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르네상스: 모든 사물이 빛나는 시간
15~16 세기 이탈리아반도에서 인문주의가 새롭게 깨어날 무렵, 알프스 너머 플랑드르 지역(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인근)에서도 회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술사에서는 이것을 ‘북유럽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곳의 변화는 르네상스(고대의 부활)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르네상스라 일컽는 것은 당시 이 지역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피어나는 가운데, 중세와는 다른 화풍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플랑드르 화가들은 매우 섬세하게 꽃과 나무와 인간을 묘사했다. 이탈리아 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석과 촛불, 신발과 가구 등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화가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고 사소한 사물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로 인해 북유럽 회화에선 세상 만물이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채 반짝반짝 빛나게 되었다.
15세기 플랑드르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인물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년경-1441)다. 그는 유화의 발명자로도 알려져 있다. 누구를 그린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한 남자의 초상>[그림1]은 오랫동안 화가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얇은 입술과 외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을 지닌 남자는 냉정하고 침착해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치밀하게 사물을 보는 꼼꼼한 관찰자처럼 느껴진다. 액자의 가장자리에는 “에이크가 할 수 있는 바와 같이”(위) “얀 반 에이크가 나를 만들었다”(아래)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살아있는 듯한 인간의 형상을 창조한 화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헨트 제단화>[그림2]는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북유럽 회화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은 처음엔 그의 형 휘베르트가 주문받은 것이었지만 그가 사망하면서 동생인 얀이 작업을 이어받아 완성하였다.
제단화는 평소엔 접어두다가 특별한 날이 되면 제대 앞에 펼쳐 두는 그림이다. 닫힌 상태의 <헨트 제단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 데 제일 윗부분에는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구약의 예언자와 이교도 무녀가 있고, 가운데 부분에는 수태고지가 그려졌다. 제단화의 아랫부분에는 헨트 시의 수호성인인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이 각각 어린 양과 잔을 든 모습으로 조각처럼 묘사되었다. 성인들의 좌우에는 이 그림의 의뢰자인 요스 베이트와 그의 아내가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헨트 제단화>를 펼치면 무채색으로 그려진 닫힌 면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색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펼친 면[그림3]의 하단 중앙 패널에 자리 잡은 그림은 <어린 양에 대한 경배>[그림 4]이다. 이 그림의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희생양이 제대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그 위로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내려온다. 이 두 가지 상징이 위쪽 패널에 그려진 성부의 모습과 수직으로 이어지면 삼위일체가 완성 된다.
어린 양이 봉헌된 제대 주변에는 천사들이 모여 있고 사도들을 비롯한 성인들이 경배를 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화면 뒤로 펼쳐진 구릉과 나무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성당과 성의 첨탑들이다. 이렇게 사실적인 배경 표현은 화가가 자연과 도시 풍광 등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위쪽 패널 좌우에 그려진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다. 화가는 놀랍게도 이들을 전혀 미화시키지 않았다. 그리스 조각과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만들어낸 우아하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부스스한 고수머리와 빈약한 몸, 초점을 잃은 눈빛은 화가 앞에 서 있었던 피곤한 모델 그 자체인 듯하다.
나뭇가지로 살짝 몸을 가린 이들은 인간의 원죄를 상징한다. 그들 위에 조각처럼 그려진 카인과 아벨의 모습 또한 인간의 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이 패널화 전체는 인간의 원죄를 씻기 위해 죽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거룩한 종교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적인 이미지와 함께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천상의 인물들의 화려한 의상과 보석들이다.[그림5] 반짝이는 구슬로 수놓아진 옷과 금박으로 번쩍이는 천사들의 옷은 이탈리아 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반짝이는 사물들의 세밀한 표현은 유화의 발명으로 가능해졌다. 유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화가들은 식물이나 돌에서 채취한 안료를 달걀흰자에 개서 채색을 했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템페라라고 한다. 템페라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조가 밝아질 뿐만 아니라 내구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건조 시간이 짧은 것이 단점이었다. 그런데 물질 세계를 그대로 화폭에 옮겨 놓고 싶은 얀 반 에이크와 같은 북유럽 화가들에겐 더 긴 작업 시간이 필요했다. 유화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안료를 기름에 섞어 쓰는 유화는 건조 시간이 길어 부드러운 색조의 변화와 세밀한 묘사가 가능했고, 반짝이는 광택을 표현하는데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북유럽 회화는 그야말로 현실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었다.
플랑드르 지역엔 메디치 가문이나 교황처럼 대규모 작품을 의뢰할 후원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프랑스와 스페인의 황제처럼 강력한 통치자도 없었다. 알프스 너머의 낮고 평평한 땅의 주인은 중소 귀족들과 성장한 부르주아들이었다. 바로 이들이 북유럽 미술의 후원자들이었다.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은 제조와 무역이 융성한 투르나이라는 도시에서 활동한 화가였다. 그는 무역상들, 상인들, 부유한 장인들을 비롯한 도시의 중류 및 중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화가였다. 그가 그린 <메로드 제단화>[그림6]에는 새롭게 미술의 후원자가 된 평범한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되었다.
<메로드 제단화>는 중세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수태고지를 묘사하고 있다. 성처녀와 천사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후광은 사라졌고, 마리아는 매우 세속적인 방에 머물고 있다. 그녀는 성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평범한 북유럽 가정집의 거실 바닥에 앉아있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은 성모의 자세는 겸손을 의미한다.
화가는 평범한 가정집을 성스러운 이야기의 배경으로 만들면서 일상적인 사물들에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했다. 흰 백합과 몸을 정결하게 하는 세면도구(수건과 물그릇)는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지금 막 꺼져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초는 신을 상징하는 빛이 마리아의 태내로 들어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화가는 십자가를 든 아기 예수가 창문을 통해 마리아를 향해 날아오는 장면을 그려서 친절하게 이해를 도왔다. 이렇게 일상의 소재로 성스러운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위장된 상징주의disguised symbolism’이라고 부른다.
캉팽은 이렇게 숨겨진 상징들을 만드는 것을 매우 즐겼던 것 같다. 오른쪽 패널에는 마리아의 정혼자 요셉이 보인다. 성서의 기록을 따라 화가는 요셉을 목수로 묘사했다. 그런데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연장들 사이에 나무로 된 ‘쥐덫’이 보인다. 이것은 “주의 십자가는 악마를 잡는 쥐덫”이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서 소재를 얻은 표현이다. 그렇다면 쥐덫을 지닌 요셉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수호성인이 된다.
또 왼쪽 패널에는 이 그림의 주문자가 무릎을 꿇고 열린 문틈으로 신성한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있는 정원에는 마리아의 순결과 자애를 상징하는 장미와 겸양을 드러내는 제비꽃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그림 곳곳에서 보이는 위장된 상징들은 이들의 세계관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세상은 악마가 만든 것처럼 죄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15세기에 발달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신이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회화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평범한 도시의 가정집이, 세숫물과 수건이, 꽃과 창문이 모두 신성해졌다. 북유럽 화가들은 그렇게 세상 만물들이 성스러워지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