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요니 Nov 21. 2020

산에 대한 진부한 생각들

Ep6.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

 호기롭게 포터 가이드 없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시작했다. 유명한만큼 트레킹 코스가 잘 닦여 있어서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시시해서 가이드를 데리고 왔으면 돈낭비였을 뻔 했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뒤룩뒤룩 살쪄버린 내 몸뚱이가 문제였다. 지난 3달동안 인도에서 집과 차만을 오가는 삶을 살았다. 활동량이 거의 없어서 기초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에 살이 급격히 쪄버렸는데, 이 비대해진 몸뚱이로 제대로 걸어다닌 적이 없으니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트레킹 3일차 되던 날 새벽 5시, 남들보다 조금 빠른 시간에 일출을 보러 푼힐 전망대에 올라갔지만 속도가 나지 않아 일출도 놓쳤다. 급기야 생리까지 터져버렸다. 카트만두에서 초코케익 퍼먹고 있을 때나 터질 것이지, 왜 하필 지금 터진건지, 내 생리주기는 항상 이 모양이다.

-

 생리통이 가장 심했던 날, 때마침 도착한 타다파니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와이파이를 만난 김에, 하루 쉬어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게 없는 히말라야 마을에서 트레킹 없는 하루를 보내기엔 지루할 것 같아 계속 이동하기로 했다. 도시에 있으면, 하루가 뭐야, 와이파이만 있으면 내 인생 통째로 소비할 자신도 있는데, 산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하루가 길다. 와이파이의 도움을 받아도, 하루가 길다.

-

 산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는 차소리와 물소리다. 이 소리가 들린다는 건 거의 하산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가장 무서운 소리가 물소리다. ABC 트레킹은 유난히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는 구간이 많았다. 그 오르막 내리막의 꼭지점 주로 계곡이 있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아주 높고 긴 불안한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가 이렇게나 길고 높은데도 한참이나 내려야 다리를 건널 수 있었고, 다리를 건넌 후에는 다시 그만큼 올라와야 했다. 트레킹 내내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다리를 건넜다. 다리 밑으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줄기와 흔들리는 다리는 매번 무서워서 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짚라인이 절실하다.

-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땅만 보면서 꾸역꾸역 걷고 있는데도 바닥에 뒹구는 돌멩이 갯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숨이 찬다. 깊이 들이마신 숨을 한번에 푹 하고 내쉬자 갈비뼈가 아팠다. 오랜만에 고개를 들었는데, 이놈에 계단은 여전히 끝이 안보인다. 괜히 쳐다봤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풍경이나 감상해볼까 했지만 그럴 기운도 없다. 산이 다 똑같지 뭐, 한국산이나 네팔산이나 비슷하네, 하고 생각했다. 건조한 흙만 몇시간째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산에 있는 건지 사막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산은 멀리서 봐야 푸르다. 막상 산 속에 있으면 산은 흙색이다. 흙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똥도 있다. 염소똥은 작고 동글동글한 까만 갈색, 말똥은 크고 길쭉한 까만 갈색, 소똥은 크고 동그랗고 밝은 갈색이다. 푸른 똥밭이 내인생 같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앞서 걷는 남자친구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오구야, 하고 부른다. 남자친구가 뒤돌아본다. 다 죽어가는 내얼굴을 보고는, 가방에서 초콜렛을 꺼낸다. 그가 꺼낸 초콜렛을 약 먹듯 황급히 입안에 넣는다. 건조해진 입안에서 달콤함이 퍼진다.

-

 나는 이렇게 다 죽어가는데, 산사람들은 거의 묘기수준으로 산을 오르내렸다. 마을 남자들이 무거운 철기둥을 머리에 이고는 걷듯이 뛰어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저렇게 빨리 내려가는 가는가보다 했는데, 올라올 때도 똑같은 속도로 올라오길래 저게 사람인가 싶었다. 다음 마을에서 짐을 내려놓은 그들이 달밧까지 다 먹어갈 때서야 겨우 도착한 나는, 그제서야 그들 모두가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늙은 마을 여자들이 나무잎을 머리에 한가득 지고 지나간다. 심지어 개중에는 맨발도 있었다. 걸음을 뗀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불안한 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봤지만 아기는 넘어지지 않았다. 이러니 산사람들에게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질문하는 건 무의미하다. 대답이 돌아오면 딱 2배 곱해서 계산해야 한다.

-


  타다파니까지는 롯지에 나무를 장작으로 태우는 큰 화로가 있었다. 밤이 되면 그 주변으로 자연스레 트레커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적정고도 이상이 되자 환경보호의 명목으로 나무장작을 태우는 커다란 화로가 사라졌다. 푼힐 전망대만 보고 하산한건지, 아님 우리와 다른 코스로 걷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다른 트레커들도 사라졌다.

-

 아침 일찍 트레킹을 시작하는 다른 트레커들과는 달리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트레킹을 시작한 탓도 있지만, 다른 트레커들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촘롱 이후로는 3일 내내 우리는 롯지의 유일한 손님이였다. 좀 심심하긴 해도 남자친구와 둘이서만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 그 곳에선 구름이 걷힌 히말라야의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

 산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자, 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체력도 회복되어서 남들 타는 수준으로 산을 탈 수 있게도 되었다. 기운이 돌자 말이 많아졌다. 나는 산에서 말을 하는 것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산에서 오가는 말에는 '울림'이 있다. '인생은 오르 내리 하는 산길 같은 거야' 따위에 진부한 꼰대들의 단골멘트라도, 산에서 들으면 그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그건 꼰대들의 말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차이인지, 아님  말을 듣는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차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산에서 오간 대화들은 삶을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

 산만큼 내면의 깊고 진솔한 모습들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좋은 곳은 없다. '등산'이라는 나이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취미 일찍이 가지게 된 덕분에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한 사업가는 젊은 시절 마대교에 올라간 이야기를 들려줬고, 입실하자마자 '여기서 담펴도 되?'라고 앙칼지게 물었던 꽉 긴 츄리닝 바지에 새빨간 립스틱을 발랐던 손님은 이혼한 남편에게 복수한 사이다 썰을 풀었다. 바람끼가 심한 남편이 회사 경리들을 매번 임신시키는 바람에 여러 생명을 낙태시켜야 했던 이야기도 들었고, 어떤 손님은 남편의 첫사랑인 자에게 전화를 거는 여자이야기를 들려줬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슬펐던 건, 친척 소개로 만난 성실하고 자상한 공무원 남편과 일찍 결혼해서 안정감 있는 편안한 삶을 사는 바람에 평생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손님의 이야기였다.


-

트레킹 코스의 마지막 마을인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데우랄리부터는 더 이상 마을은 없다. 산악인들의 원정기지인 베이스 캠프 뿐이다. 고도가 높아진만큼 기온이 떨어졌고, 항상 눈이 쌓여 있었다. 산에서는 가파른 상승기류 때문에 기후가 시시각각 변한다. 고로 그 누구도 함부로 기상을 예측할 수 없다. 일기예보도 순 다 거짓말이다. 하긴 뭐, 여기까지 올라온 판국에 일기예보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이제 그런건 찾아보지도 않는다.

-

 약 3개월 전 한국인들이 눈사태로 실종 구간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거쳐온 터라, 산에 대한 두려움을 체감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은 하나도 보지 않고 오직 다른 트레커들이 있는 곳으로 체크인했다. 다들 나처럼 생각했는지 한 롯지에만 트레커들이 몰려 있었다. 그 곳에서 나를 제외한 유일한 아시아인이였던 홍콩에서 온 미기, 트레킹 중에 만났다는 프랑스 여자 3명, 원래 친한 친구였다는 영국남자 2명, 가장 빠른 속도로 산을 치고 올라갔던 영국 노부부, 그리고 이들이 동반한 4명의 네팔리 포터와 가이드를 만났다. 내가 만약 산에서 죽게 된다면 같이 죽게 될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전우애 비슷한 친감이 생겼다.

-

 히말라야 롯지에는 대부분 와이파이가 없다. 대부분 롯지에는 와이파이가 있다는 사인이 붙어있지만 정전도 밥 먹듯이 일어나는 곳에서 와이파이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고도가 3000m가 넘어가면 유심마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데우랄리에서는 그 누구도 폰을 보지 않는다. 핸드폰이 없어지면, 그제서야 사람은 사람을 바라본다. 혼자 들기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두툼한 이불을 하나씩 껴안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

 그날 밤, 데우랄리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로 날씨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내일 올라야할 길의 경사도나 예상 이동시간, 눈사태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뭐하고 살았는지나 앞으로 뭐하고 살건지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도 잠깐 했던 것 같은데 금방 다시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다들 태연히 웃고 있었지만 두려워하고 있었다. 네팔리 포터들은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

 히말라야는 지금도 매년 고도가 높아지고 있는 역동적인 땅이다.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땅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을 두렵게 한다. 많은 트래커들이 이 곳에서 죽었고, 지금도 매년 죽어가고 있고, 가끔은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산에 묻혀 사라지도 한다. 나는 자연 앞에 겸손해졌다. 나보다 강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날밤, 종교는 없지만 신께 기도를 했다. 부처님, 예수님, 알라, 시바신이시여, 아니다, 여긴 히말라야니까 히말라야 신이시여, 부디 저를 구원해주소서.

이전 06화 나의 작업관에는 귀천이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