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지옥의 시작

6주 차의 기록

by 덕순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듯이,

어떤 음식도 먹었을 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나에겐 기숙사에 머무르던 고등학교 시절,

몰래 시켜먹은 이삭 토스트가 그렇다.


속세의 맛을 본 황홀함,

그리고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그때에 대한 막연한 먹먹함까지..



그리고 지난 일주일 동안 주야장천 먹은 이 오렌지주스와 크래커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나에겐

'행복하지만 몸이 견디기엔

너무 힘들었던 입덧 지옥의 시간'

으로 각인될 것이다.




처음 덕순이를 알고 난 일주일은 나에게 주어진 최후의 만찬 같은 시간이었다.


가끔씩 체기가 있었지만 심할 정도가 아니라서, 그냥 과식해서겠지 하고 넘어갔었다.


입덧하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갑자기

'우웁!' 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그런 장면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런 나에게 6주 차가 되는 주말부터 입덧이 시작되었다.




입덧이란 생각보다 훨씬

잔잔하고, 고통스럽고, 지속적이었다.


하루 종일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책을 읽다가 생기는 메스꺼움과 비슷했다.

심할 때에는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마신 다음날의 숙취처럼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식욕은 당연히 없어지거니와,

그전엔 좋아했던 나물 반찬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속을 달랬고,

밥보다는 면을, 야채보단 고기를 찾게 되었다.


평소엔 먹지않는 매운 음식을 주구장창 먹었다.

'아기가 원하는 거야. 당기는 걸 먹어야 해,

아기가 먹고 싶어 하는 거니까'


엄마는 말했지만,

우리 덕순이가 왜

나름 채식 위주의 건전했던 내 입맛을

라면에 환장하는 입맛으로 바꿔놓았는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주위 사람들과 맘카페 회원들의 경험담을 읽어보니, 입덧은 사람마다 편차가 컸다.


보통 5주 차쯤 시작해 빠르면 16주 안에 증상이 호전된다 한다.

그 와중에 축복받은 사람은 입덧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했다.


그리고 불행히도 내 몸은

입덧 지옥에서 구원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입덧 지옥에 회사일까지 정신이 없었다.

내가 아프다고 누가 내 일을 대신 해주진 않으니 버텨야 했다.




몸이 박살날 것 같은 일주일 동안,

무리를 한 것 같은 날엔 아랫배가 콕콕 찌르듯이 아파왔다.


그때마다 나는 무서웠다.

'혹시 덕순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내가 지금 아프고 힘든 것보다,

혹시라도 덕순이에게 무리가 갔을까 봐 불안했다.


덕순이만 건강하다면,

지금 아프고 힘든 것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과 안 지 일주일이 조금 넘은 이 생명체를 위해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을 뿐 아니라,

사랑과 관심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이게 바로 엄마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덧이 덜 심한 날엔,

'아니 얘가 오늘은 왜 이렇게 얌전하지..?'

하며 괜히 불안해하고,

혹시라도 하혈이라도 했는지 확인하곤 했다.


다행히 힘든 일주일 동안 덕순이는 단 한 번의 작은 피 비침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주일의 고통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이제 다음 주면 덕순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간다.




올해의 시간은 덕순이를 언제 보는지로

조각조각 나뉘어버렸다.


조각 하나 모으기가 왜 이렇게 느린지...


지나고 보면 정말 시간 빨리 흘렀다, 싶겠지만 기다림이란 늘 지루하고 애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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