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순이와의 첫 만남

5주 차의 기록

by 덕순


"삐빅-임신입니다."


버스의 카드 리더기 같은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1월 17일 일요일 오전 8시 무렵,

아직 남편은 꿈나라에 있는 이른 아침이었다.


생리가 예정일에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혹시나 해서 재작년에 사둔 임신테스트기를 방구석 서랍에서 찾아냈다.


처음에는 그저 한 줄인 것을 확인하고 편하게 마음을 놓으려는 시도였다.


'올해에는 생각해보자'

라는 막연한 계획만 있었을 뿐,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 줄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선명한 두 줄'이었다.


남들은 흐릿해 보이는 두 줄을 보려고 애쓰다가

맘 카페에 같이 좀 봐달라고 올리기도 하던데,

나는 누가 봐도, 거꾸로 봐도 두 줄이였다.




얼떨결에 상황 판단이 되자,

일주일 동안 내 몸의 신호에 대한 퍼즐이 맞춰졌다.


지난주 내내 생리통처럼 아랫배가 아파왔고,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늘 하던 공부도 내팽겨치고 8시에 잠이 들었었다.


다만 생리 전 증상이랑 구분이 되지 않아

일주일 동안 '설마 설마' 하며 생리대를 담은 파우치를 가방에 넣고 매일 출근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졸렸었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렇게 나는 내 몸안에 있는 작은 덕순이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첫날은 매우 바쁘게 흘렀다.

서둘러 일요일에도 검진을 받는 병원을 찾아 임신을 확인받았다.




아주 작은 아기집이 보이는 초음파 사진

초음파로 보이는 덕순이는 0.66cm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콩알 같았다.


초음파 사진을 들고 나오니, 남편은 신이 나서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나는 온 가족의 축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사실 그날 내내 나는 기쁘다기보단, 심란했다.


갑자기 찾아온 아기와, 덩달아 병원에서 받은 임산부 배지에 산모수첩까지...


산모 수첩에 그려져 있는 엄마는

아기를 아주 사랑스럽게 안고 행복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런 엄마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안됐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지금 현실의 나 사이에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 어린데...

내가 엄마라는 게 상상이 안 돼'


남편은 언제부터 아빠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던 걸까?


전혀 심란해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에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신이 나서 출근 가방에 걸어주었다.


다만, 당혹감과는 달리

우리들 몰래 찾아온 이 생명은 꼭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신경을 쓰지도 못했는데,

아니 오히려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못난 짓만 했는데도,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했다.




임신 축하 기념으로 받았던 꽃다발

1/17일 이후 일주일 동안,

덕순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의 생활은 그 전과 많이 달라졌다.

평소에 아침마다 찾던 아메리카노를 꾹 참게 되었고,

안정기 전까진 회사에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지라 피곤해도 티 내지 않고 참아야 했다.


지하철이 지나갈까 봐 열심히 뛰어가다가,

뱃속의 덕순이를 떠올리면 아차 하고 후회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하든지

뱃속의 아기한테 해로운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알고 나서 후회한 적도 많았다.


일주일 동안 덕순이의 존재를 알고 살았지만, 아기라고 부르기는 아직 쑥스러웠다.


사실 모성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기를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초인적인 사랑이 생기는 줄만 알았다.


나만 특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런 사랑이 생긴 것 같지 않다.


콩알만 한 덕순이와 나 사이는 아직 서먹서먹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덕순이를 사랑하기까지는 나도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속에서 커가는 덕순이를 보면,

나 또한 남들처럼 아기를 사랑하는 어엿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덕순이만 크는 게 아니라,

덕순이를 품은 나도 이전의 철부지 모습을 떼고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성숙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9개월이란

짧고도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우리.


서먹서먹하지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덕순이에게 말을 건네 본다.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커 줘 덕순아. 내가 잘할게.'




ps. 덕순이 태명은 신혼 때부터 내가 아이가 생기면 부르고 싶은 태명이었다.
남편은 촌스럽다고 반대했지만 난 덕순이라는 이름이 너무 사랑스럽다.
딸이길 바라는 내 속마음도 살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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