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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Nov 21. 2021

상징과 실체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표지를 보고 / 이종민 그림


도시를 묘사한 문학 작품 중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는 수작이다. 좋은 도시를 꿈꾸는 ‘쿠빌라이 칸’과 조언자인 ‘마르코 폴로’가 나누는 수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이 환상적인 소설은 건축가로서 내 입장과 태도를 늘 바르게 이끈다. 도시를 이루어 가는 공인의 입장뿐만 아니라 건축주와 맞대하는 개인으로서의 내가 중첩되어 환상과 상징의 세계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구절을 읽었을 때의 기분을 말한다. 


- 칸은 마르코에게 물었다. “내가 상징을 모두 알게 되는 날, 그날은 마침내 내가 제국을 소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베네치아인이 대답했다. “폐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폐하 본인이 상징들 속의 상징이 되실 겁니다.” -      


책을 잠시 덮고 풍경 하나를 떠올려 본 것이다. 내가 바다를 걷고 있었을 때 아름다운 건물이 거기에 있었지. 세련, 쾌적과 같은 행복한 기호를 온몸에 두르고. 푸른 물과 산뜻한 바람 그리고 바다와 산의 선이 마치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당당했지. 건물은 확실히 쿠빌라이의 말대로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었어.


 이번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마르코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했어. 거대한 건물이 바다에 너무 바짝 다가앉아 있더군. 마치 물속까지 들어가려던 욕망을 겨우 잠재웠다는 듯이 듯 건물은 위세로 분기탱천했어. 나는 그것의 부당함을 애써 찾으려 했던 거야. 도시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늘 나를 분개하게 하거든. 


하지만 그곳 상징과 현실 사이엔 광장 같은 것이 있었고, 거기엔 현실을 빠져나와 상징을 찾아드는 사람들의 물결로 제법 소란했어. 들어가지 못할 건물을 힐끔거리며 걷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창문 안의 시선들이 교차하면서 이루어 내는 묘한 평화.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꽤 조화로운 존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의외의 민주적 상황이라 할까? 도시 또한 제법 조화로웠어.  아무튼 그러한 평온이 또 하나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었던 거야.


아~ 그러한 풍경을 담으려는 나는 상징 만들기와 현실 사이를 바삐 오가는 건축가인가. 그날 나는 감히 그 앞에 소풍 돗자리 하나 깔지 못하게 된 시민의 입장이 슬프기도 하고, 남이 만든 세련된 건물이 뜬금없이 부럽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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