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로 다시 태어나다
2022년 8월 28일 딸이 전화로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딸은 결혼 전부터 아이를 넷 낳겠다고 줄곧 이야기했었고(지금은 셋으로 줄었지만) 결혼한 지 3년이 넘었기에 임신 소식은 당연하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과 달리 일찍 찾아온 임신 소식에 딸은 흥분하고 들떠 전화를 했다.
자신의 얼떨떨한 마음과 육아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으며 내 기분을 물었다.
할머니가 너무 빨리 된 거 아니냐면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딸이 결혼하면서 당연히 할머니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전해 듣고 나니 여러 가지 마음이 올라왔다. 육아의 현실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그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의 질문을 건져 스스로 물어보았다.
"넌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니?"
"손주와 통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그러려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 줄 아는 쿨한 할머니가 되어야 할 텐데?"
"글쎄.. 뭐부터 해야 하지?"
부모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할머니가 되는 것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생소한 느낌과 예상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딸이 임신 기간 동안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도 할머니가 될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이 떠올랐다.
우연히 누구에게 소개받아 읽다가 1장을 읽고서 손주가 태어나면 그림책과 함께 천천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덮어둔 책이다.
그 책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돼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책 1장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책들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그림책이 비쌌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그림책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그림책 작가가 유명한 상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그 작가의 책을 전부 주문하기도 했다.
문득 결혼 전 큰언니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대형블록을 사놓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후 내가 그림책을 먼저 읽어 본 후 그림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손주와의 연결점을 그림책으로 생각해서였는지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활동에 그림책과 관련된 일들이 늘어났다.
내가 진행하는 연수에 그림책으로 성찰하는 연수를 개설했고 덕분에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도서관에 가서 몇십 권의 그림책을 읽었다.
또한 그림책 독서모임과 그림책 전문가가 하는 연수에도 참여하면서 그림책을 조금 더 폭넓게 읽게 되었다.
그렇게 그림책과 시간을 보내는 사이 2023년 4월 8일에 손자가 태어났다.
나 또한 할머니로 새롭게 태어났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가볼 수는 없었지만 스마트폰 앱의 발달로 손자의 첫울음의 감격부터 일상의 커가는 모습들을 실시간으로 전송받을 수 있었다.
내가 딸을 낳아 시댁에 처음 갔을 때 맨발로 나오시던 시아버님의 심정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손자라 예쁘겠지 하는 생각 이상의, 경험을 해봐야만 알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다.
손자가 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할머니가 되니까 어때요?"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매일 손자의 몸짓과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본능을 따라 행동하는 손자의 일상과 매일 보다시피 한 그림책이 연결되어 말을 걸어왔다. 스쳐 지나가는 마음속의 말들을 그냥 버리지 말고 글로 담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 포포야~ 이 세상에 와 주어서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할머니로 살아가는 기쁨과 축복을 매일 누릴 수 있게 되었단다.
태어나서 돌까지 네가 보여준 기적을 통해 할머니는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단다.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순간들의 이야기가 지금 할머니에게 인생을 살아갈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듯이 네 삶의 소중한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단다.
할머니의 돌 선물이 네 맘에 들었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