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벗들과 모방 시 쓰기로 글쓰기 연습하는 재미 좋아
오늘이 국제 호랑이의 날이란다. 호랑이를 좋아하는 호랑이 아줌마니까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아니, 내 생일이라도 되는 양 반갑고 즐거운 걸? 2010년 러시아에서 열린 호랑이 정상회의에서 제정된 날이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호랑이가 보존돼야 생태계 균형이 유지되니까, 이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의미있고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호랑이 띠 아줌마는 기념하는 글을 쓴다. 호랑이가 들어간 글, 모방 시 "그 아이의 호랑이 연대기"를 올려 본다. 모방 시 쓰기는 좋은 글쓰기 연습이고, 난 글쓰기로 자기 돌봄 중이니까!
그 아이의 호랑이 연대기/ 김화숙
1962년 2월 추운 겨울
잔설에 아직 찬바람 매서운데
쌀독이 비어 가고 보릿고개 걱정되던 날
한 범띠 가시나 태어나다
우는 아이 계집아이라고 모두 실망하다
1966년 7월 삼복더위에
경북 영덕군 창수면 방가골 산골 마을에
배기통에 연기 나는 자동차가 처음 오다
남동생 등에 업고 여동생 손 잡고 샘물 주전자 들고
아이 느린 걸음으로 걷다가 또랑에 처박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아이와 동생들 함께 울다
1969년 3월 개나리 피는 날
아이 가족 산골 떠나 대구로 이사하다
옥산 국민학교 갔더니 입학식 끝났다고 돌아가란다
아버지 손잡고 돌아서며 아이 눈물을 삼키다
학교 가고 싶어 아이 동생들과 매일 학교놀이 하다.
1970년 3월 샛바람 부는 날
아이 대구 달성국민학교에 입학하다
오빠가 쓰던 호랑이 그림 고동색 멜빵 가방에
언니한테 물려받은 올 풀린 스웨터에 색 바랜 운동화 신고
아이 1학년 4반 도시 아이들 뒤에 겅중 서다
1971년 4월 샛바람 부는 봄날
할머니 돌아가시고 부모님 귀향 결정하다
언니 오빠는 중학교 중퇴하고 농사일 돕고
아이 창수면 신리국민학교 2학년 1반으로 전학하다
등하굣길 1시간 산길을 아이 비호처럼 누비다
1972년 10월 가을 추수 후
아이 가족 면소재지 영해로 이사하다
청소년 언니오빠는 대구로 돈 벌러 나가고
영해국민학교로 아이와 두 동생 1,2,3학년 다니다
학교 중퇴한 언니 오빠가 아이 가슴에 짐이 되다
1975년 5월 따스한 봄날
운동장 아침조회 시간 줄 서 있는데
아이 바지 속에 낯설고 축축한 이물감 느끼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초경을 맞으며
여자로 살아갈 미래를 아이 우울하게 그리다
1976년 2월 중3 앞둔 방학
문간방 하숙객 남고 총각 선생님께 수학 문제 질문하는데
안방에서 어머니 아버지 부부싸움 소리 크게 들리다
아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고 우울해져
엄마처럼 안 살겠다 아빠 같은 남자 안 만나겠다
결혼 따위 아이 따위 없는 자유를 상상하다
1977년 나른한 봄날
학교에서 돌아와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는데
경주로 전학 간 고향 남자아이한테서 편지 받다
나를 뭐로 보고 감히 이딴 편지를!
여자로 본다는 건 나를 함부로 취급한다는 뜻
아이 엄마 앞에서 편지를 아궁이에 던져버리다
1980년 5월 봄날
TV에 날마다 광주 '폭도'들이 나오다
아이 교문 근처에 보이는 경찰과 군인을 무서워하다
대입 공부 머리 식히러 경북대학교 구경 갔다가
총을 찬 군인들에게 막혀 교문에서 되돌아서다
데모하는 대학생이 아이 이해 안 되고 궁금하다
1982년 9월 가을 하늘 청명한데
대학 신입생 눈엔 날마다 최루탄 눈물 흐르다
데모도 진로도 어정쩡한 아이 술이나 마시다
낮술에 취해 강의 시간 잔디밭에서 자다
타는 목마름으로 아이 선교단체로 이끌려 가다
1983년 3월 목마른 봄날
사마리아 수가 우물가의 한 여자와
남루한 유대 여행자 예수의 대화를 엿듣다
단체에서는 그 여자를 납작한 죄인으로 가르쳤으나
아이 사마리아 왕언니의 기운을 남몰래 간직하다
1984년 10월 낙엽 지는 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이룬 것 없이 졸업반 맞을 게 두려운 아이
여자 말고 나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가을 성경학교에서 로마서 공부하다
예수의 사도요 하나님의 대사로 소명을 보다
1987년 6월 이른 장마와 더위에
몸도 마음도 무겁고 흐느적거리는데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던 박종철에 이어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다
아이 B형 간염으로 입원 후 낙향해 요양하다
1987년 8월 길고 긴 여름
한 남자가 아이 가슴에 쿵 들어오다
누구와 결혼하게 해 달라 기도한다는 그 말이
율법신앙 마녀사냥의 빌미가 될 줄이야
가스라이팅과 자기혐오에 칭칭 감겨들며
아이 호랑이 야성 '회개'하고 고분고분 길들다
1990년 9월 아직 더운데
사랑 존경 순종의 결혼 서약하고 나니
잠자던 호랑이가 아이 가슴에서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질문하니
와락 “이 결혼 없었던 일로 해요” 선언하다
우는 사내 사랑하기로 아이 곧 마음 바꾸다
1991년 9월 어느 날
더 큰 권위에 의탁하고 순종하느라
아이 가라니까 가고 오라니까 오고
베를린 갔다 빈으로 갔다가 폴란드 우찌로
어학 공부 시작하고 자비량 선교사로 살다
자유와 연대의 나라 폴란드와 아이 사랑에 빠지다
1996년 4월 봄날
며칠 밤 베갯잇을 적시며 울다
6년 만의 한국행에 결국 ‘순종’하다
다시 낯설고 불편한 나라 한국 안산에서
돌봄 섬김 인내 헌신 사랑 침묵의 도돌이표
고장 난 중고 세탁기가 아이의 실존을 깨우치다
1998년 1월 찬바람 속에
띠동갑 셋째 아이 막내아들 태어나다
세 아이 엄마, 가정교회 사모는 세상이 궁금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림자 인생이 불편한 아이
미친 듯 글이 쓰고 싶다 글이 쓰고 싶다
아이들 가정조사서에 엄마를 ‘작가’라 쓰게 하다
2002년 새 천년 다시 새해
불혹 아닌 매혹의 마흔 번째 생일 후
“사모님은 궁금해하지도 말고 묻지도 마시라”
새 시대와 불협하는 단체 최고 리더의 그 말
잠자다 콧털 건들린 호랑이 눈뜨고 떨쳐 일어나다
순진했던 난 이제 없어! 내 뜻대로 살기로 하다
2004년 12월 어느 날
가정폭력피해 여성 쉼터 활동가 아이
사회복지사양성과정 12주 수료 후 사회복지사 되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여성 목사와의 연대로
노인복지로 취업해 아이 월급 받는 직장인 되다
젠더 렌즈 호랑이 렌즈로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하다
2008년 가을 낙엽 지는데
초중고 세 아이 새벽밥 해 먹여 내보내고
아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밥하고
일하며 글 쓰고 퇴근하면 아이들 영어 가르치고
자기 글 쓰리라 글쓰기 강좌 참여하고
질문 가득 피곤에 쩐 몸으로 집에 돌아오다
2014년 4월 16일 봄날
벚꽃이 피고 지고 나날이 따스한데
수학여행 간 막내 또래 아이들을 두고
선장과 책임자들이 먼저 도망간 세월호
종일 사무실 컴퓨터에 떠 있는 하루다
검은 현수막 앞에서 아이 다리가 후들거리다
2014년 10월 단풍 물드는 날
수술 후 항바이러스제 처방 거절한 아이 몸
질문과 회의 속에 의사 앞에 앉다
그게 왜 궁금하냐고? 누가 다 책임진다고?
귀에 울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
아이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자연치유 결심하다
2016년 12월 꽁꽁 언 겨울을
“송박영신”, “이게 나라냐”, 촛불이 타다
이게 결혼이냐 이게 가정이냐, 분노한 아이
변화가 아니면 이혼이다, 짝꿍에게 선언하다
미친 듯이 읽고 토론하고 글 쓰며 페미니즘 하다
B형 간염 항체 형성 새 몸 갱년기 에너지 폭발하다
2017년 3월 잔설 녹던 날
“82년생 김지영 토론에 초대합니다”
안산 여성노동자회 이프에서 온 문자 한 통.
아이, 바로 이거다, 둘이 같이 갈래?
페미니즘 토론하는 커플로 다시 살다
아이 가슴속 호랑이 기운이 용솟음치다
2020년 7월 여름 더위 속
4.16합창단 신입단원 수습과정 6주가 끝나고
숙이는 알토 덕이는 베이스 정단원이 되다
가만히 있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곁에 있을게
노란 리본티, 검정 티, 검정 후드, 개량한복 입고
세월호 가족 곁에서 노래하며 늙어가기로 하다
2022년 9월 결혼 32주년에
첫 단독 저서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나오다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독자들과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나오는 목소리 목소리들
나를 살리는 자기 돌봄과 자기 해방의 글 쓰기
아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신나게 달리다
2024년 6월 어느 날
마흔 들어설 때 꼭 하고 죽자 하던 그 이야기
말 못 하고 죽은 귀신과 싸우며 구토하며
아이『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출간하다
나보다 더 말 못 하고 죽은 귀신들을 위해
아이 자기 목소리 내는 호랑이 작가로 살기로 하다
2024년 12월 3일 겨울밤
친구와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씻고 자려다
“비상계엄을 선언합니다” 방송을 보다
이 미친! 안산진보당원 벗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
“정적제거 국민억압 윤건희를 타도하자” 외치다
친정 엄마 애도 눈물을 아이 탄핵 집회로 쏟아내다
2025년 4월 4일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차별과 배제 없는 민주시민 광장이 이기다
더 읽고 보고 토론하고 글쓰고 행동하는 작가활동가
성평등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호보당당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