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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May 12. 2024

엽편소설 ; 그녀가 갇히게 된 경위에 대하여(미완)

  늦은 저녁, 선영은 식재료를 사기 위해 대형 마트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얇은 팔뚝으로 얼마나 들 수나 있을까 싶겠지만 그녀가 준비해야 할 저녁 식사는 고작해야 일주일 치의 한 명분이었다. 그래도 선천적인 병약함으로 어릴 적부터 걷는 일이 별로 없었던 그녀는 이렇게 밖에 나갈 일이 생길 때마다 과거의 생활이 그리웠다. 어디를 가던 하물며 삼거리 앞 카페에 친구를 만나러 갈 때에도 운전기사가 그녀를 태우고 다녔던 시절. 그것도 벌써 삼 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이 살아 있었을 적의 일이었다.
  선영이 매번 집을 나설 때면 외관을 꽁꽁 싸매는 데 몇 시간씩 필요했다. 그녀는 이미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는 과부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 동네 수다쟁이 여편네들은 속닥거리는 듯한 제스처-그도 그럴 만한 게 손으로 입을 가리기는 했어도 말의 소리를 줄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어쩌면 그냥 들으라고 하면서 최소한의 가책만은 덜어내기 위한 심산이었을 것이다-를 취했다. 저 집안은 마가 꼈다,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마당 딸린 단독주택인 이유도 분명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게 된 건 아닐 것이다, 십오 년 전에 그 집 아들이 독살을 당했다더라, 그 아들이 배 다른 새끼인데 심지어 저 여자는 정실이 아니더라, 삼 년 전에 남편이 죽었는데 원인이 농약이라더라, 어디든 간에 자극적인 소문이 여편네들 모닝토크에 잘 팔리기 마련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 정도가 심했다. 물론 선영과 한 마디라도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이 없었으니 그들이 말하는 소문은 진실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말인즉슨 동네에는 그녀의 정확한 상황을 대변해 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위 여부도 아니었다. 그리고 선영에게도 중요한 건 그들이 진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영의 피부는 예전보다 훨씬 새하얗게 변했다. 이마저도 사람들은 안색이 점점 창백해진다며 저 여자도 저주에 걸렸다고 떠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생필품과 식재료를 사가는 것 외에는 전혀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요새가 아니라 요람이었지만 이젠 누군가를 만날 용기는커녕 의사조차 남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 명이 살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넓은 이 주택에 남편과 아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단순했다. 그녀에게는 포기하거나 극복하거나 혹은 버티며 살아남는 것이고 그 미약한 심신으로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버티며 살아남을 심산으로 늦은 저녁에 남들의 눈을 피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식재료를 사러 가던 길이었다. 대형 마트라고는 하지만 대로변이 아니라서 걸어가는 동안에는 꽤나 좁은 골목길을 동반해야 했다. 무섭기는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그녀에게는 위안이 되는 경로였다.
  분명 그랬어야 했을 터인데 선영은 모퉁이를 돌았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캄캄해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작은 알전구 하나만 천장에서 덜렁거리는 허름한 방에 쓰러져 있었다. 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져 손으로 더듬거려 보니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찐득한 딱지가 두피에서 떨어져 나왔다. 가구도 없고 벽지도 한 조각 없는 방을 둘러보고는 선영은 갑자기 배뇨감이 몰려왔다. 문이 달려있기는 했지만 손잡이는 없었고 이리저리 밀고 당겨봐도 전혀 열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나는 납치되었다.

  선영은 불쾌했다. 집의 역할을 무엇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이런 거지 같은 방에서 마치 최소한의 배려인 것처럼 1.5리터짜리 빈 페트병을 놔두었다는 게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소변이 급하다는 어린 소녀에게 옘병 떨지 말라며 페트병을 집어던지던 아빠의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의 지독한 욕지거리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이 방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로 했다. 그녀는 얇은 팔뚝으로 페트병 뚜껑을 있는 힘껏 잠가서는 방구석에 세워두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일까, 선영이 추리해 보지만 딱히 답이 나올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녀를 살려둔 목적이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의 상상 범위는 영화나 소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차피 친정 쪽 연고도 남편의 죽음 이후로는 사실상 끊어지다시피 한 상황이었고 소위 벼락부자라고 하는 양반들에게는 선영의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도 무방한 처지라 그쪽의 가능성은 제외했다. 제일 납득이 가는 건 무연고성 범죄인데 그렇다고 하면...... 선영은 이미지조차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또다시 배뇨감이 찾아왔다.

  창문도 없고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충 직감적으로 한 삼십 분 전, 문의 작은 틈이 열린 곳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한참을 울부짖다가 지쳐 쓰러졌고 그 이후로 시간이 좀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일부러 살짝 몸을 뒤척이며 잠이 든 척을 했다. 범인의 모습을 좀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시꺼면 방 안에서 얇게 뜬 실눈으로는 더 짙은 어둠 속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문에 달린 눈높이의 작은 창 너머에서 작고 까만 동그라미 두 개가 전구빛에 살짝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잠이 쏟아졌다. 잠들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던 선영은 까딱거리던 고개가 푹 꺾여 퓨즈가 나간 풍선 인형처럼 자리에 쓰러졌다.
  정해진 수순처럼 선영은 그날 악몽을 꾸었다. 그녀는 문 아래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버텼다. 어둠에 시야를 적응시키기 위해 문에 얼굴을 최대한 밀착시킨 채로 눈을 떴다. 허기에 지쳐 위장이 쪼그라들면 뱃가죽을 집어 뒤틀어 소리가 나오지 않게 했고 졸음을 쫓기 위해 꼬집은 허벅지에는 핏딱지가 눌어붙은 생체기가 다섯 개도 넘게 늘어났다.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문의 작은 창에서 녹끼리 부대끼는 소리가 났고 선영은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창틀에 코를 박았다. 그렇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허한 어둠과는 전혀 상반된, 검은 장발의 창백한 피부 위로 떠올라있는 자신의 두 눈동자였다.
 비명을 지르던 선영은 목구멍을 때리는 과한 들숨과 함께 잠에서 깼다. 별 것 아닌 악몽이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배뇨감이 몰려왔고 페트병은 더 이상 자리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구석에 놓인 페트병에는 암모니아 냄새 하나 없이 멀끔한 새 빈 페트병과 편의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선영의 오랜 습관이 다시 돌아왔다. 왠지 모를 간지러움에 허리를 긁을 때마다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그녀는 손끝에 뭍은 핏자국을 아무렇지 않게 치맛자락에 문질러 닦아내고는 입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알밤 까는 듯 까끌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갈려 나온 손톱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손톱을 깨무는 습관을 처음 시작한 건 선영이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별 같잖은 이유를 핑계로 손바닥을 들던 아빠와 관심 없는 새엄마, 그리고 자신과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그년의 어린 애새끼. 그녀는 한 번도 남동생이라고 불러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냥 모르는 애새끼였다. 학교 문턱도 밟아본 적이 없는 선영은 여덟 살의 나이에 이웃집 목사의 신고를 통해 독립하게 되었다. 보호시설에 들어갔고 어느 크리스천 집안에 입양되었으며 이전 호적 관계의 인간들에게 형사처벌과 함께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악연도 끝을 맺었다.
  어쩌면 그 애새끼의 짓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영이 일곱 살 때, 그러니까 고속도로에서 페트병에 소변을 처리하고 난 다음날 그녀는 잠에 든 애새끼의 얼굴에 커터칼을 그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어린 애새끼와 나는 왜 이렇게까지 차별받는 걸까. 혈육이 아니라서?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성격이 살갑지 못해서? 어린 애새끼는 그녀의 의문이 나열된 일기장을 손에 들고 깔깔거리며 대답했다. '재밌어서 그런 거 아냐?' 그래서 선영은 어린 애새끼의 얼굴을 칼로 그었다. 피와 침과 눈물이 서로 섞여선 붉게 번진 얼굴로 엄마와 아빠를 찾는 어린 애새끼에게 질문했다. 이것도 즐겁냐고.

  언론사 인터뷰에서 선영의 새엄마는 '저런 게 딸이라니, 가족이라는 사실조차 너무 두려워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정폭력의 정황이 발견되면서 선영은 정상 참작을 받았지만 여기까지 확인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선영의 가정사에 대한 보도 영상보다 촉법소년에 대한 논의로 불타는 시사토론 영상의 조회수가 곱절은 더 높았고, 그녀는 어린 나이에 빨리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손가락질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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