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대통령의 업무 공간과 사저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논쟁거리다. 일부 건축가들이 염려한 장소성, 역사성, 조형의 문제는 이미 물 건너 가버렸지만, 여전히 예산, 입찰 등의 실질적 문제에서 설왕설래 되고 있음을 보면, 처음부터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겠다.
그때,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많은 건축가로부터 주장되어 온 공간에 대한 이론을 집무실 이동의 철학적 근거로 삼은 듯하였으나, 나는 이 말의 아전인수적 인용을 경계하였다. 이 말에 쓰인 공간이란 단일 건축이 만들어 내는 공간뿐 아니라 건축 외부의 공간, 심지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과 심지어 풍습이나 사람들의 일상의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매우 넓은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환경이 지구의 과제가 된 지금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까지 공간의 의미에 포함되어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기도 어렵기도 한 일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공간의 질서를 바꾸어 가고 있다. 그 바뀐 공간들은 또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주거를 포함한 개인의 공간이 양적으로 늘어남으로써 공간의 질서는 매우 개인적인 방향으로 변모되고 있다. 그것은 바람직한가?
예를 들어, 브랜드를 가진 아파트 단지들은 개별적 영역을 이루며 기존의 도시 질서와 차단된다. 역사적 맥락은 물론, 풍습과 관습으로 존재하던 삶의 방식들을 순식간에 변화시키고 있다. 나만의 공간은 땅이라는 평면적 영역뿐만 아니라 풍경 자연환경까지 독점하려 든다. 이웃 간의 대화가 갈수록 줄어드는 요즈음처럼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와닿을 때도 없다.
공적 건물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 화려한 건물 주위에 담장을 허물고 마당에 큰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고 있지만, 쉬이 들어가 잠시 머물기에 힘든 곳임이 틀림없다. 잔디는 접근 금지되며, 보안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내부로의 출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물며 그것들은 대부분 도시적 맥락의 중요 접점에 위치하여 도시의 흐름을 종종 단절하기도 한다. 자세히 살피면 관공서 건물만큼 영역 표시가 확연한 건물이 없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탈리아 어느 도시를 기행하는 프로를 본 일이 있다. 내 눈에 든 것은 아름다운 건물과 잘 보존된 오래된 거리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사람들의 보행에서 오는 여유에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보행에 근거하여 배치되는 공간의 질서. 수천 년 이어져 온 거리의 존재를 먼저 인정하고, 그다음에 건축을 이루는 태도. 그것은 역사와 풍습과 관습에 대한 인정이며, 이유 없는 복종이었다. 건축의 어떤 아이디어도 그다음이었다. 그리하여 그 도시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행복할 수밖에.
건축의 태도와 정신은 그러한 큰 질서 속에 순응함으로써 더욱 빛난다. 예를 들어, 관공서 같은 것들은 상업 건물의 상층부 같은 곳에 있음으로써 지상에서의 시민의 보행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땅은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것이었다.
나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의 참뜻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의식을 맡길 만큼의 좋은 공간이란, 몇몇 인간이 순식간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질서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어야 함을. 하물며 오랜 역사를 지닌 큰 도시에서는 얼마나 신중하여야 하는가? 큰 건물 주위로 잔디가 깔린 한 장의 조감도로 공간을 설명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의식이 순식간에 바뀐다고 주장한다. 조급한지 저급한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