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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Aug 09. 2019

회사가 '우리 회사'가 되기 위한 조건

<그래서, 인터널브랜딩 : 브랜딩스러운 조직문화 이야기>

우리집은 어디인가?



1인 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평소 집을 이야기 할 때에는 부모나 아내같이 

가족이 있는 곳을 가리켜 '우리집'이라고 이야기 하게 된다. 
설령 그 집의 실제 명의가 부모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그 집은 '우리집'인 것 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집'을 이야기 할 때에는 비단 건물이나, 

물리적인 공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각자마다 집이 단순한 공간을 넘어 '우리'라는 말을 붙여 '우리집'이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내가 전세, 월세로 살고 있지만, 

지금 나와 가족이 있는 그 집을 우리는 왜 '우리집'이라고 표현하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집이라는 곳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서 마음편히 쉴수 있는 곳, 
하루 종일 예민한 상태로 긴장되어 있던 나의 몸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늘어질 수 있는 곳,  
세상에서 상처받은 나의 영혼이 소중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 
그 곳을 사람들은 '우리집'이라고 부른다.



우리집에서는 나는 가장 '나 
다울' 수 있다.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 때문에 때로는 갈등도 일어나고, 꾸중이나 잔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집에서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누군가가 이야기 했듯이, 

진정한 사랑 앞에서 나는 가장 나 다워 질 수 있고 자연스러워 질 수 있다. 
바로 사랑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다. 
나의 어떠한 모습이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 
우리는 집에서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고,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아니, 드러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집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니, 다르다고 강요받기 때문이다. 
학교나 회사같은 사회 또는 조직 에서는 정해진 책임과 역할이 있고, 규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 처럼 똑같이 사고하거나 행동하면 안된다고 누군가로부터 배운다. 


생각해보면,
'~하지마!', '~안되!'라는 말들을 꽤 익숙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학생때부터 학교에서도, 
'여기는 학교니까 집이랑은 달라' 라던가 '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 해야해' 라는 말들을 여기저기서 자주 들어본 것 같다. 


결국, 

나의 욕구와 감정을 아무 곳에서나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사회는 집이랑은 다른 곳이니까. 
아무데서나 나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면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 또는 '성숙되지 못한 사람'으로 보여질까봐 때로는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욕구와 감정을 통제하였고 
어느 순간에는 해야할 말도, 물어볼 말도 괜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침묵'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생에서 학교와 집, 회사와 집은 

서로 이질적인 다른 곳으로 인식되었고, 

점점 그 거리는 멀어져 갔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이고 회사 이지만,
학교와 회사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 중 반의 반 정도만을 꺼내어 놓고, 
나머지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꾸역꾸역 안으로 밀어넣은 후, 

집에 돌아오면 그제서야 내 안에 있던 욕구와 감정들을 풀어놓는다. 
삶은 하나 이지만 때로는 하나인 삶 안에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회사 생활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분열된 자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괜히 우울해지고, 불안감이 찾아오는 이유, 

오직 주말과 여름 휴가 만을 꿈꾸며 

어딘가로부터의 일탈을 평생의 소망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원인은 
바로 '통합되지 못한 분열된 자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분열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을 사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다. 
나 역시 이런 글을 쓰며, 매번 자각과 성찰을 거듭하여 

어느 환경에 놓여있던지 동일한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일요일 저녁에 불현듯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허전함은 아직 어쩔 수가 없다. 


만일, 

일요일 저녁에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너무나 기다려지고 설레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직장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앞서 이야기한 '우리집' 처럼, 
조직이 구성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 구성원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도 

그 조직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지금 보다 더 행복한 조직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나 다운 모습을 보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는 집이랑은 다르기 때문에, 즉 사회에서는 집이랑은 다른 규범이 요구 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역할의 가면을 쓰고 직장에 출근해 나 답지 않은 역할에 충실한다.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다른 의견과 생각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여 질 수 있는 문화가 있다면, 
구성원은 더욱 안정감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더욱 풍성하게 보여 줄 수 있다. 
점차적으로 조직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가장 자신답고 자연스럽다고 느낄 때, 
회사는 '우리회사'가 되며, 
우리회사는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내가 함께 성장해 나아갈 곳이 된다. 


개인생활과 조직생활이 '삶'의 관점에서 

하나로 '통합'되고 그 안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의 분열된 자아는 다시 차츰차츰 가운데로 모여 균형을 맞추고, 

조직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열된 자아가 어느 순간 균형을 맞추고, 차츰 통합을 이루어 나갈 때, 
우리는 그 과정을 '성숙'이라고 부른다. 



개인이 조직 안에서 안정감을 얻고 

개인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받으며 '자유'를 얻어 내는 것도, 
조직이 개인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그 결과로 좋은 '성과'를 창출해 내는 것도, 
어쩌면 서로 간의 '성숙'에 달려있는 것인지 모른다. 


성숙한 개인은 자기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정한 범주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성숙한 조직은 개인이 스스로 자유와 통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가치를 설정하고 공유한다.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회사에서 보여지는 

나의 모습을 부정하거나 회피한다면
그것은 꽤나 힘들고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성원들이 많은 조직은, 
조직 내에서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어렵고, 

다음 리더를 육성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나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구성원이 침묵으로 일관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과 강점을 살려 언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유롭게 의견과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조직문화. 
그리고 자유와 통제의 균형을 설정하고 

범주 안에서 선택의 기회를 누리는 조직과 구성원의 '성숙함'이 
회사를 '우리회사'로 만들기 위한 조건이지 않을까. 




https://bit.ly/2ZM1xx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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