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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l 29. 2024

정신과 진료는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화-죽음 직전에서 부터 삶의 희망을 얻은 지금의 모습>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어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평소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하는 시간을 자주 가집니다. 이번 글을 마지막화인 만큼 제가 직접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정신과 진료 이야기를 타인과 공유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계기로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하셨나요?

:제 진료 이야기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음.. 올려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염려하지는 않았죠. 이름이 나오지 않게 00 씨라고 부르기는 했죠. 개인 인스타그램에 평소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적어 올리는 것을 좋아해서 큰 부담감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아직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구나 싶네요.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로 다리 부상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재활과정을 기록했을 때 “재활 과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기라고 하면 지난 1년간 정신과 진료를 받은걸 다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걸 글로써 다시 정리해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가 대학에 입학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써온 글들을 보면 꽤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녹음을 따로 하신 건가요? 어떻게 진료 기록을 다 해둘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타인과 대화할 때 상대방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맥을 굉장히 민감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성향을 살려 진료받은 당일 날 주치의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모두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기록한 걸 주치의 선생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혹시 녹음했어요?”라고 놀라시더라고요.

기록을 한 이유가 있을까요?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제게 해주신 이야기들이 단순히 한 번 듣고 흘리는 휘발성의 언어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도 중요한 말들이라고 판단했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지침서 같은 느낌이죠. 방금 지침指針의 한자를 사전에 찾아봤는데요. 정확하게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가리킬지, 바늘 침. 삶이 흔들릴 때 어디로 고개를 들고 쳐다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주치의 선생님이 해주신 말을 다시 봤는데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어떻게 글을 볼 때마다 같은 글인데도 매번 새롭습니다.

진료 기록을 다시 정리하고 글로 써보니 어떠신가요?

: 작년에 1년간 진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가 호전되고 있는지를 잘 못 느꼈습니다. ‘내 삶에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나는 평생 정신과 다니고 약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라는 사고가 팽배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글을 정리하고 살펴보니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도 않고 체감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지만 아주 조금의 진전이 매번 있었던 것이죠. 깨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깨진 부분이 메꿔졌고 그 덕에 물도 조금씩 차올랐던 것이죠.

이 글을 마친 지금의 소감은 어떤가요?

:지금의 감정이라고 하면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고 표현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심으로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경제적 여건, 환경적 여건, 시간적 여건이 안 되는 것이죠. 다행히 저는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셨고 재수학원을 다녔기에 매주 일정한 시간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게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절대 간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건 제가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이해입니다. 상담선생님이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사실 의사도, 상담사도 아무도 이 병에 걸려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본인은 그 고통의 길을 걸어왔으니, 그 병과 오랫동안 싸워왔으니 그 누구보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고의 오류화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았으니 너도 나을 수 있어.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이것이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과하면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각자 다른 삶이고 다른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가능했다고 남이 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것일까요?

이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와닿았으면 좋겠나요?

: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은 ‘내가 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읽어 달라고 방향을 제시하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요리가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셰프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어도 결국 경험의 마침표는 그 요리를 먹는 사람에 의해 찍어집니다. 이 부분은 그 어떤 셰프도 컨트롤할 수 없죠. 그들이 관여할 수 있는 건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입니다. 그래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보면 그들은 이 음식을 무엇으로 만들었고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상세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도 설명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결국 독자분들에 의해 이 글이 완성이 되니깐요. 저는 이 글들이 ‘실사용 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면 광고를 할 때 실사용 후기가 인기가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용해 보고 이것의 장단점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죠. 이처럼 이 글이 정신과 진료에 대한 모든 걸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제 경험에서의 이야기는 모두 담아냈습니다. 어떻게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엇이 변했는지 등 말이죠. 한마디로 ‘죽음 직전에서부터 삶의 희망을 얻은 지금의 모습’까지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과도한 희망이 있다면 단순히 정신과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바탕으로 살아갈 앞으로의 삶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제 프롤로그가 마치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정신과진료는 삶을 바꿀 수 있을까>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상세히 답글 달아드리겠습니다. 정신과 이후의 이야기, 대학 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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