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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Nov 11. 2019

후손들은 1도 관심 없는 "애국의 길"

민중가요 이야기 #2

나이 50이 넘은 지금도 가끔 가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노래가 있다. 바로 윤민석(선배?)이 만든 '애국의 길'이다. 노래는 4분 음표를 붓점이 있는 8분 음표와 16분 음표로 쪼갠 전형적인 '단조 투쟁가'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투쟁가처럼 힘차게 부를 때보다 눈을 감고 느리게 불러야 제맛, 아니 눈물이 난다. 나처럼 이 노래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글을 읽기 전에 아래 악보를 보며 한번 느리게, 가사를 꼭꼭 씹어 가며 불러 보기 바란다.

“애국의 길” 악보, 가사가 절절하다.

식민지, 조국, 민족, 미국놈, 해방, 전사... 지금은 일상생활 속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이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후반에는 이 단어들을 빼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거의 없었다. 정말 시대가 변하긴 한 것 같다. 변해도 정말 너무 변했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청춘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공포를 평생 안고 살아왔듯, 혹시 우리들도 청춘 시절 누렸던 그 자부심을 지금껏 부여 잡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들이 부모 세대로부터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라는 말을 듣고 자랐듯이, 우리들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너희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알아?'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말을 억지로 삼키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삼천포에 머물러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다시 노래 이야기로 돌아오자. 1절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완료형 시제를 다룬다. 노래 '애국의 길'은 우리가 투쟁의 대오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감성적 이유로 '이름 없이 쓰러져 간 전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다그친다. 이러한 감성은 그 당시 민중가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정서였다. 김성민이 만들고 천지인이 불렀던 "열사가 전사에게"가 대표적이다.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많은 열사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산화(散花)해 갔다. 선배들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선배들로부터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며 나라만큼 사랑해야 한다고 세뇌받았던 동기들도,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들도 전사가 아닌 열사가 되었다. 전태일, 김세진, 이재호 열사처럼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독재에 항거했던 열사도 있었지만, 박종철 열사처럼 (감)빵에서 고문을 받다가, 이한열 열사처럼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그리고 같은 대학 동기인 김귀정 열사처럼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시위 진압에 몰려 소중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 청년학생들은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시대 상황 속에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전사'를 생각하며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

군데군데 비어 있는 졸업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2절은 그 당시 당면한 투쟁 과제인 통일에 대한 내용이다. 1987년 4월 13일,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은 야당과 재야가 줄기차게 요구해 오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요구를 묵살하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행 헌법을 지키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전두환의 호헌조치 발표 기사

호헌조치에 반발한 대학생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많은 국민들도 대학생들을 지지했다. 우리가 얼마 전에 겪었던 촛불혁명보다 더 뜨거운 혁명의 기운이 전국을 뒤덮었다. 목표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다르면 진보는 분열한다. 혁명을 꿈꾸던 학생운동권은 제헌의회를 주장하는 CA와,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NL로 나뉘어졌다. 6・10 항쟁으로 이어진 혁명의 열기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6・29 선언으로 주춤하게 되었고, 부정선거와 야당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찬물을 맞았다. 이후, 민족해방을 주장하던 NL은 1988년 남북 청년학생회담을 제안하며 통일 운동으로 투쟁을 이어갔고, 제헌의회를 주장하던 CA의 투쟁 노선은 노동해방을 주장하는 PD로 이어졌다. 6・10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학생운동의 투쟁 방식은 소위 전위조직이 주도하는 선도투쟁에서 대중투쟁으로 이동했고, 대중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문화예술운동이 확산되었다. '애국의 길'은 문화예술운동의 확산으로 맞이한 민중가요의 황금기에 다분히 NL진영의 감성을 담아 만들어진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의 백미는 2절 후렴구라고 생각한다.

이 몸 갈갈이 찢져짐으로
갈라진 내 조국 하나 된다면,
자랑스럽게 나아가 부서지리라
 조국통일투쟁 만세~

절절하다. 갈라진 내 조국이 하나 된다면 내 몸이 찢겨지고 부서져도 좋다는 결의를 가사에 담았다. 윤민석(선배?)은 한양대 무역학과로 알고 있는데, 국문과를 나온 나보다, 아니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적 감성을 타고난 듯 하다.


마지막 3절의 시제는 미래다. 우리는 우리가 선배 전사들의 길을 따라 걸었던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도 당연히 그 길을 따라 걸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현재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적도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이는 모두를 적으로 규정해야 하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살고 있다. 차라리 시원하게 적을 구분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에게 적이 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부르짖는 정의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헛헛한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사랑스런 후손들은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설의 고향처럼 우리가 사그러지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반독재 민주화를 외쳤던 것 이상의 절박함을 담아 기성세대가 된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발 가르치려 들 말고 너나 잘하세요~


P.S 표지 사진 가운데 짝다리 짚고 박수 치고 있는 사람이 필자니 한번 찾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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