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지만 괜찮아
외부로부터 신체 내에 들어오는 물질이 일으키는 비정상적인 과민면역반응.
어릴 때 자연과 격리하다시피 하며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을 제공할 경우 건강한 면역력을 키울 수 없기에 선진국병이라고도 불린다.
중학교 1학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난생처음 햄버거 가게에 간 날, 새로운 인스턴트 맛을 즐기고 나왔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 목과 입술이 붓기 시작했다. 속은 부글부글. 간신히 참고 집에 돌아와 게워냈으나, 목과 입술은 한동안 부어 있었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겨자, 고추냉이, 복숭아 등 다양한 항목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면 겨자(머스터드)가 들어갔는지 늘 확인했고, 횟집에 가서는 고추냉이를 뺀 초밥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매번 주방에 설명해야 했지만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런 사실을 친구나 동료도 알지만, 난 어느 메뉴든 좋다고 한다. 어딜 가나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있으니까.
20여 년이 지나니 이제는 개코가 되었다. 냄새만 맡고도 겨자, 고추냉이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최근엔 후각 성능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향을 줄이도록 요리 레시피가 바뀐 건지 모르지만 다소 희생을 감안해야 하는 미각까지 동원해야 한다. 성분표를 봐도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바야흐로 시간은 흘러 5년 전, 여름 장마철을 지나 안방 청소를 했다. 방 한편을 꽉 채운 옷장을 힘겹게 들어내고 옷장 뒤편의 벽지를 보자, 천장 한 구석에 곰팡이가 무리 지어 있다. 나름 비말차단 마스크를 쓰고 락스 섞은 물을 뿌려가며 청소했다. 잘 지워지지 않는 녀석들과 한 시간은 싸운 것 같다. 얼룩덜룩, 개운치 않지만 최대한 지웠고 한동안 환기시켰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식사부터였다. 소화가 되질 않았다. 두통이 시작됐다. 피곤해서 누웠더니 두통이 더 심해진다. 체한 줄 알고 한의원을 향했다. 손과 발에 침도 놓고, 뜨끈한 온열기를 배에 올렸다. “장이 멈췄네요”
물만 먹고 이틀을 굶었다. 굶어도 배 고프지 않았다. 아내 말대로 강제 다이어트였다. 삼일째 되던 날, 잣죽을 먹고 결국 내과에 갔다.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고양이 털, 곰팡이, 잣 등 다양한 항목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약 처방을 받았다. 매일 두 알씩.
그렇게 2년을 먹었다.
‘이거 사회생활 제대로 할 수 있는 건가?’
이제는 후각도 미각도 무용지물인 듯했다. 가끔은 뭣 때문인지 모른 채 소화가 안되고, 두통으로 이어진다. 타이레놀도 듣지 않는 두통.
사람들은 모른다.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특히, 겨자 알레르기.
‘어? 그런 알레르기가 있어?’
하긴, 살면서 주변에 겨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구글링을 해도 겨자 알레르기에 관한 글이 생각보다 적다.
놀라운 사실은, 식품안전정보원의 <국내외 식품 중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 규제 현황>을 보니 아시아(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는 겨자(씨)가 의무표시대상이 아니었다.
https://foodlaw.foodinfo.or.kr/article/view.do?articleKey=1814&boardKey=13&menuKey=103
그나마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식품등의 표시기준 일부개정고시’를 통해 ‘잣’을 추가한 게 다행이었다.
그때가 2018년이었다.
오이 알레르기, 달걀 알레르기, 글루텐 알레르기 등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증상이 꽤 많다.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회사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조차도 경계대상이다. 점심시간 밀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언제 성분표를 보고 있으랴. 유리 캐비닛에 메뉴를 전시해 주어 다행일 따름이다. 야채가 소복이 쌓인 그릇 옆에 다양한 드레싱이 준비되어 있지만 야채만 담고 지나친다. 이마저, 몇 번 입술이 부어올랐던 경험 덕분이다.
회는 와사비장 맛이라는데, 코가 뻥 뚫린다는데 알 길이 없다. 햄버거나 피자 안에 특제 소스로 곁들인 머스터드는 어떤 풍미를 나타내는지 알 길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딱히 도와줄 방법은 없다. 그냥,
“맞다, 허사이 씨 겨자 알레르기 있지? 그럼 이걸로 해요” 라고 말해준다면 내겐 천냥빚이 된다.
이젠, 내 몸의 기능 중 하나로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머리도 피곤한데, 몸도 어지간히 애쓰는구나 싶다.
어쩌겠는가.
알레르기의 원인을 찾아보니,
날 뱃속에 품은 어머님이 무엇을 드셨는지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태어나서 무얼 먹고 마시고 어떤 물체와 살을 맞대고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뱃속에 있는 ‘나’를 위해, 애써 가려 드셨을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러니, 금이야 옥이야 좋은 것만 먹이고 깨끗하게 키우려 했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랑에 비례하지 않았겠는가. 분명 변변치 않던 시절, 그분들 덕분에 호사를 누렸던 증거가 틀림없다.
막상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면 고통스럽지만,
이젠,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자학을 넘어, 하견지만(何見之晩)의 탄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