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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Aug 05. 2024

정신과는 나약한 인간만이 가는 곳인가?

<에필로그-멘탈, 의지, 운동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

4년간 3곳의 정신과를 다닌 끝에 조울병(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치료로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어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고, 느끼고, 생각한 걸 기록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글을 적고도 무엇인가 빠졌다는 느낌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문장은 끝이 났지만 이곳에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니 두 가지가 누락된 것을 느꼈습니다. 먼저 정신과를 가기 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가. 이 부분은 정신과는 약한 인간만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도대체 무슨 효용이 있다는 것인가?‘에 대답하고자 합니다.


먼저 정신과를 가기 전의 삶. 정신과를 다닌다고 하면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는 합니다. 정신과 환자는 멘탈이 약해서 그런 거야, 그저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야,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야 등등 말이죠. 그런데 ‘과연 진실이 그럴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저는 철인 3종을 완주했고 30여 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했고 6000m 고산을 등반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 때는 무전여행을 하기도 했고요. 이것이 한 사람을 온전하게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 일부분 답을 해줄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멘탈이 약하고, 의지가 약하고,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철인 3종을 완주하고, 6000m 고산을 등반하고,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철인 3종 & 6000m 고산 등반


이것을 언급한 이유는 당신이 의지가 강하고, 멘탈이 강하고, 운동을 하더라도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과 환자라고 해서 ’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보다 더 용기 있고 더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 자신이 현재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자신의 가장 날 것을 꺼내 보여 도움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지만 치료를 받기 전 보다 이후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치료 과정을 통해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오는 행적을 돌아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총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삶에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자연스레 두 번째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정신과 자체가 칼로 도려내듯이 한 번의 치료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을 정신과 전문의와 호흡을 맞추면서 약물과 면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저도 스스로가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의 제 삶을 돌아보면 그저 ‘기적’과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우울증에 빠지고 조울병 판정을 받고 정신과에 면담을 갈 때면  항상 ‘나는 언제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 회복되는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터널의 끝을 확인할 수 없었거든요. 아니,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출구가 있는 터널인지 조차 몰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는 이 심연의 공간이 제가 평생을 살아야 하는 곳이라고 받아들였으니깐요.


지독한 우울 끝에 이런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지금 25살의 나이로 심리학과에 입학해 꿈을 다시금 찾은 느낌을 가지고, 좋은 에너지를 채우고자  열심히 준비해  10월에 있을 철인 3종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장 특별하게는 제가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요.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라는 걸 떠올려봤을 때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 가족들 조차 너무 신기해할 정도니깐요.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입원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힘들어했는데 대학에 가니 마치 날개가 펴지듯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고 있으니깐요. 최근에 한 지인이 sns에 ‘삶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을 정도였다’라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가득 든 생각은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였습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제가 지금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압니다. 우울이라는 바다에 빠지면 그 어떤 말도 허망하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 파도에 빠져 죽지 않아야 그 파도 위에 올라타서 삶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렇게 답해주셨죠. “정신과 질환 자체가 완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환자 분 중 한 명이 몇 달째 진료를 받지 않다가 얼마 전에 다시 병원을 방문하셨어요. 최근에 좀 힘들다고 하셔서 면담과 약물 처방을 진행했죠. 이처럼 제가 생각하는 ‘완치‘의 개념은 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때가 되면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거예요. 평소에는 병원을 다니지 않다가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병원에 와서 치료받고 약물 처방을 받아가는 것이죠. ”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끝에 6월 달부터 약물 복용량을 천천히 줄여가서 지금은 절반정도 줄였고 조만간 복용을 완전히 중단할 예정입니다. 정신과가 삶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묻는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다 ‘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많이 고민하고, 많이 넘어지고, 많은 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진료 전에는 끝없이 오르내리는 낙차가 너무나 큰 롤러코스터라면 지금은 일정한 궤도를 돌고 있는 대관람차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희로애락을 느끼지만 그것에 집어삼켜지지는 않는 것이죠. 또 여전히 고민을 하고 생각을 많이 하지만 고민의 선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인지, 이것을 언제까지 생각할 것인지 그리고 매 순간 그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품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보는 것이죠. 또 너무 고민이 많다 싶으면 운동화를 신고 헬스장에 가는 루틴을 얻기도 했고요.


인생이라는 바다에 빠졌지만 숨을 못 쉬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게 정신과 진료 이전의 삶이었다면 이제는 호흡법도 배우고, 수영도 배워서 그 바닷속의 아름다운 물고기와 산호초들을 구경하고 즐길 수 있는 게 정신과 진료 이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정신과진료는 삶을 바꿀 수 있을까>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곧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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