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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May 12. 2024

엽편소설 ; 쓰고 싶지 않은 소설의 구성과 줄거리

  한참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인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죠?"
  머릿속 음성에 따라 내가 쓸만한 장소와 인물을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까만 바탕을 먼저 채워보기로 했다.
  삼선교 사거리 횡단보도 앞이다. 돈암동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직진의 차로가 있고 급하게 꺾이는 곡선 차로가 교차되어 七자로 이어져 있다. 한성대입구역 1번 출구를 기준으로 사거리의 모서리에는 시계방향으로 PC방, 핸드폰 대리점,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이 있다.
  시간은 새벽 1시 27분. 가끔씩 지나가는 야간 버스와 택시를 제외하고는 생명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이다. 하늘에서는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몇 번씩 반복된 기온차로 바닥 곳곳에는 빙면이 숨어있고, 차마 피하지 못하고 넘어진 자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사거리 중 코너의 각도가 제일 좁은 모서리의 횡단보도에는 누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아이다. 남자아이일까. 머리카락이 짧지만 치마를 입고 있다. 여섯 살 여자 아이 같다. 교차로에는 2004년에 도시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세워둔 은행나무가 있다. 유독 굵기가 굵어서 여름철만 되면 이 나무 옆에 딱 붙어서 더위를 피하곤 한다.
  도의적 차원에서 지금 구성한 시간과 장소, 인물을 더 써도 괜찮은 걸까 의문이 든다. 흔해빠진 글이 될 게 분명하다. 어떤 일이 생길지 호기심이 들기 전에 뻔한 전개부터 의심한다. 이 글에 미리 장르에 대한 태그를 달 수 있다면 드라마, 스릴러 혹은 오컬트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써야만 한다. 다시 그 장소 위에서 인물들의 팔다리를 건들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자동차 하나가 달려온다. 너무 피곤한 하루였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가속페달을 밟는다. 하얀색 K3는 코너에서도 최소한의 감속으로만 통과할 정도의 코너링을 유지하며 질주한다. 신호는 아직 빨간색이지만 참을성이 먼저 떨어진다. 아이도 당연하다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걷기 시작한다.
  아이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범퍼가 찌그러진다. 작은 아이는 허리의 통상 가동 범위인 좌우 176도를 벗어난 형태로 하늘로 치솟는다. 원래였다면 헷갈리진 않았을 것이다. 운전 경력이 8년인데 그 흔한 브레이크와 엑셀을 헷갈릴 리가 있을까 싶었다. 어떤 소설에서도 사건의 위중함을 가중하려고 이렇게 뻔하고 인위적인 장치를 사용하진 않는다. 그 순간부터 현실성은 떨어지는 거니까.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현실보다 더 사실 같은 모습으로 비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로는 뻔한 이야기다. 아이는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고 아이 엄마는 뒤늦게 달려온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다다 갈 수 없는 시신의 형태를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구역질을 한다. K3는 후진으로 아이 엄마까지 들이박고 둘의 시신을 차에 태운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대한민국은 3m당 평균 CCTV의 개수가 12개인데 이렇게 큰 교통사고를 내고도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시신은 어떻게 했는데?"
  이런 글은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나는 더 쓰고 싶지 않아 졌다. 어차피 시간도 다 됐고. 나는 다른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오늘 시간 다 됐으니까 들어갈게요."
  "시신은 어떻게 했냐고 새끼야! 너도 가족이 있으니까 그 마음 알 거 아니야. 시신 위치만 말해. 위치만."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내 소설의 줄거리를 더 듣고 싶어 한다. 나는 이 소설에 대해 더 쓰고 싶지 않지만 매일같이 똑같은 줄거리를 떠올리고 설명을 해준다.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을 뻔한 소설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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