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현실이 되지 못한 노랫말
창신·숭인 뉴타운 계획은 그야말로 담대했습니다. '24시간 활력 넘치는 복합 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 최고 40층 높이에 용적률 1000%에 육박하는 도시를 꿈꿨습니다.3) 건물의 부피를 뜻하는 용적률이 900%라면, 흔히 볼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용적률 220~230%의 네다섯배에 달합니다. '컬쳐시티(Culture City)', '랜드마크 타워(Landmark Tower)', '원스톱 라이프스타일(One-Stop Lifestyle)' 등 온갖 현란한 수사들이 동원됐습니다. 서울시는 2010년에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9년까지 완공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창신·숭인 주민들은 2013년 스스로 뉴타운 사업 해제를 서울시에 요구했습니다. 서울시는 당시 서울 뉴타운 지역에서 난립하는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결국 창신·숭인을 '뉴타운 해제 1호'로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주민들이 뉴타운 사업으로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훗날의 기록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2010년 2월 재정비촉진계획의 주민 공람과 함께 뉴타운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공개되었다. 구역별 층수와 용적률, 건설되는 주택 수, 공원, 녹지, 기반시설 규모 등을 통해 사업성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면서 주민들은 뉴타운의 유·불리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었고, 2010년 3월의 주민공청회 이후 뉴타운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4)
'사업성의 윤곽', 쉽게 말하면 주민들이 내야 할 분담금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뉴타운은 '덩치를 키워야만 성립되는 재개발'이란 개념을 할 수 있는 한까지 밀어부친 것이니, 분담금 부담이 덜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주민들이 재개발에 가장 바라는 건 역시 '헌 집 주고 새 집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2010년 4월 고시한 창신·숭인 뉴타운 세부계획5)을 보면 새 집, 즉 주택공급 계획이 7855호라고 나옵니다. 계획 인구는 2만1208명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2010년 기준으로 창신1·2·3동과 숭인1동에는 모두 합쳐 1만1675가구, 1인 가구부터 6인 이상 가구까지 어림잡아도 3만명 이상이 살고 있었습니다.6)
뉴타운을 짓는데 오히려 수용 가능한 가구와 인구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땅과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세입자도 다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토지 등 소유권을 가진 사람만도 7028명이었습니다. 7855호라면, 소유권자 한 명이 한 채씩 가져도 남는 건 한 10% 정도입니다. 심지어 임대주택을 빼면 1517호를 빼면 분양주택은 6338호로 더 줄어듭니다. 덩치를 키워야만 성립되는 재개발인데, 덩치만 잔뜩 키웠지, 정작 그 내실은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아이러니를 '재개발의 함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 낮고 작은 집들을 전부 부수고 높고 크게 지으면 집이 몇 배씩은 늘어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재개발 전보다 집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서울시 주택당국의 한 간부가 직접 5년 동안 재개발된 지역에서 주택이 얼마나 늘었는지 계산해 봤더니 110~120% 정도라고 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마이너스(-) 친 데"도 있습니다. 재개발을 했더니 오히려 주택량이 줄었다는 겁니다. 그 간부는 "재개발은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주거환경개선이 주목적"이라고 결론 짓습니다.7)
그렇다고 주택량을 늘리기 위해 용적률을 몇 배씩 늘리면 주목적인 주거환경개선에 실패하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용적률을 키운다는 것은 주택을 뚱뚱하고 빽빽하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집을 지으면서 신경써야 할 일조, 통풍, 사생활 보호 같은 기본 요소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대부분 아파트의 용적률은 200%, 아무리 커도 300%를 넘지 않는데 만약 400%로 두 배로 키운다면 그 아파트는 그야말로 '닭장' 같을 겁니다. 용적률 확대로 대응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게다가 창신동은 한양도성을 끼고 있는 동네여서 아파트 높이를 일정하게 규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유산인 성곽길에 올라서 남의 집 창문만 들여다 보고 내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재개발의 함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당장 재개발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낮고 작은 집들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 살고 있다는 겁니다. 또 수적으로 많고 적음을 넘어 그 숫자를 이루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세입자들이며, 동네가 재개발되면 별다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재개발 이후 집이 오히려 줄어든다면 집과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도 그 곳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데, 그 권리조차 없는 세입자는 어떻게 될까요?
창신동처럼 재개발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 곳을 찾아 그 실상을 한번 보겠습니다. 통계청이 행정동별 가구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대규모 재개발을 마친 서울 은평구 녹번동이 예시로 들만합니다. 이 곳에서는 북한산과 백련산 자락에 늘어선 저층 주거지가 4~5차례에 걸쳐 900~2500여세대 규모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사이 녹번동 가구 수는 1만2619개(2010년)에서 1만5705개(2020년)로 늘었습니다.8)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재개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현재 서울시가 정보를 공개하는 녹번1-1~3지구의 사업 개요9)를 보면, 재개발이 끝난 현재 각 지구의 세대 수는 952세대(1-1), 1305세대(1-2), 1230세대(1-3)입니다. 각 지구의 토지 등 소유자 수인 519명(1-1), 805명(1-2), 702명(1-3)보다는 충분히 많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과연 이 숫자만 갖고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각 지구에는 세입자가 446명(1-1), 479명(1-2), 565명(1-3)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집과 땅에 대한 권리가 없어 나중에 주택을 분양받는 조합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들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은 얼마나 지어졌을까요?
각 지구 모두 1~2동씩 임대아파트를 지었고, 세대 수는 182세대(1-1), 258세대(1-2), 155세대(1-3)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불균형은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곧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떠들썩한 동네에는 세입자들이 발을 들이지 않고, 살던 세입자도 다른 곳으로 떠나기 마련입니다. 공식적으로 나타난 세입자 수는 수용가능한 규모에 비해서는 적게 잡혔을 것이라고 추정할 여지가 넉넉합니다. 녹번동 재개발이 한창 진행될 당시 은평구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재개발 후 원주민 재정착률이 10%도 안 됐다. 아직도 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라고 저에게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 우리는 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1) 장남종, 2015년 5월, <서울시 뉴타운 사업>, 서울정책아카이브 | https://seoulsolution.kr/ko/content/서울시-뉴타운-사업
2) 이영만·손경주·조은형·서유림, 2019년 9월, <다시 찾다, 창신숭인>, 서울특별시, 25~26쪽
3) 서울특별시, 2010년 2월10일, <창신·숭인뉴타운, 역사·관광·패션 '복합 문화도시' 탈바꿈>, 보도자료
4) 2)의 글, 27쪽
5) 서울특별시고시 제2010-148호, 2010년 4월22일, <창신 숭인재정비촉진지구 단계구간 재정비촉진계획 결정 및 지형도면 고시>, 서울시보 제2973호, 181쪽
6) 통계청, 2014년, 서울시 가구원수별 가구수 (동별) 통계 | 창신3동에서 뉴타운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창신쌍용아파트 1단지(919세대)와 2단지(585세대)의 세대 수를 빼면 10,171가구가 된다.
7) 서울특별시의회사무처, 2021년 4월26일, 제300회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회의록, 28쪽
8) 6)의 자료
9) 서울특별시 홈페이지(정비사업 정보몽땅) | https://cleanup.seoul.go.kr/cleanup/mainPag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