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비 오면 냄새나고 걸핏하면 불난다는데 왜 아직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과거 사대문 안을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첫 동네였습니다. 종로를 따라 동대문(흥인지문)을 나오면 왼편으로 집들이 조밀하게 들어찬 산동네가 보입니다. 그 동네가 창신1·2·3동입니다. 동네가 자리한 산은 낙산이라고 부릅니다. 동대문부터 낙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산책로로 유명한 낙산성곽, 한양도성의 일부입니다. 낙산성곽길에 오르면 그 아래로 창신동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창신동은 근현대사에서 줄곧 저소득층의 주거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몰려든 가난한 노동자와 시가지 근대화를 내세운 일제 도시계획령 때문에 집터를 잃은 도시 빈민들이 서울의 산기슭마다 흙으로 지었던 움막집 밀집지, 즉 '토막촌'이 창신동에도 있었습니다.
창신동은 질서 없이 되는대로 집을 세우고 길을 낸 전형적인 달동네입니다.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에서 과소필지, 즉 크기가 너무 작아 주택 등 건축물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필지 기준을 '90㎡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데, 창신동에서도 경사가 가장 가파른 편인 창신2동에는 이런 과소필지가 절반이 넘습니다.1) 토막이 차지했던 조그만 터가 훗날 그대로 필지 구분으로 이어진 흔적입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노후·불량 주택 기준으로 삼는 20년 이상 된 건축물이 2015년 기준으로도 80% 안팎이었으니 지금은 노후도가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2) 도로 사정 또한 매우 열악합니다. 창신동에서 가장 높은 지대 근처에는 주민들이 '회오리길'이라고 부르는 골목이 있는데, 그 굽이치는 경사는 숙달된 차량 운전자도 다닐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입니다. 좁고 가파른 도로 때문에 마을버스도 드나들 수 없다고 합니다. 마을버스가 다니려면 돌아서 나올만한 경로와 도로 폭이 확보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창신동 주민들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역이 있는 '초역세권'에 살지만, 역을 오가려면 길게는 20분 이상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도 회오리길처럼 가파른 길을요.
이런 창신동 언덕을 두 다리로 오르며 가쁜 숨을 내쉬다 보면 누구나 같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는 왜 재개발을 하지 않는 걸까?' 2021년 초 창신동 재개발을 주도하겠다고 나서 자칭타칭 '재개발추진위원장'이라고 불리는 주민을 만난 적 있습니다. 그는 "동네에 정화조 시설조차 없는 집이 많다. 비만 오면 똥냄새가 난다"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면서 반년 사이 창신동에서 불이 난 주소를 적은 수첩을 펼치며 "도로가 좁아 소방차도 들어올 수 없다. 전면 재개발만이 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재개발은 창신동에 대한 명쾌한 해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창신동을 재개발하려는 시도가 없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무려 '뉴타운'을 내걸고 창신1·2·3동에 이웃한 숭인동까지 모두 묶어 재개발을 추진한 역사가 있습니다. 재개발 사업의 공식 명칭은 '창신·숭인 재정비촉진지구', 2007년 4월 지정돼 2013년 6월 해제될 때까지 6년을 끌다 엎어졌습니다.
이후 창신동은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재생 사업지가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정부와 서울시가 예산 200억원을 투입했고 주민들이 나서 골목 정화, 주민공동시설 건립, 어린이놀이터 조성 등 생활권 개선 사업을 벌였습니다. 카페 같은 주민공동시설에서는 실제 주민들이 고용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창신동은 일면 쇠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곳곳에서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신축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주택(공적임대주택의 한 종류)이나 꾸준히 유행 중인 '협소주택'을 짓고 새로 들어온 주민들도 생겼습니다. 주택을 개조해 카페 등 상업시설로 재활용하는 젊은 사업가들도 보입니다. 주민들이 간절히 바랐던 주차장도 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정부나 서울시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창신동은 재개발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주민들로 들썩거립니다. 주민들은 뉴타운을 꿈꿨을 때나 도시재생을 마주했을 때나 변함없이 도로와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 정비를 가장 많이 원했습니다.3) 도시재생 사업이 이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니 적지 않은 주민들이 다시 재개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공재개발이니 도심복합사업이니, 정부가 제시하는 재개발 사업 종류도 너무 많다 보니 서로 다른 사업을 추진하는 주민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손에 잡힐 만큼 진척된 사업은 없었습니다. 주민이 여전히 비좁고 냄새난다고 불평하는데도 안 되는 재개발,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1) 서울특별시, 2015년 2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시재생선도지역 근린재생형 활성화계획>, 25쪽
2) 1)의 글, 26쪽
3) 1)의 글, 36쪽 | 2013년 9월 실시한 주민여론 조사 결과, '서울시에 바라는 요구사항'을 묻자 '보도/도로 확장, 정비'(16.0%), '주차 공간 확보'(15.0%), '방범 대책 강화'(10.8%) '녹지 공원 확충'(3.8%), '쾌적한 녹색 거리 환경 조성'(2.8%)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