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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덕숙덕 김치공장, 내게 채식은 최고의 자기돌봄

비건으로 먹고살며 곡진한 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을 다시 배운다

by 꿀벌 김화숙

우리 딸 표현을 빌자면 '숙덕숙덕 김치공장'의 날이었다.


아침에 덕이 서울에서 배추무를 싣고 안산으로 왔을 때가 10시 좀 넘었다. 교회 친구 욱이한테 지난 일요일에 받아 놓은 싱싱한 배추와 무로 닷새만에야 김치를 할 수 있었다. 한 주 숙덕부부는 안산과 서울에서 할 일들을 한 후 금요일 한 나절 김치를 위해 만난 거다. 이른 아침부터 마늘을 까고 김치 양념을 만들고 서울 보낼 음식을 하고 있다가 덕이 와서 함께 번개같이 협업을 했다. 덕이 재료를 다듬고 씻는 동안 나는 양념 준비를 마무리했다. 자르고 절이는 건 숙덕이 같이 착착했다. 절여지는 동안 점심 먹고 숨 좀 돌리며 수다떨고 놀았다. 버무려서 덕이 서울로 간 게 2시경이었다.


김치냉장고 통 2개 유리통 2개 나왔으니, 평소에 내가 담가 먹는 김치의 3배 가까운 양이었다. 결혼생활 36년이나 되는 60대 주부건만 나는 아직 대량 김장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12년 전 주말농장 농사지은 엉성한 구억배추 여남은 포기로 김장한 게 유일한 경험이겠다. 그때도 오늘 양 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늘 냉장고에 들어갈 김치 통 두어 개 양으로, 배추 몇 포기 정도가 숙덕숙덕 김치공장의 적정 규모였다. 오늘은 예외적인 대량 김치였는데 새삼 알게 됐다. 숙덕숙덕 김치공장 손발이 물흐르듯 척척 잘 맞았다고.


나는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생채소도 좋아하지만 모든 채소로 김치를 시도해보고 싶을 정도로 이 장르에 매력을 느낀다. 생김치도 좋고 잘 익은 김치, 그리고 김치로 응용하는 내멋대로 요리도 좋아한다. 김치 양념도 오신채 말고도 향기 나는 식물을 넣어 풍미가 어떻게 다른지 음미하기 좋아한다. 이번에도 고수를 넣었다. 은은한 향이 나는 정도의 양이지만, 채식으로, 비건으로 음식을 해 먹다 보니 그리됐다. 변주할 게 결국 낯선 향신료고 개성있는 허브더라. 아름다운 채식 세계로다. 아무 꾸밈없는 소금 간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배, 현미밥 간 것, 그리고 고수가 전부인, 세상에 제일 맛난 숙덕숙덕 김치 완성됐다.


완전채식으로 먹고 산지 어언 10년, 잘 먹고 잘사는 내몸이 좋다. 10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린 내 몸과 채식은 결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채식하면 '단백질 부족'을 걱정하는 거 같다. 수없이 받는 질문이고 나를 향한 의심스러운 눈초리. 그러나 곡류 채소과일 콩류들 속에 사람이 필요한 정도의 단백질은 충분히 있다는 게 정설이다. 성인의 몸은 생각만큼 그렇게 단백질이 필요하지 않거니와, 동물성 단백질 과잉은 모든 현대병의 원인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채식 덕에 날마다 향기 나고 맛있는 채소과일을 먹을 수 있으니,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 해볼수록, 비건이야말로 곡진한 자기돌봄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서로돌봄 아닐까. 몸에 좋지도 않은 걸로 먹고 먹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내 몸만이랴. 비인간 존재 동물을 괴롭히고 죽이지 않고 먹고 사는 길. 내가 사는 환경과 지구의 미래까지 같이 잘 사는 길. 이 기후위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비건 말고는 환경과 사람과 동물이 서로돌봄으로 같이 사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먹는 이야기를 30번째 꼭지로 자기돌봄의 글쓰기 연재를 마감한다.




비건 김치를 담고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비건으로 사회생활한다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활동하는 여성단체에서 밥집을 한 후 서빙 수고한 회원들을 위해 점심을 먹는 일정이 있었다. 나도 해당 회원이건만 그 점심 초대에 가지 않았다. 메뉴가 삼겹살이라는 거다. 물론 활동가들은 내가 비건인 걸 아는지라 채식도 준비하는 거 같았다. 그러나 내 마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옆에서 삼겹살을 굽는데 채식을 한다? 그 불편한 장면과 냄새 속에? 끔찍한 참상 속에서 밥을 먹을 순 없었다.


그날 오후 단체에 잠깐 들렀을 때 내가 점심 안 오길 잘했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엘러베이터에서부터 삼겹살 냄새가 났다. 미안해하는 A에게 웃으며 "나 배제당했어."라는 한마디 해주고 돌아섰다. 그 후에 단체 벗들이 내게 사과의 톡을 보내 왔고 나는 어떻게 소통할까 고민하며 시간을 좀 보냈다. 다음날 내 마음을 나누는 긴 톡을 두 벗에게 같이 보냈다. 살짝 공유해 본다.


A: "화숙~ 오늘 미안했어. 처음에 00 샘이 자기 집에 많이 사 둔 삼겹살을 구워 먹이자고 제안해서 시작된 오늘의 밥상. 화숙 포함 채식을 하는 분들이 있으니 함께 준비하자고 했고, 나와 **가 각종 채소를 많이 사서 오전 내내 씻고 곤드레밥을 준비했어. 화숙에게 두 가지 식사를 동시에 해도 되는지 묻지 못해 미안해.

아까 화숙이 엘베 타면서 배제당했다는 말을 하던 게 내내 머리에 남아서 톡 남겨. 요며칠 하루에 한 사람씩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고 있어 마음 아프네. 함께 준비하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한 거 자체가 오류였고 존중이 부족했다는 거 다시 한번 미안해. "


B: "그리고 어제 점심은 준비하는 데 비건분들을 고려못한 거 맞어. 미안해. 후원이 들어와서 덥석 메뉴를 잡았는데, 굽는 냄새까지 생각지 못했어. 다음부터는 바쁘고 정신없어도 꼭 신경을 쓸께.

많이 속상했지. ㅠㅠ 나도 의식부족이여. ㅠㅠ^^

계속 채근해주길~

수고해~ "


나:

그리 말해주니 고마워.

살아볼수록 연대는, 말로는 쉽지만 일상에선 너무 어렵다는 걸 절감해. 차별과 배제는 거창한 사건보단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경험하니까. 내가 여성단체에서조차 이럴 때 별 일 아닌 양 관대하게 견디고 넘어가는 게 미덕일까? 그런 질문 앞에서 괴로워. 너무 높은 벽 앞에 절망을 느껴. 어떨 땐 끔찍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안 아픈 척 미소짓는 나를 보는 기분이야..


그러나 한숨 한 번 쉬곤 다시 희망의 파도에 올라타곤 하지. 나보다 더 힘없는 사람들, 더 소수자성으로 분투하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 해. 육식주의자들 앞에서 소수자인 비건이 입 다물고 안 불편한 척, 그 옆에서 채식하며 감지덕지? 한때는 그런 적 있었지만 이젠 아냐. 다수의 비위를 맞춰 안 불편한 척, 속이 역겨워도 참아가며 어울려야 하나, 늘 고민하는 소수자로 살고 있나 봐.


그런데 점점 내가 괴로워서 못 하겠어. 살아있던 동물을 죽여서 폭력적으로 살을 발라서 불에 굽고 맛있다고 먹는 행위를 이젠 지켜볼 수가 없어. 너무 이상해. 식물에게 물을 함부로 쏘아대서 괴롭히는 것도 못 볼 짓인데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죽여서 먹는 행위.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가 없어. 차별과 배제 없는 세상과 기후정의를 외치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기를 먹는 걸 지켜보기가 괴로워.


모임 중에 비건 한 사람 있다면 다 함께 고기 안 먹는 문화, 이게 내가 꿈꾸는 연대요 정의야. 우리 가족들처럼, 결국 다 채식이 좋다는 걸 경험하게 될 걸 나는 믿으니까. 솔직히 밥집 서빙 때도 수육을 보는 것도 먹는 걸 보는 것도 힘들었어. 이 감정을 누가 알겠어? 침묵했으니까. 뒤풀이 꼭 가고 싶었는데, 삼겹살 굽는 공간에서 밥 먹을 자신이 없었어. 구토가 날 수도 있거든. 한쪽에서 고기 구워 먹을게 한쪽에서 비건 밥 먹어라? 진짜 비건의 목소리를 들은 적 없으니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겠지. 내가 목소리를 너무 안 냈나 봐.


단체를 떠날 거 아니라면 내가 더 정직하게 목소리 내고 행동했어냐 맞는데, 내가 그림자처럼 여전히 살고 있었구나, 너무 부끄럽다. 가부장제에 그렇게 길들어 살던 습관이지. 폭력을 폭력인 줄 모르고, 부정의에도 침묵하는 평화주의자였으니까. 남성중심 문화에서 좋은 인상 주려고 침묵했듯, 육식주의 여성단체, 너무 어색한 조합인데, 내가 침묵하며 붙어 있나 봐.


목소리 없는 비건으로 계속 살래? 내 안에서 질문이 올라오더라. 페미니스트로서 보다 비건으로서 차별과 배제를 훨씬 더 경험하면서 수없이 하던 질문이지. 어제도 웃는 낯으로 툭 뱉은 ‘배제’라는 말. 그게 웃을 일이었을까? 돌아서 나오는데 내 안에 모욕감이 치밀더라. 진실은 때로 거짓보다 힘은 없고 괴로움은 크지. 내가 발 붙인 현실을 다시 보았어.


떠나지 않을 거라면, 껍데기 말고 진실을 말하며 함께 해야 맞는데, 어디까지? 나 욕 먹는 건 견디겠으나, 나 때문에 활동가들이 욕먹게 되면? 고민 아닐 수 없겠지. 여성단체에서조차 다수의 비위를 우선으로 하고 소수자는 침묵한다? 그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그렇게 흘러가는 현실. 나는 진짜 내 목소리로 말하고 쓰고 행동하고 싶은가? 어디까지?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건 뭐지? 내가 자신을 속이진 말아야지?....


A: 응 화숙이 마음이 그랬을 것 같아. 두 가지 종류의 식사를 준비했으니 됐다고 생각한 건 우리 활동가들의 사유의 게으름이었어. '여성단체'라는 탈을 뒤집어 쓰고 우리가 다양한 목소리에 일일이 토론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야. 그래서 미안하고 부끄러워. 역부족을 느끼고 있어. 활동가들과도 논쟁해야 하니까.


<잡식가족의 딜레마>에서처럼 수십 년 먹어온 습관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현재 육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이라는 데 집중하잖아. 그래서 어제도 취향 존중 차원에서 채식, 육식 두 가지 다 준비한 건데 화숙은 이제 그걸 단순히 취향이라고 보지 않으니....


..... 더 주고받았지만 요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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