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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 원칙

by 한량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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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 원칙은 헌법 제86조 제3항과 제87조 제4항에 따라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는 헌법 원칙입니다.


이러한 문민 통제(文民統制, Civil control of the military)는 군사 활동이 군의 논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원리에 따라 시민, 민주적 정치 지도자 혹은 정치 권력이 군대를 통솔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군인이 군대의 물리력을 배경으로 국정의 운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중립성은 군을 정치에 끌어들이거나 군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서 단순히 정치와 무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민 원칙은 문민 지배 또는 문민 우위(Civilian supremacy over the military)라고도 합니다.


군에 관한 헌법원칙으로는 군의 정치적 중립주의, 군정군령일원주의, 국군의 조직 편성의 법정주의, 각군 분리주의, 문민통제주의 등이 있습니다. 헌법은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써 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헌법 제74조 제2항).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군의 설치·조직·유지 등을 말합니다.

국군의 조직과 편성에 관하여 법률주의를 규정한 이유는 국군의 조직과 편성에 관한 권한을 정부에게만 맡길 경우 군의 조직·편성권의 행사가 자의적이고 독선적인 경향을 띨 우려가 있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국군의 조직과 편성이 국가의 재정과 국민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조직과 편성을 국회에 맡기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국군 통수는 대통령이 국군의 최고사령관으로서 군정과 군령에 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함을 말하는데요. 군정권은 국가안보와 국토방위를 위하여 국군을 편성 및 조직하고 병력을 취득․관리하는 작용으로, 국가가 통치권에 의거하여 국민에게 명령 및 강제하고 부담을 과하는 작용입니다. 예를 들면, 병역 의무의 부과, 군사 관리 등입니다. 군령권은 국방 목적을 위하여 군을 현실적으로 지휘․명령하고 통솔하는 작용입니다. 예를 들면, 작전지휘, 작전 통제, 군사교육 등입니다. 군을 실제로 움직이는 권력은 군령에 있습니다. 문민 원칙은 군령권을 최종적으로 민간인이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군령과 군정의 두 가지 권한 모두 행정적 통제를 받는다는 헌법원칙이 병정통합주의입니다.


국군조직법 제8조에 따라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합니다. 같은 법 제9조 제2항에 따라 합동참모의장은 군령(軍令)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합니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장관 취임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서0 육군참모총장은 2020. 9. 18. 제48대 육군참모총장 이임 및 전역식을 하고 오후에 국방부 장관 취임식을 했습니다. 정00 합참의장은 2018. 9. 21. 오전 10시 30분 이임식과 전역식을 하고 3시간 30분 뒤에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습니다. 김00 합참의장은 2009. 9. 23. 오전 8시 대장 전역과 동시에 합참의장 이임식을 한 뒤 오전 9시에 제42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전역과 이임식은 오전 8시 40분에 끝났고, 20분 뒤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것입니다. 전역․이임식이 끝나고 나서 10분 동안 군복을 벗어 양복으로 갈아입고 딱 10분간 휴식을 취한 뒤 취임식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장관 출석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주제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러한 국방부장관 임명은 헌법의 문민 원칙을 준수한 것일까요? 직전에 전역과 이임식을 했으니 국방부장관 취임 때 현역 군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문민 원칙은 군의 논리가 아니라 시민의 논리에 따라 군을 운용하기 위함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 군인이었던 사람이 군복을 벗었다고 해서 시민으로 금세 돌아올 수 있을까요? 이러한 행태는 헌법을 희화화하는 장면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국방부장관 중 민간인 출신은 5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모두 이승만·장면 정부 때였고요. 5·16 군사 반란과 내란 이후에는 군인 출신이 계속해서 국방부 장관을 맡았습니다.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 등에서도 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은 없었습니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에서는 문민의 국방부장관이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군령군정일원주의 또는 병정통합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5월 26일 외교․안보 정책 구상에서 ‘민간인 국방부 장관 임명’을 공개했는데요. 이 후보는 경기도 수원 아주대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방 장관을 군인으로 임명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이제는 (장관에) 민간인을 보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운을 뗐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 말인데요. “군령은 현역(군인)이 맡고 군정은 융통성 있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군령은 ‘작전을 수립하고 병력을 움직이는 일’로, 우리 군 조직체계 상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정점에 있습니다. 인사·군수·재정 등 군의 행정 관리 업무를 뜻하는 군정은 국방부 장․차관과 각 군 참모총장을 축으로 권한이 행사합니다. 이 후보의 말은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군정 축’은 군 장성 출신이 아닌 ‘민간 전문가’를 발탁·중용하고 싶다는 뜻인데요.**


앞에서 살핀 대로 문민 통제의 핵심은 군령을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이 통제하는 데 있습니다. 국군조직법에서도 그것을 분명히 했죠. 합동참모의장은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는 기능을 할 뿐 국방부장관이 군정은 물론 군정에서 주도합니다.


헌법학은 주로 「대한민국헌법」을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성문헌법만 봐서는 그 사회의 헌법체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존 로크는 “법은 옷과 같아야 한다. 그들이 봉사해야 할 사람 몸에 꼭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 라고 법을 옷에 비유했습니다.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입법자에게 그리고 대통령에게 마땅히 준수해야 햐는 당위입니다.


칼 뢰벤슈타인(Karl Löwenstein)라는 학자 역시 헌법을 옷에 비유했습니다. 다만 그는 헌법 현실의 측면에서 헌법 규범을 평가했는데요. 존 로크의 규범적 명제가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에서 준수되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것인 반면, 뢰벤슈타인은 헌법을 분류할 때 헌법 조항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헌법이 실질적으로 규범력을 발휘하여 그 사회에서 준수되고 있는지를 중시했습니다.


헌법 조문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에 머무른다면 헌법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현실의 권력과정을 규율함으로써 실효성(實效性)을 발휘하고 있는 헌법이 규범적(normative) 헌법입니다. 이는 몸에 꼭 맞는 옷과 같습니다. 형식적으로 헌법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헌법은 명목적(nominal)으로만 헌법일 뿐입니다. 이는 옷이 너무 커서 몸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문민 원칙은 명목적인 것에 머무른 게 아닐까요? 문민 원칙이 규범으로 자리잡으려면 전혀 군 경력이 없는 사람이 국방부장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서야 전역한 지 일정한 기간이 지난 군 출신 인사를 국방부장관으로 임명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12·3 내란 과정에서 현역 군인이 아닌 퇴역 군인이 현역 군인을 좌지우지 했던 것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의미론적(semantic) 헌법 또는 장식적 헌법은 권력을 민주적으로 구성하고 권력을 제한하는 규범으로서 헌법의 의미를 상실한 헌법입니다. 이러한 헌법은 옷이 아니라 권력자의 지배를 유지하는 단순한 장식물(accessory)에 불과합니다.


헌법을 규범답게 하는 것은 헌법의 가치와 정신 그리고 그 취지를 잘 살려 명실상부 최고의 법규범으로서 인정하고 그것을 실현함에 있습니다. 이렇게 헌법의 운용이 규범의 궤도에 올라야 개헌이 의미가 있습니다. 헌법을 고치는 일은 곧 헌법대로 국정의 현실이 바뀜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명목적 헌법 아래에서 개헌은 그저 겉치장만 화려하게 할 뿐입니다. 국민주권정부에서 문민 원칙이 제대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 동아일보, 2009. 9. 24.,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90924/8813493/1>, 검색일: 2021. 3. 5.

** 한겨레, 2025. 5. 26., <https://www.hani.co.kr/arti/politics/election/1199470.html>, 검색일: 2025. 5. 27.


*** 위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View of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Seoul,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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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憲法方浪] ‘헌법방랑’ 프로젝트는 헌법 방법론을 탐구하여 유랑하는 프로젝트로서 통상적인 ‘放浪’과 달리 방법론의 유랑이라는 점에서 ‘方浪’이라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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