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타던 친구 전화를 안 받은 후 2주, 자기돌봄의 편지를 쓴다
내가 긴 침묵을 깨고 G에게 편지를 써서 카톡으로 보냈다. 명절 연휴를 개운하게 보내게 해 주고 싶고 내 마음도 가볍고 싶어서. G가 읽고 바로 답이 왔고 나도 응답했다. 이어서 결국 G한테서 전화가 왔고 내가 받았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울며 부르는 내 이름.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눈물의 결자해지.
친구도, 우정도 사랑도, 눈물을 먹고 사는 걸까.
아파도 울어도 솔직함이 살 길이다.
G에게!
화숙이 침묵하고 아무 반응 안 하니 기분이 어때?
그러지 않던 친구가 왜 이러나 궁금하긴 해?
침묵하는 내게 말 걸려면 무서워?
뭔가 잘해주는 걸로 대화를 대신하는 게 G의 방식인 거지?
침묵에 잠겨 있어 보니 몰랐던 내 마음이 보이고 친구 모습도 낯설게 보여서, 놀라며 즐기고 있어. 내가 잘난 척하고 살았구나, 탄식할 때도 있어. 내 브런치에서 친구 관계에 대한 글을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질문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어. G에게서 오는 말이 없으니 내가 결국 침묵을 깨네. 안 하던 짓을 했으니, 결자해지도 내 몫이겠지.
고백할게. G에게 내 맘이 좀 상했더랬어. 아니, 자꾸 질문하게 되더라. 그놈의 잠수 때문이야. 말도 없이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넌 변함이 없더라. 잠수 중에 내가 안부를 물을 때 돌아오는 차가운 반응, 단톡방에도 안 나타나다가, 아무 일 없었던 양 친하게 다가오는 반복. 좋은 친구로 지낸다는 게 뭔가 질문하게 돼. 네 태도에 상관없이 나는 한결같이 환대하는 친구일까? 그런 그릇된 믿음을 줬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불찰이야.
나는 그런 위인도 못 되거니와 그런 관계를 싫어해. 서로 마음을 나누는 상호적인 우정과 사랑을 하고 싶어. 서로에게 지지가 되는 평등하고도 자유로운 친구 말이야. 우리 관계는 뭔가 말하기 어려운 불균형이 있었던 거 같아. G는 필요할 때만 나를 친구라 하지, 나는 속상해도 늘 환대하는 친구 코스프레를 했고. 아무 일 없는 듯이 웃은 내가 부끄러워졌어. 손바닥도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하잖아.
기울어진 관계는 지속가능성 제로라고 봐. 어느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이번에 G가 전화했을 때 알게 됐어. 낯선 내 맘의 반응, 친구의 전화를 받기 싫다는 거였어. 전화가 전혀 반갑지 않았어. 내 맘이 그렇구나 인정하고 따르기로 했어. 나는 결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게지. 친한 척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잠수탈 거란 생각을 하니 오히려 화가 났어. 말로만 베프는 하고 싶지 않다고.
단톡방에서 더러 모임에서 계속 볼 텐데, 나만 너무 진지한가?
G는 과연 내 말뜻을 알아들을까?
내가 아직도 옛 습관을 못 버리고 착한 척했구나 싶어. 내가 자신과의 관계도 주변 관계도 어떻게 뒤집고 바꾸며 살아왔는지 알잖아? 그게 과거로 다 끝난 게 아냐. 지금도 계속 변화가 필요하지. 부모자식, 부부, 친구, 계속 연구하며 새롭게 들여다보게 됐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오해를 줬다면, 내 위선과 오만을 용서해 줘.
지금까지 우리 관계가 과연 베프였을까? G가 혹시 불치의 병 때문에 그러는지, 바꿀 수 있는 태도 문제인지, 그것도 모르는데 친구일까? 우리 관계가 새로운 변화를 겪으며 더 좋은 친구가 될지, 허공의 메아리가 될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다만 긴 추석 연휴, 마음에 짐을 벗고 즐겁고 건강하게 잘 보내길 바라며 내 맘을 고백해 봤어. 안녕!
2025년 10월 3일 화숙
화숙에게
나의 불안정한 감정기복으로 인해, 일부러 내 전화도 카톡도 무시하고 심지어 남편이 뭔가 전해주려고 전화했을때도 극장인가 여행 중인가 라는 답변했던 거. 나 역시 잘못된거 알아. 베프라고 가식떨은 것도 인정하고 우리에게 더 시간이 아니, 이런 나의 미성숙한 모습이 싫다면 그냥 00의 회원 정도로 지내길 바라는 거야 난.
아직도 화숙을 이용했다고는 생각 않는데, 여고시절의 친구들도 변하더라. 하물며 중년에 만난 사이야. 참 사는게 거지같다. 나를 낳은 엄마도 모지리 취급하고 형제 자매도 묘한 거리감을 느끼는 요즈음, 걷기가 뻐근할정도로 몸상태보다도 지금 이상황이 더 많이 아파오네.
화숙이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난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에 화숙 같이 솔직하고 당당한 주장에 자존감과 필력까지 나보다 앞선 사람인데...25일 00 행사에 갈 거야
그래 G, 답해 줘서 고마워. 00에서 계속 보니까, 지켜 보자. 우리 마음을 따라가야 솔직한 친구가 되겠지. 나도 많이 미안해. 남편 샘 연락왔을 땐 진짜 원주 여행 중에 영화관이었어.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향기 속에
숨겨진 내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걸
너는 아니
우리 눈에
다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자말로 하시던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나는 날
이 세상엔
나쁜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
눈물이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