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못 보았다. 시간의 셈이 해마다 달라지니, 이러다 단풍의 시절이 사라질 것은 아닌지. 그러면 가슴 울렁이게 하는 아름다움 하나가 사라져 버릴까? 단풍나무의 사찰 불국사.
그러다 문득, 사찰의 기단 앞에 선다. 아~ 이런 풍경이라니. 오늘의 걸음이 헛되지 않구나. 중국 일본에서 보던, 거대하다 못해 그로테스크를 느낀 건축의 디테일들. 그것과 질이 다른 섬세한 미감에 넋을 놓고 있으니, 어찌 단풍보다 못할까?
다보탑 석가탑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돌을 그리려 한다. 하지만, 장인의 재능을 바라는 나의 재주는 터무니 없고. 돌 틈으로 비추는 가을 햇살에 고대인의 그림자만 짙고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