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고 토론하고 쓰다
모든 만남에는 에로스가 현존하며, 이는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종교적 체험에 사용되는 언어가 주는 울림과 그 역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만남’으로 번역되는 산스크리트어 ‘satsang’은 영적인 회합을 뜻한다. 영어에서 ‘공통common’이라는 단어는 ‘소통communication’과 ‘연대communion’로 연결된다. 연대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존재의 본질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수전 그리핀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 겉 표지를 열면 하얀 속지에 수전 그리핀의 말이 인용돼 있다. 읽기 시작했을 때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 인용문에 눈이 한참 머물게 됐다. 마음에, 영혼에 울림이 있었다. 에로스의 현존, 신성, 종교적 체험, 이게 모든 만남 그리고 사랑 이야기다. 사랑은 결국 소통과 연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거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영혼의이어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진행하는 안산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토론 모임 '이프'의 9월 토론 책이었다. 읽고 토론하고 난 여운이 장난 아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일단 기록만 남기고 발췌를 오려 본다.
"이 책은 여자들이 사랑에 대한 탐색을 삶의 중심으로 되찾아왔을 때 느껴 마땅한 기쁨에 대해 입증하고 기념한다. 우리는 사랑받기를, 자유롭기를 갈망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보여주고 싶다. "
9월 이프 《사랑은 사치일까?》 토론 안내
1. 소개와 근황/ 별점(5점)과 책 읽은 소감 한마디.
2.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문장/단락/개념을 소개(낭독)하고 자기 생각 보태기.(밑줄 친 부분을 통해 책 속으로 넓게 들어감. 흐름을 따라 필요할 때 진행자가 질문을 추가한다.)
3. 《사랑은 사치일까?》의 영어 제목은 《Communion: The Female Search for Love》이다. 책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Communion은 무엇인지, 책이 짚은 사랑의 면면을 정리해 보자. 사랑에 대한 저자의 통찰과 주장에 공감/비공감을 담아 이야기해도 좋다.
4. 3장에서 저자는 “사랑을 추구하는 여정은 나를 페미니즘으로 이끌었다. 페미니즘적 사고는 나를 얽매고 짓누르던 과거로부터 나를 풀어주었다.”라고 한다. 5장에서는 “권력보다 사랑을 얻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그만뒀다.”라고 한다. 페미니즘과 사랑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을 이야기해 보자.
5. 저자는 “내가 꿈에 그리던 남자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206쪽)라고 했다. “내가 꿈에 그리던 남자/여자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신남성’을 이야기해 보자.
6. 《사랑은 사치일까?》 토론은 내게 .................였다.
《사랑은 사치일까?》, 벨 훅스, 현실문화, 2015 발췌
우리의 가치, 우리가 사랑받을 가능성은 언제나 다른 이의 승인을 통해서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모색한다. 14
그러니까 여자들은 사랑의 속성에 대해 처음부터 혼란을 겪는 셈이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끊임없이 평가절하되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며 사회화된다. 그런 까닭에 페미니즘 운동이 일기 시작하던 시기에도 사실은 가부장적 승인이 관건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사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척하도록 배웠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들은 대부분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허용된 테두리를 벗어나면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15쪽
오늘날 젊은 여성을 포함한 모두에게 사랑의 본성에 대해 알려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페미니즘 투쟁을 거치며 거기에 기반을 둔 치유 과정을 통해 자기애야말로 사랑을 제대로 찾아가는 핵심임을 깨닫게 된 여성들, 이제 중년기에 접어든 내 또래 세대일 것이다. 17-18쪽
여자들은 생애 대부분을 가부장적 길잡이들이 이미 지정해 놓은 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했다. 여자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실망스럽더라도 비판하거나 도전하는 대신 지배 구조 안에서도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야 했다. 페미니즘 운동과 그 이후의 많은 진통 끝에 여자들은 이제 ‘사랑’과 ‘지배’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데 그 어느 때보다 힘껏 동의한다. 둘 중 한쪽이 존재한다면, 나머지 한쪽은 부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28
많은 여성이 그렇듯 나도 다른 상대를 다시 구하지 못할 거라는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런 두려움이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길게 유지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유와 자아실현, 사랑에 대한 나의 갈망이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와의 관계를 떠나는 것은 내게 사랑의 포기가 아니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몸짓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관계를 떠났고, 그건 기분 좋은 결정이었다. 사랑을 알 수 없던 관계를 떠남과 동시에 나는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36
내 경우,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광적이고 히스테릭한 괴짜라는 이미지와 크게 보면 공상의 영역에서 내가 만든 자유분방한 여성 작가라는 이미지 사이에 끼여 있었다. 당시 내가 닮고 싶은 여성 역할모델이 없었던 건 확실하다. 55
사랑을 찾는 여정에서 나는 자유를 향한 길을 발견했다.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곧 사랑을 배우는 첫 단계였던 것이다. 58
자유로운 여자들은 결코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을 선택했고 그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선택이란 우리가 의지와 권력, 그리고 주체성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빠진다는 말에는 권력을 잃고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65
우리는 여성의 자유에 대한 개념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를 포함할 수 있게끔 재정의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74
1980년대에 들어서자 곧 모든 페미니스트를 실망과 좌절로 몰아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2교대the second shift“라고 이름 붙였듯 여성들은 점점 바깥일을 하면서 여전히 집 안에서도 아이 양육과 요리, 청소 등의 가사를 거의 모두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바깥에서의 혁명보다 집 안에서의 혁명이 더 어려웠던 것이다. 각 가정 내부에서 여성이 남편과 자식에게 뿌리 깊은 버릇을 바꾸라고 설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78
남성들이 페미니즘 혁명을 진정으로 포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건, 그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정서적 위치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현실을 마주한 우리는 마음이 아팠다. 공정하지 않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 99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으로 중재되어야 했다. 113
사랑을 배우려는 여자들은 가부장제의 현상유지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한다면 여자들은 사랑보다 남성의 승인과 지원을 받는 것이 그들이 생존에 더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124
여성은 쉽게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켜 자기 몸을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 143
여자들이 더 노력함으로써 남녀 간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성차별적 사고 때문에 문제가 생겨났는데도 여자들은 가부장제에 기꺼이 헌신하려 한다. 자신이 변화하면 남자도 더 헌신하리라는 생각에 매달리는 여자들은 브래드쇼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럴 때 가부장제는 강화되고, 남녀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세계는 더욱 요원해진다. 따라서 남녀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 것만이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상호적 사랑을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 135
변화를 만들기 위해 여성은 불가능한 일을 하고 불가능한 것을 생각해야 하며,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의미 있는 공동체가 없다면 개인은 자신의 급진적 통찰을 유지할 수 없고, 혼란스러워지며, 알던 것도 잊게 된다. 177
진실로 어떤 여성도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사랑받을 수 없다!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문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여성에게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발전보다 남을 즐겁게 하는 데 힘쓰라고 한다. 여성이 자기의 안녕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극단으로 치우친다는 것이다. 183
그러므로 사랑을 알고자 하는 남성들 역시 가부장제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저항을 시도하는 남자들이 분명히 있으며, 여성들은 그런 남성을 찾고 있다. 220
가부장제는 도전받을 수 있고 변할 수 있다. 많은 여성과 몇몇 남성이 삶에서 급진적으로 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남성들은 가부장적 사고의 영속을 막기 위해 연대하려 하고 사랑을 탐색하는 투쟁의 동지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변화하고 또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동지다. 가부장제가 변하면 여성들은 남성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고, 남성들 또한 여성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222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자유롭게 ‘낭만적 우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안정적이고 헌신적인 평생의 플라토닉한 관계를 주된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관계야말로 여성이 완벽한 짝을 찾아내지 않아도 여전히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에 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결국에는 이런 사랑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267
진정한 사랑은 너그러우며, 끝없이 다시 채워진다. 현명한 여자라면 자기보다 어린 여자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가장 깊은 곳의 두려움과 요구, 소망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성차별주의가 세대를 가로막고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는 시대와 연령을 떠나 여성들이 진정한 자매애로 강력하게 결속하고 영속적인 사랑의 연대를 맺는 토대를 다질 수 있다. 284
가부장제 문화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랑에 대한 오해들을 타파하고 상호적 관계보다 더 낭만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관계에 대한 사랑을 탐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친밀감은 두 사람이 소울메이트가 되어가고 사랑의 작업을 기꺼이 완수해갈 수 있는 과정의 토대를 만들어준다. 293
사랑을 하는 여자는 자기 안의 재능을 세상과 공유하고, 상호존중과 인정을 나눌 동료들과의 지속 가능한 영혼의 연맹을 결성한다.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