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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Oct 18. 2021

당신이 만들어준 따뜻한 세계에서

[작은 친구들 8호] 박은지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털복숭이 작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우리 동네는 길고양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며가며 가끔 주기적으로 만나는 고양이가 한두 마리 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차가 다니는 큰길이 있어서 고양이가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닐 것이다. 고양이들은 대체로 사람을 피하고, 또 차를 피하느라 늘 경계심을 곧추세우며 빠르게 걸어다닌다. 사실 도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이 그럴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언제나 복불복으로 마주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연휴를 보내느라 집을 벗어나 오랜만에 경기도 쪽의 카페거리를 갔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고 한적했는데, 거리에 늘어선 대부분의 카페 입구에 ‘반려동물 동반 가능’ 팻말이 붙어 있었다. 테라스가 많은 환경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덕분에 대형견 여름이와 함께 간 우리도 눈치 보지 않고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어디선가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집에서도 고양이를 키우니 반가운 마음에 ‘야옹아!’ 하고 불러보니 태연하게 뒤를 돌아본다. 그렇게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어느 카페 테라스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한 듯 느긋하게 털썩 누웠다. 우리도 그 카페에 같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보니, 카페 외벽 한쪽에 까만 고양이 그림과 함께 ‘까미’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사료 그릇도 보였다. 고양이는 사람들이 불러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다리에 몸을 부비면서 다녔다.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 좋았다. 귀 한쪽이 잘린 TNR 표식이 있는 것을 보니 길고양이 출신인데 아마 카페에서 돌봐주는 아이인 듯했다.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아마 이 거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모양이다. 특별히 사료나 물을 챙겨주며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저 고양이가 있는 대로 잠자코 지켜봐 주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카페에 머무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오며 가며 고양이를 발견했지만, 대부분은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정히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동물의 성향은 종에서 오는 것도 있고 개체별로 타고 나는 것도 있겠지만, 환경에 따라 바뀌는 부분도 크다고 한다. 그 예로 우리나라에는 짖고 흥분하는 강아지들이 많지만, 외국에 나가보면 이상하게 침착한 강아지들이 많다. 오히려 사람들의 생활에 개가 속해 있는 것이 친근하고 익숙한 문화일수록 어릴 때부터 개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지고, 또 개들도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배우기 때문인 듯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길고양이들은 대개 사람을 보면 후다닥 도망가는 경계심 많은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외국의 고양이들은 훨씬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거나 느긋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들이 예민하고 경계심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고양이를 대하는 문화와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고양이를 불길하게 여기는 미신이 많았던 탓인지 우리나라에서 유독 고양이를 대하는 시선이 관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반려동물로서의 고양이의 인기도 높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길고양이를 박대하거나 학대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그 탓에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도 오히려 고양이가 사람을 너무 따르거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도록 주의하기도 한다. 고양이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가갔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약한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나는 평범한 30대 여성이지만 나 역시 어떤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강자나 권력을 지닌 다수가 될 수도, 약자나 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약자나 동물들의 삶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권력에 기대어 나와 다르다는 이유 혹은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핍박하거나 학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고 원하는 것처럼 동물도 조금 더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집에서 사는 세 마리 고양이 역시 처음에는 낯선 사람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최대한 작게 접어 구석에 숨어 들어가는 유기묘들이었다. 그중 한 마리는 아직도 겁이 많아서 조금만 큰 움직임을 접해도 후다닥 몸을 피한다. 그래도 나의 작은 세계가 내 고양이들에게 조금은 더 살기 좋은 보금자리가 되었을까. 아마 카페거리에 있던 작고 까만 고양이에게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준 사람들, 또 흘깃 바라보고 그저 스쳐 지나가준 모든 사람들이 그 고양이에게 조금은 더 따뜻한 세계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글쓴이. 박은지

© 동반북스


<작은 친구들> 웹사이트 : http://littlepal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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