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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Sep 02. 2022

더 낮게 임하게 하소서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수년 전, 어느 건물 공사감리 때의 기억을 이렇게 썼다. “철 사다리를 타고 지하 몇십 미터를 내려가는 공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밑바닥에 도착하여 흙에 둘러싸였을 때의 기분은 말도 아니게 안온하다. 그건 어떤 생명력 같은 것이 흙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경험되지 못한 촉각과 후각의 한 부분을 처음으로 건드리는 경험이다. 사람이 꼭 공기를 통하여 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고 가정한다면, 마치 물고기처럼 수면 위의 세계에서 벗어나 한없이 아래로 침잠하며 느끼는 푸르고 명징한 기분과 같은 것이다. 때론 어떤 곳을 오르기보다는 이처럼 내려가는 일에 마음이 더 기울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제방 아래로 내려가 물과 함께 온천천 천변을 거닐면서 느끼는 기분과 유사한 것이다.” 


이와 같이 흙에 대한 경험은 건축가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비로소 발밑의 땅을 내려다보게 되는 것이며, 보도블록을 뚫고 나온 민들레꽃 한 송이에 감탄하기도 하고, 인도정비를 위하여 파헤쳐진 흙의 냄새에서 어린 시절의 먼 기억을 소환한다고나 할까? 비로소 모든 높고 큰 기념비적인 건축을 애써 외면해 볼 자세가 되는 것이다. 


센텀 지구에 ‘영화의 전당’을 지을 때만 하여도 그랬다. 나의 불편은 이국에 자신의 실력을 풀어 놓은 이방 건축가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이 압도적인 그로테스크한 조형에서 이집트 피라미드를 연상하고 비민주성과 스케일의 폭력에 몸서리쳤다고나 할까?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쓰인 육면체 화강석의 숫자와 거대한 캔틸레버에 동원된 볼트의 개수를 비교하며, 고야의 그림 ‘거인’을 떠올린 것이다. 


마치 앨버트 스피어가 히틀러를 위하여 건축한 기념비적인 건축들이 굳이 선동적이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 거대한 질서의 경직이 주는 차가움 때문에 외면하는 심정이었다. 예술은 때로 무모하여야만 주목을 받는다고 하지만, 건축조차 꼭 그래야 할까? 왜냐하면 사람을 담는 것이 건축의 첫 번째 목표이므로, 목적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건축에 대한 생리적 거부였다. 그건 도시에 대한 개인적 염원이기도 하였다. 


나는 제가 앉은 땅의 크기를 망각한 채 분수를 지키지 못한 건축의 높이를 경멸했을뿐더러, 더 큰 건축을 위하여 땅을 임의로 다시 가르고 합치는 행위를 규탄하였다, 하지만 도시의 욕망은 내 바람과는 달리 끝없이 정리되고 정비되었다. 반면에 이 도시만의 매력은 점점 사라져갔다고 생각했다. 그건 슬픈 일이며, 그런 공허가 밀려올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오래된 거리를 걷곤 한다. 


예를 들어, 남포동을 거닐 때에 새로 지은 멋진 건물 ‘영화의 전당’에서 보다 오히려 영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곳이 영화의 본거지라는 내 기억의 한 부분이 소환된 탓도 있지만, 바닥에 쫙 내려앉은 소소한 것들이 주는 안온함 때문이기도 하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작은 스테인리스 아치가 85m 캔틸레버 보다 더 근사하며, 수더분한 잡상인들의 호객이 세련된 전망 좋은 카페 보다 더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발걸음은 어느 희극 영화의 주인공처럼 경쾌하고 가벼워진다. 


개별의 건축이 모여 이루는 것이 도시인 반면, 거대한 도시라 하더라도 마치 돋보기를 들이대듯 거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사람들의 느린 보행과 재잘거림이 어우러지는 곳이 도시이다. 그것들의 두런거림은 높이 솟거나 넓게 퍼지는 것들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작고 소소한 것들일 뿐이다. 하지만 늘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거나 때론 흥분하게 한다. 그러다가 슬며시 골목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릴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그와 같이 낮은 곳으로부터다. 생각해보니 내가 지으려 하였던 건축 또한 그런 곳이 한 모퉁이의 어느 지점이었다. 거기에 작은 뼈대를 세우고, 그 속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담으리라. 그리고 그다음엔 내가 행복해할 요량이었다.  


그래! 건축은 마땅히 그런 곳에 낮은 모습으로 있어야 해. 높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며 너무 크지 않아서 오히려 넉넉해. 맞아! 처음부터 그랬어. 그게 내가 이루려던 건축의 본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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