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6. 2차원으로 바라보기; 창가에서의 눈속임

"남겨진 시간"

by 그리울너머


창가에 서 본 적이 있나요? 초조한 마음, 미련이 남은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할수록, 창가에 멍하니 서 있는 일조차 큰 용기가 필요해집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변하는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혹은 멍하니, 아니면 깊은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볼 때. 내 안의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지나가는 사람도, 날아가는 꽃잎도 쉴 틈 없이 움직입니다. 창가에 서 있는 마음은 누군가 나에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방식으로든 기다림.

창가의 시간은 모서리에 걸쳐 있는 감정입니다. 끝내 닿지 않는 것. 하루는 길어지고, 창밖은 같은 풍경을 반복하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창가에 섭니다. 창밖의 바람은 여전히 불고, 나무는 흔들리고, 노을은 깊어가고, 잊히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창가에 서 있는 건 눈속임이었다."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해 질 녘 노을, 흔들리는 나무, 지나가는 바람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섰다.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지루한 하루는 그만큼 생각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지.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하루가 길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다리는 마음만큼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염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을 바라보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눈속임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더 바빠지려고 해, 바쁜 하루 탓에 창가에 서는 일이 없게끔. 쉴 틈 없이 움직이면, 생각할 여유도 사라질까 싶어서. 그렇게 바쁘게 하루를 채우다가도, 문득 혼자가 된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창가에 서서 한숨 한 번으로 아닌 척 눈속임을 해보려고. 그래도 혼자 하는 하루가 길고 길어져 널 생각할 여유라도 생기면, 한 번 더 창가에 서서 아닌 척 눈 속여 볼게.


창 밖의 풍경 : 해 질 녘 노을, 흔들리는 나무, 스치는 바람. 세상엔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 많았다.




오늘 하루가 길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이겠지

가끔은 너를 기다리는 것만큼

하루가 길고 길어서

창 밖을 바라보다가

하염없이 한숨만 쉬었어

바쁜 꿀벌은 지칠 틈도 없다지

그래서 하루하루를 바빠지려고 해

그렇게 혼자 하는 하루가

바빠 지쳐할 틈도 없게끔

그러다 가끔 한 번씩은 널 생각할 여유라도 생기면

한숨 한번 짓고 말면 되겠지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벚꽃나무가 없다. 이전에 살던 동네는 집 앞에 작은 벚꽃나무가 참 이뻤는데, 지금은 조금 삭막한 동네. 창문 아래 아스팔트 위에 벚꽃 잎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때가 오면 이 거리도 조금은 부드러워 보일까. 창가에 기대어, 바람이 흔들어 놓은 풍경을 오래 바라볼 수 있을까. 짓눌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창가 앞에 선 눈은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저 흐린 시선으로 바깥을 바라볼 뿐. 벚꽃이 필 때쯤 다시 오기로 다짐했다.



"창가에 서 있는 건 착각이었다. 기다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벚꽃을 기다리기로 다짐했다. 조금 싫증을 느낄 때는 짙은 한숨을 한번 내쉬면 되었다. 뒤돌아 서려하면, 아쉬움에 옷을 여미고 창가에 기대어 보았다. 몇 시간이 지났다. 벚꽃 네댓 개가 휘날리나 싶다가 이내 곧 그대로 휘날려 갔다. 하늘에서 내린 벚꽃은 금방이라도 다시 올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하루를 이겨보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그건 눈속임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싫증이 날까 싶다가도, 잠깐 날아든 벚꽃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오늘 하루는 조금은 길어졌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이겠지, 조금은 바빠져 창가에 서는 일이 없어졌다가도, 혼자 하는 하루가 길어져 여유라도 생기면, 기다리는 일이 아닌 척 눈속임으로 한 번 더 창가에 서볼게.

"조금 싫증이 날 땐, 한숨 한 번. 그리고 다시 창가에 서서, 아닌 척."




keyword
이전 25화p25. 2차원으로 바라보기; 비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