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하루를 되찾는 법

스타트업 경영자의 아주 사적인 시간법

by Sam의 기억 궁전



회사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가 도장을 찍듯 지나가기 시작했다.

회의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

사람을 뽑고, 메일을 확인하고,

투자자를 만나고, 점심은 건너뛰고,

그렇게 정신을 차리면 벌써 저녁이었다.


"오늘도 꽉 찼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늘 비어 있었다.


하루를 잘 보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한 달이, 두 달이 지나가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때부터였다.

매달 하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나만의 하루를 만들기 시작한 건.


처음엔 그저 막연한 감정 때문이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

계속해서 안쪽에서 울리는 작은 종소리 같은 것.

그 소리를 조용히 따라가 보자고 생각했다.


그 하루는 내가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시간이다.

일하지 않는 날은 아니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은 하지 않는다.

이메일도, 슬랙도 열지 않고,

달력 속 회의는 모두 치운다.


그저 가만히 앉아,

지금의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

그렇게 살아남은 하루.


아침에는 좀 느리게 일어난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 진하게 커피를 내린다.

유난히 조용한 시간.

이 세상에 나 혼자만 깨어 있는 것 같은 기분.


그 시간에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무슨 일로 웃었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는지.


그걸 종이에 천천히 적어보면

마음속에 걸려 있던 먼지가 조금씩 내려앉는다.

그리고 아주 작게나마

'아, 나는 아직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전에는 종종 회사의 비전이나

내가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때의 이유를 떠올린다.

그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업무 속에 묻혀버렸지만,

이 하루만큼은 다시 꺼내볼 수 있다.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었을까.

누구를 돕고 싶었고,

무엇을 바꾸고 싶었을까.


그리고 지금,

그 처음의 마음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가끔은 창밖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창작활동을 해보기도 하고,

잘 쓰지도 않는 연필로

느리게 영어 일기를 써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시간’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그 하루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점심 무렵이면 가볍게 산책을 한다.

사무실 근처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공원이나

예전에는 자주 갔지만 요즘은 못 갔던 골목을 걷는다.


식당 창문 너머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길가에 핀 들꽃이나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에도 눈이 간다.


바쁠 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조용한 하루에는 작은 우주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머리를 짜낼 땐 아무것도 안 떠오르던 것들이

그런 순간엔 아주 자연스럽게 흐르듯 나온다.


오후에는 책을 읽는다.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책.

요리책이 될 수도 있고,

소설 한 편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다시 읽고 있다.

다 읽은 줄 알았던 문장에서

새로운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나도 매달 그렇게

내 안에 새로 생긴 문장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조용히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누가 보지 않아도

나 스스로에게 쓰는 보고서를 남긴다.


이번 달의 나는 어땠는지,

무엇이 나를 웃게 했고,

어디에서 무너졌는지.


그 모든 것을 적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치 다시 숨 쉴 공간이 생긴 것처럼.


이 하루는

성과를 위한 날도,

휴식을 위한 날도 아니다.


그저 ‘나’를 다시 조율하는 날이다.

삐뚤어진 음정을 다시 맞추고,

묻혀 있던 감정을 살짝 닦아내는 시간.


그 하루가 있기에

나머지 날들이 덜 어긋나고,

더 오래, 덜 지치고,

회사도 나도 함께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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