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기이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황량한 마음
영웅들은 특별한 꿈과 함께 등장한다. 신화나 성서에서 꿈은 특별한 순간에 신의 메시지를 담고 찾아온다. 안타까운 것은 그 메시지가 대부분 불명확한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 신들은 가끔 거짓 꿈을 보내 인간을 속이기도 한다. 하지만 꿈이 보여준 모호한 상징들이 해석을 거치고 나면 평범하고 비루했던 인물을 영웅의 길로 이끈다.
우리도 영웅들처럼 꿈을 꾼다. 앞뒤가 맞지 않고 모호함으로 가득한 꿈이 우리를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그것을 특별한 예지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과 신이 꿈으로 연결되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꿈은 그저 잠결에 우리가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꿈은 분석대상이다. 프로이트 이래로 꿈은 인간이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을 보여주는 창이 되었다. 정신분석학은 꿈을 통해 실제보다 더 진실한 우리의 본체를 만날 수 있다고 가정한다.
19세기말에 파리에 등장한 상징주의 화가들이 바로 이런 꿈과 환영에 주목했다.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그들의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물질과 독립된 정신세계, 이치에 맞지 않는 꿈, 상상으로 만들어낸 환상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의식과 같은 내면세계가 그들의 붓을 움직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구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 선언 이후,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문학적인 요소(이야기-신화, 성서)를 캔버스에서 밀어냈다. 오랜 시간 동안 신화와 성서를 모티브로 삼았던 예술에서 이야기가 사라지자 외부세계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회화의 과제가 되었다. 그 선두에 서있었던 인상주의자들은 과학적인 눈으로 세계를 지각하려고 했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빛’을 재현했다. 인상주의는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지 않았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는 그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했던 화가였다.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가 된 시대에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고전회화에서 영감을 받았고, 마네가 <올랭피아>로 스캔들을 일으킬 때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그림 1]로 살롱에서 영예를 얻었으며, 인상주의자들이 독자적으로 전시회를 열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 때 예술학교에서 고전적인 방식의 회화를 가르쳤다. 이 때문에 모로는 오랫동안 구시대의 전통과 타협한 뒤떨어진 화가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몇 세대 뒤에 사람들은 이 화가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환영>[그림 2]은 살로메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성서에 따르면 헤로데 왕이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자 세례자 요한이 그 부당함을 간했다. 그러자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일 수 있는 핑계를 찾았다. 왕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손님들 앞에서 멋진 춤을 추자 왕은 흡족해하며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때 살로메는 어머니와 상의하여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달라고 요구했다. 왕은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자기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여기까지가 성서의 이야기다.
이 그림은 표현기법이 특이하다. 살로메는 매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에 서있다. 그녀는 유혹적인 의상을 입고 있다. 반짝이는 왕관과 화려한 장신구들은 두텁게 칠해졌다. 캔버스 위로 튀어나온 물감 덩어리는 진짜 보석들처럼 무게와 부피를 지니고 있다. 그의 회화는 물감이 쌓여 완성된 하나의 물체이다. 이렇게 물질성을 강조하는 기법은 물감이 덜 칠해진 캔버스를 보여줌으로써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했던 인상주의의 방식과 대비된다.
또한 이 그림의 흥미로운 점 이야기 밖의 장면을 그렸다는 점이다. <환영>에서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의 환영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성인의 머리는 신성한 광휘에 둘러싸여 있다. 뚝뚝 흐르는 피와 부릅뜬 눈은 불길하고 으스스한 광기를 느끼게 한다. 이 광기는 성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신성한 괴기스러움. 이것이 모로가 창조한 것이고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요컨대 살로메를 실감 나게 그리기 위해 이런 환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꿈에서 한 번쯤 느껴 본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성서의 이야기를 차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가 상징하는 정서가 모로의 주제였던 것이다.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은 무채색으로 신비롭고 기이한 형상들을 그렸다. 그는 서로 관련 없는 형상들을 조합하여 상상 속의 개념을 만들어 냈다. <습지의 꽃>[그림 3]에서는 식물과 인간의 이미지가 연결되었다. 이런 것은 세상에 없다. 그것은 무의식이 그려낸 일종의 꿈이다.
망망대해처럼 이어지는 넓은 습지에서 자라난 <습지의 꽃>은 창조주의 계획 밖에서 만들어진 괴생명체다. 그것의 서식지는 적막하다. 위험한 적도 없지만 다정한 친구도 없는 세계에서 슬픈 얼굴로 피어난 <습지의 꽃>은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낯설지가 않다. 그것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게 살아가지만 더욱 고독해진 현대인의 신비하고 섬뜩한 내면의 초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생명체는 르동의 과학적 호기심을 발판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동물과 식물의 경계처럼 보이는 생명체들에 관심이 많았다. 식물학자들과 교유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다. 과학은 그를 명료하고 합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불분명하고 이상야릇한 세계로 이끌었다. 그 결과 르동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고 사실적이면서도 꿈과 같은 세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목이 긴 화병 속 들꽃다발>[그림 4]은 자세한 관찰을 통해 그려졌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은 왜곡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가느다란 선들의 율동감, 미묘한 번짐 효과까지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물인 듯, 사물이 아닌, 사물과 같은 환상! 눈에 보이는 분명한 화병은 그렇게 한 편의 꿈이 되었다.
상징주의는 이전의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에서 탄생했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상상할 수 없었던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냈고, 만국박람회는 탐험가들이나 가던 미지의 세계를 일반인들 눈앞에 펼쳐놓았다. 과학의 승리 또한 명백해 보였다. 그런 시대에 상징주의자들은 꿈과 환상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었다.
모로는 신화와 성서를 소재로 정서를 자극하는 특별할 상징을 만들었고, 르동은 비합리적인 이미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암시했다. 이들은 인간이 감각하는 소리, 향기, 색채 등이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상징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환상에서 많은 것을 읽어냈다. 그것들은 대개 음울하고 섬뜩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초현실주의화가들이 이들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이들은 상징주의의 뒤를 이어 무의식과 꿈이라는 소재를 다시 길어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그려낸 꿈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림 5]
왜 현대의 화가들이 그려낸 꿈들은 음울할까? 과학과 산업이 미래에 대한 밝은 청사진을 제시하는 시대에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들은 그 시대의 이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황량한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