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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인 May 06. 2024

자폐는 비정상이 아니라 '다름'이다.

사이먼 배런코언, 『패턴 시커』, 디플롯, 2024.


"체계화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 뇌에 각인된 능력이지만, 자폐인의 뇌에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책을 고를 때, 제목이나 추천사가 과장되었음을 짐작하고 보는 편이다. 디자인이 예쁜 책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눈에 띄어야 책장을 펼칠 테니, 어느 정도의 과장 혹은 왜곡이 있을 거라는 편견. 그건 아마도 수없이 쌓인 실패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모든 책이 좋은 책은 아니라는 슬픈 현실.     

 

그렇지만 고민거리를 예리하게 찔러 들어오는 제목을 만나면 여전히 반갑게 책장을 펼치고, 현란하게 도배된 유명인사의 추천사를 읽으면서 ‘이 책은 좋은 책’이라는 선입견을 품는다. 어쩌면 내가 놓아버린 이 책이 나를 바꿔줄 무언가를 품고 있었음을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다. 모름지기 독자라면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알량한 의무감 때문일지도. 그러다 보면 가끔,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을 충족하는 책을 만난다. 바로 이 책 《패턴 시커》가 그렇다.     


자폐 연구자 ‘사이먼 배런코언’은 《패턴 시커》에서, 자폐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현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역할이란 다름 아닌 ‘발명’이다. 발명을 위해서는 ‘체계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것은 ‘만일(If)-그리고(and)-그렇다면(Then)’의 추론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즉, 자폐인은 이러한 체계화 메커니즘이 고도로 발달해 있고, 이러한 특성이 인류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생각할 지점이 있다. ‘체계화 메커니즘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은 ‘자폐인’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에서 ‘자폐’의 범주는 넓은 의미를 가지므로, ‘체계화 메커니즘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은 ‘자폐’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유추된다. ‘자폐’는 비정상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아마도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려고 했던 핵심이 아닐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주장은, 인지 혁명은 ‘체계화 메커니즘’과 ‘공감 회로’의 상보적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체계화 메커니즘과 공감 회로는 제로섬 관계다. 즉, 체계화 메커니즘이 극대화된 인간은 공감 회로가 덜 발달한다. 이것이 바로 ‘자폐’ 상태다. 반면 체계화 메커니즘이 낮은 인간은 공감 회로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다. 이런 주장이 조금은 결정론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들지만, 저자는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험과 분석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그리하여 나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자폐’에 관한 너그러운 관점을 갖길 희망한다. 저자가 마지막 문장들을 보면 뭉클하다. ‘자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기대가 흘러넘쳐 독자에게로 향하고 있다.     


“자폐인들은 종종 화려한 조명을 피해 그늘에 숨은 채 체계화를 극단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을 발명할 가능성이 크다. 때로는 이름조차 남지 않지만, 그들은 오직 즐거우므로 체계화에 몰두한다. 체계화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 뇌에 각인된 능력이지만, 자폐인의 뇌에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설계된 뇌를 가져서 체계화할 뿐이라는 주장.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도 찾을 수 있을까 말까 한 패턴들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기에 체계화한다는 말에서 어떤 가능성이 보인다. 공존의 가능성 말이다.     


인간을 정상-비정상,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일이 얼마나 한심한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도 공감하게 됐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자폐 스펙트럼처럼 인간의 스펙트럼도 다양함이 분명한데, 인류는 스스로 70억의 가능성을 불과 몇 개의 상자 안에 넣고 고립시켜 버렸다는 생각. 우울하면서도 한편으로 희망도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자폐’ 그리고 더 나아가 ‘다름’을 마음으로 알게 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다름’에 관한 이해가 넓어진다면. 그렇다면 지금은 몇 개에 불과한 상자가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민물고기와 바닷고기처럼.     


이제야 책의 표지가 달리 보인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러 프레임. 모두 다른 채도를 갖고 있다. 어느 시선으로 바라봐도 본질은 같다는. 더 나아가 여러 시선이 모였을 때 본질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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