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정신과 초진>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진료-(22.11.28 월요일)
재수학원에 등록함과 동시에 정신과를 찾았다. 데스크에 초진 접수를 하니 ‘왜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는지, 지금 불편한 곳은 어딘지’등 현재 상황에 관한 설문지를 건네주셔서 작성했다. 설문지와 함께 유년시절부터 정신과를 방문한 직전까지의 삶을 손으로 정리한 종이를 들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우 젊어 보이는 여의사 분이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안녕하세요. 2년 전 군대에서 자살시도를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2~3개월 정도 치료받다가 중단했어요. 그러다 최근 주변에서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인다고, 위험해 보이니 꼭 정신과를 가보라고 해서 오게 됐어요. 저도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감을 느끼고 있고요..”
“자살시도까지 했는데 3개월 만에 치료를 중단했나요? 왜 그러셨죠?”
“그 병원에서는 아무런 효능을 느끼지 못했어요.”
“정말 위험했네요. 지금이라도 다시 와서 다행입니다.”
“아 선생님 제 상태에 대해서 직접 적어온 게 있는데 보여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좋아요. 이건 본인이 적으신 건가요? 이 틀은 인터넷에서 찾으신 건가요?”
“제가 평소에 스스로 정리하는 거 좋아해서 적어둔 거예요.”
“알겠습니다. 일단 우리 초진이라서 뇌파검사해 볼 거예요. 이 결과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접근할지 이야기해 보시죠”
머리에 몇 개의 핀을 꼽고 10여분을 기다리니 검사가 끝났다.
“지금 뇌파검사 결과를 보니 스트레스에 굉장히 오랫동안 노출되었네요. 치매 환자에게 보이는 뇌파가 보여요. 기억력 저하, 인지능력 감퇴, 사고력 감소등이 지금 나타나고 있어요. 약물과 면담 치료를 병행하면 많이 낮아진 수치들을 높일 수 있을 거예요. 공부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고요. 일단 약물 처방을 할 것이고요 상황이 급박하니 3일 뒤에 다시 보기로 해요.”
3. 세 번째 진료-(22.12.12 월요일)
이제 나에게 정신과 진료는 일주일이 흘러갔다는 신호이다. 한주의 마무리이자 시작. 한 주를 어떻게 보냈고, 또 한 주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고 정리하는 공간이다. 종교활동과 비슷한 면모가 있는 듯하다. 시간을 내서 특정한 공간에 가고, 한 주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는 것.
“선생님 궁금한 걸 적어왔어요. 대입에 대한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궁금해요”
“무엇을 배우고 싶나요? 왜 대학에 가려고 생각하신 거예요?”
“지금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건 경제학이랑 의학이에요. 생각하고, 사고하고, 글 쓰고, 새로운 걸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구나를 깨달아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어서 대학에 가려고 선택했어요. 조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요식업에 일하면서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를 느꼈고요.”
“먼저 말하자면 목표 설정은 크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100을 목표로 달려야지 50을 할 수도 있는 거니깐요. 그리고 생각하고, 사고하고, 글 쓰고, 새로운 걸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의학이라는 분야는 맞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의학은 사견이 들어가지 않게 철저히 생각을 하지 않도록 훈련받는 분야입니다. 지금 00 씨를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을 설정해 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있어 보여요. 블로그나 SNS가 여러 가지 폐해도 많지만 여러 가지 통로들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의 흔적을 보면서 나에게 맞는 건 무엇일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고요. 경제학과 의학은 너무 극과 극을 달리고 있어요.
또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요리든 어떤 분야든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굉장히 빠르게 나의 한계라고 받아들이고 그 선을 명확하게 그어버리는 성향이 짙습니다. 한계는 항상 유동적인 것이지, 그날의 한계가 오늘의 한계가 아닙니다. 삶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며 100을 투입했다고 100이 나오는 게 인생이 아닙니다. 100을 투입했는데 30이 나올 수도 있어요.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입니다.”
“선생님 또 다른 질문이 있어요. 저는 수영을 할 때 굉장히 행복해요. 그래서 학원에 다니면서 수영장에 다니려는데 엄마가 옆에서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냐면서, 공부하는 수험생이 무슨 수영장에 다니는지 따지더라고요. 제가 잘못된 건가요?"
“어차피 아무리 공부를 좋아한다고 해도 365일 공부할 수 없어요. 주변에서 이렇게 하는 게 좋다, 저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해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라면 또 그게 스스로에게 잘 맞다는 걸 본인이 알고 있다면 그걸 하는 게 현명한 방안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면 운동을 하는 걸 추천해요”
“감사해요. 마지막 질문이 있어요. 계산해 보니깐 재수 1년 동안 5,00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더라고요. 여기서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5000만 원을 어떻게 갚지? 도대체 몇 년을 갚아야 하는 건가?’ 같은 생각들요. 지레짐작 겁을 먹고 있기도 하고요.”
“아까 한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앞으로 1년간 더 많은 이상한 말들, 주변의 기대, 투자에 대한 압박이 있을 거예요. 물론 약물과 면담을 함께 진행하면서 무너지지 않게 할 것이지만 00씨 스스로도 말에 꽂혀서 휘둘리기보다 ‘아 저 사람은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나보다’하면서 다가오는 파도에 올라탈 필요가 있어요. 그 파도 아래에 갇혀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요. 현재에 집중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