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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Dec 10. 2019

커피는 구실에 불과하오.

  “내 마음이 커피나 커피하우스를 원하는 것이 아니오.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우정이오. 커피는 구실에 불과하오.”


  인터넷에서 저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음, 그렇군. 그런 거였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아니. 그런데 어쩌다 커피는 구실에 불과하게 된 것이지. 이거, 커피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이봐, 왜 내가 우정을 위한 구실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거지. 난 나야. 커피. 말 그대로 커피라고.”라며 커피가 억울함을 호소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건 바리스타의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아 커피를 만들었는데, 손님이 대뜸 “저기, 이봐. 커피는 구실에 불과해. 몰랐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한 법이야. 커피가 한 땀 한 땀 만들어진들 딱히 관심 없다고. 그러니까 쉽게 해. 쉽게. 응?” 하면서 시큰둥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바리스타는 일에 대한 열정과 가치를 상실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 술집에 들어가 “손님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내가 이 일을 해서 뭐해. 커피는 아무 의미가 없어. 구실에 불과하다고. 젠장.”하고 중얼거리면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할지도.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인 입장으로, 어쩌다가 커피가 구실에 불과하게 되었는지. 하고 한탄하게 된다. 커피는 음식으로서 풍성한 향과 맛이 있고, 미식으로서 가치가 있다. 나름대로의 전문성도 필요하다. 바리스타의 입장에서 커피의 이런 가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자고로 커피는 품종과 가공, 로스팅 방식에 따라 다양한 향을 가지는데. 그 다양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백 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그런 향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표현하기 힘들 만큼 다채롭고 풍성한 느낌 받게 된다. 게다가 질감과 오일, 신맛에 말하자면… 끝이 없고 밤새도록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커피를 우정의 구실에 불과하다고 말해버리면, 나로서는 난처하고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 자고로 커피는 말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바리스타의 입장이고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관심 없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이봐, 수백 가지가 넘는 향이나 풍성하고 다채로움, 신맛 따위는 나와 상관없어.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그저 커피라고. 커피. 아직도 모르겠어?”라는 게 사람들의 입장일지도.

  인류 문화의 측면에서 커피는 오래전부터 사회문화적 욕구의 배출구로서 소비되었다. 그런 역할로서 커피와 커피 하우스는 존재했다. 수백 가지가 넘는 향이나, 미식의 가치는 애초에 없었다. 커피 하우스에서 사람들은 만났고, 우정을 쌓았다. 헤밍웨이는 글을 적기 위해 커피 하우스에 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커피 한잔이 아니라 우정이나 사회문화적 욕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금도 마찬가지. 커피와 카페는 구실에 불과해졌고, 사진의 피사체에 불과해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에 내가 한탄하고 화를 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에게는 구실과 피사체가 필요했고, 커피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류 문화의 측면에서 커피와 카페가 소비되어 온 방식인 셈이다.

  그러니까 진지하게 진실을 펼쳐 두고 하나씩 따져봤을 때. 바리스타의 입장으로서, 나의 한탄은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바보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나의 글을 읽은 커피가 되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이, 이봐. 풋내기 바리스타 양반. 난 사회적,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능력이 있어. 그게 커피야. 그게 나라고. 그러니까 멋대로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헷갈리게 하지 않았으면 해. 난 그저 커피니까. 알겠어?”



 에헴. 뭐, 아무튼.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트렸군요. 괜한 글을 읽게 되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어렵고 복잡한 건 딱 질색입니다. 이렇든 저렇든 무슨 상관 인지요.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커피는 그저 커피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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