다면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회색은 어떨까? 회색은 흑에게나 백에게나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흑과 백이 사물의 본질이고 사건의 팩트라면 회색은 현상이고 인식이다. 대중들은 흑과 백을 섞어서 회색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앞에서 백이 옳으니 흑이 옳으니 떠들고 있다. 세상의 본질이 흑과 백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총체적으로 회색이다. 회색을 두고 흑에 더 가까우니, 백에 더 가까우니 떠들어 봤자 인류의 미래보다 자신이 먹고사는 문제가 더 절박해진 신자유주의 포스트모던 사회의 대중들은 이 세상을 대충 회색으로 인식하고 있다. 회색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주장은 운동이 아니라 찻잔 속에서 찻잔조차도 흔들 수 없는 파편적 회오리에 지나지 않는다.


삼천포의 매력이 이렇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제 본격적으로 30년이 지난 지금 민중가요를 ‘소환’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소환은 말 그대로 강제로 불러내는 것이다. 먼저 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소환’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주관적 상식에 빠지지 말고 애매하다 싶으면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음 사전에서 찾아 본 “소환”의 사전적 의미

역시, 썩 좋은 의미는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민중가요를 소환한다는 게 민중가요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다는 의미일까? 그 궁금증을 콘서트의 제목이 부연한다. “the 청춘”...


이런... 삼천포에 너무 오래 머무른 것 같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다음에는 하필, 지금 이 시대에 “the 청춘”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민중가요를 소환하는 의미를 대략 세 가지로 추려 살펴보겠다. 스포를 하자면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중가요의 소환인가, 청춘의 소환인가?

둘째, 문화현상으로 바라본 민중가요

셋째, “the 청춘”에 바란다


필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장담할  없다. 그저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맴돌고 있을 뿐이다(@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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