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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6. 2022

덩칫값을 못하는 아이러니

2-2.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현실이 되지 못한 노랫말

재개발은 무조건 '덩치'를 키워야만 성립하는 개념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예를 들어, 1000세대가 사는 단독주택 단지를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려면 아파트 세대 수가 1200세대는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1000세대가 집을 한 채씩 받고, 나머지 200세대를 외부인에게 분양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3~4층짜리 집을 허물고 20~30층짜리 아파트를 새로 짓는 일엔 당연히 돈이 들어갑니다. 그 공사비를 바로 200세대 분양대금으로 충당하는 거죠.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원래 살던 1000세대도 돈을 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분담금'입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1200세대가 아니라 1400세대로 지으면? 분양대금은 200세대에서 400세대로 2배 늘어납니다. 당연히 기존 1000세대가 내야 할 분담금이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세대수를 늘리려고 합니다. 용적률을 키우고 층수 제한을 없애려는 게 다 그런 노력의 한 가지입니다. 내가 사는 곳을 더 크고, 더 높은 아파트로 고쳐지을수록 오히려 내가 내야 할 돈이 줄어드는 희한한 판이 바로 재개발인 셈입니다.

ⓒNK Lee(https://unsplash.com/)

창신동 같은 곳에서 하려고 했던 뉴타운 사업은 이 개념을 극한으로 밀어부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 동네를 넘어 한 동(洞)도 모자라 몇 개 동을 합쳐 재개발 계획을 짜는 것이 뉴타운입니다. 1970년대 개발한 서울 강남 일대는 반듯반듯한 격자형 도로를 바탕으로 학교, 공원, 근린생활시설을 꽤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지만, 강북 일대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여러 도시계획을 거치며 최소 100년 이상 된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기와를 얹은 한옥과 '양옥'이라고 부르는 붉은 벽돌집,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는 교외지역에 있어야 마땅한 공장지대가 구불구불한 도로와 철로를 끼고 뒤섞여 있습니다. 공원 같은 생활권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강북의 여건에서는 새 집뿐만 아니라 도로·공원 같은 기반시설까지 한꺼번에 공급할 수 있는 재개발 수법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온 개념이 바로 뉴타운입니다. 뉴타운은 2000년대 서울에 바람처럼 불었고, 한 때 서울 면적의 4%가 뉴타운에 속한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였습니다.1)


창신동도 뉴타운 대열에 섰습니다. 그런데 창신동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창신1·2·3동에 도로 건너편 숭인1동까지 합쳐서 '창신·숭인 재정비촉진지구'가 탄생했습니다. 주민들 입장에서도 이 사업의 스케일이 제대로 가늠이 안 됐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이곳은 창신동과 숭인동의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낯설게 들리는 ‘창신숭인’이라는 지명의 조합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략) 낙산과 당고개, 동망봉 등 지형으로 생활권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주민들도 서로를 ‘다른’ 마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신숭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뉴타운 후보지로 선정된 까닭에 서로 다른 마을이었던 창신 1, 2, 3동, 숭인 1동의 주민들은 ‘창신숭인’이라는 하나의 지명이자 일종의 운명공동체로 묶이게 되었다.2)

창신·숭인 재정비촉진지구 조감도. ⓒ서울시

창신·숭인 뉴타운 계획은 그야말로 담대했습니다. '24시간 활력 넘치는 복합 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 최고 40층 높이에 용적률 1000%에 육박하는 도시를 꿈꿨습니다.3) 건물의 부피를 뜻하는 용적률이 900%라면, 흔히 볼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용적률 220~230%의 네다섯배에 달합니다. '컬쳐시티(Culture City)', '랜드마크 타워(Landmark Tower)', '원스톱 라이프스타일(One-Stop Lifestyle)' 등 온갖 현란한 수사들이 동원됐습니다. 서울시는 2010년에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9년까지 완공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창신·숭인 주민들은 2013년 스스로 뉴타운 사업 해제를 서울시에 요구했습니다. 서울시는 당시 서울 뉴타운 지역에서 난립하는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결국 창신·숭인을 '뉴타운 해제 1호'로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주민들이 뉴타운 사업으로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훗날의 기록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2010년 2월 재정비촉진계획의 주민 공람과 함께 뉴타운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공개되었다. 구역별 층수와 용적률, 건설되는 주택 수, 공원, 녹지, 기반시설 규모 등을 통해 사업성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면서 주민들은 뉴타운의 유·불리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었고, 2010년 3월의 주민공청회 이후 뉴타운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4)


'사업성의 윤곽', 쉽게 말하면 주민들이 내야 할 분담금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뉴타운은 '덩치를 키워야만 성립되는 재개발'이란 개념을 할 수 있는 한까지 밀어부친 것이니, 분담금 부담이 덜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주민들이 재개발에 가장 바라는 건 역시 '헌 집 주고 새 집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2010년 4월 고시한 창신·숭인 뉴타운 세부계획5)을 보면 새 집, 즉 주택공급 계획이 7855호라고 나옵니다. 계획 인구는 2만1208명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2010년 기준으로 창신1·2·3동과 숭인1동에는 모두 합쳐 1만1675가구, 1인 가구부터 6인 이상 가구까지 어림잡아도 3만명 이상이 살고 있었습니다.6)


뉴타운을 짓는데 오히려 수용 가능한 가구와 인구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땅과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세입자도 다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토지 등 소유권을 가진 사람만도 7028명이었습니다. 7855호라면, 소유권자 한 명이 한 채씩 가져도 남는 건 한 10% 정도입니다. 심지어 임대주택을 빼면 1517호를 빼면 분양주택은 6338호로 더 줄어듭니다. 덩치를 키워야만 성립되는 재개발인데, 덩치만 잔뜩 키웠지, 정작 그 내실은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아이러니를 '재개발의 함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 낮고 작은 집들을 전부 부수고 높고 크게 지으면 집이 몇 배씩은 늘어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재개발 전보다 집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서울시 주택당국의 한 간부가 직접 5년 동안 재개발된 지역에서 주택이 얼마나 늘었는지 계산해 봤더니 110~120% 정도라고 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마이너스(-) 친 데"도 있습니다. 재개발을 했더니 오히려 주택량이 줄었다는 겁니다. 그 간부는 "재개발은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주거환경개선이 주목적"이라고 결론 짓습니다.7)


그렇다고 주택량을 늘리기 위해 용적률을 몇 배씩 늘리면 주목적인 주거환경개선에 실패하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용적률을 키운다는 것은 주택을 뚱뚱하고 빽빽하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집을 지으면서 신경써야 할 일조, 통풍, 사생활 보호 같은 기본 요소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대부분 아파트의 용적률은 200%, 아무리 커도 300%를 넘지 않는데 만약 400%로 두 배로 키운다면 그 아파트는 그야말로 '닭장' 같을 겁니다. 용적률 확대로 대응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게다가 창신동은 한양도성을 끼고 있는 동네여서 아파트 높이를 일정하게 규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유산인 성곽길에 올라서 남의 집 창문만 들여다 보고 내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재개발의 함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당장 재개발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낮고 작은 집들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 살고 있다는 겁니다. 또 수적으로 많고 적음을 넘어 그 숫자를 이루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세입자들이며, 동네가 재개발되면 별다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재개발 이후 집이 오히려 줄어든다면 집과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도 그 곳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데, 그 권리조차 없는 세입자는 어떻게 될까요?

창신동에 남은 도시형 한옥. 1930~1960년대 지어진 가옥마다 저소득층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신동; 공간과 일상>(2011), 94쪽

창신동처럼 재개발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 곳을 찾아 그 실상을 한번 보겠습니다. 통계청이 행정동별 가구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대규모 재개발을 마친 서울 은평구 녹번동이 예시로 들만합니다. 이 곳에서는 북한산과 백련산 자락에 늘어선 저층 주거지가 4~5차례에 걸쳐 900~2500여세대 규모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사이 녹번동 가구 수는 1만2619개(2010년)에서 1만5705개(2020년)로 늘었습니다.8)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재개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현재 서울시가 정보를 공개하는 녹번1-1~3지구의 사업 개요9)를 보면, 재개발이 끝난 현재 각 지구의 세대 수는 952세대(1-1), 1305세대(1-2), 1230세대(1-3)입니다. 각 지구의 토지 등 소유자 수인 519명(1-1), 805명(1-2), 702명(1-3)보다는 충분히 많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과연 이 숫자만 갖고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각 지구에는 세입자가 446명(1-1), 479명(1-2), 565명(1-3)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집과 땅에 대한 권리가 없어 나중에 주택을 분양받는 조합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들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은 얼마나 지어졌을까요?


각 지구 모두 1~2동씩 임대아파트를 지었고, 세대 수는 182세대(1-1), 258세대(1-2), 155세대(1-3)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불균형은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곧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떠들썩한 동네에는 세입자들이 발을 들이지 않고, 살던 세입자도 다른 곳으로 떠나기 마련입니다. 공식적으로 나타난 세입자 수는 수용가능한 규모에 비해서는 적게 잡혔을 것이라고 추정할 여지가 넉넉합니다. 녹번동 재개발이 한창 진행될 당시 은평구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재개발 후 원주민 재정착률이 10%도 안 됐다. 아직도 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라고 저에게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 우리는 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1) 장남종, 2015년 5월, <서울시 뉴타운 사업>, 서울정책아카이브 | https://seoulsolution.kr/ko/content/서울시-뉴타운-사업

2) 이영만·손경주·조은형·서유림, 2019년 9월, <다시 찾다, 창신숭인>, 서울특별시, 25~26쪽

3) 서울특별시, 2010년 2월10일, <창신·숭인뉴타운, 역사·관광·패션 '복합 문화도시' 탈바꿈>, 보도자료

4) 2)의 글, 27쪽

5) 서울특별시고시 제2010-148호, 2010년 4월22일, < 숭인재정비촉진지구 단계구간 재정비촉진계획 결정 및 지형도면 고시>, 서울시보 제2973호, 181쪽

6) 통계청, 2014년, 서울시 가구원수별 가구수 (동별) 통계 | 창신3동에서 뉴타운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창신쌍용아파트 1단지(919세대)와 2단지(585세대)의 세대 수를 빼면 10,171가구가 된다.

7) 서울특별시의회사무처, 2021년 4월26일, 제300회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회의록, 28쪽

8) 6)의 자료

9) 서울특별시 홈페이지(정비사업 정보몽땅) | https://cleanup.seoul.go.kr/cleanup/mainPag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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