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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 1차원으로 바라보기; 격량의 계절

"그때, 바람이 부는"

by 그리울너머 Mar 13.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잠시 머뭇거릴 틈도 없이, 계절이 오는 그 순간 언제나 찰나는 늘 격랑처럼 몰아친다.

  꽃이 핀 봄이 지나고, 여름. 그리고 또다시 형형 색색의 가을. 가을은 지난 계절을 거두어들입니다. 햇살 아래 익어간 곡식들을 품에 안고, 남은 것과 사라진 것을 헤아려 봅니다. 가을의 바람은, 여름의 무더위를 그리고 물들기 전의 단풍도 밀어냅니다. 갑자기 바뀐 기온의 계절에 공허함은 선명했습니다. 공허함이 가시지도 않은 채 찾아오는 겨울 앞에서 작아지는 나는 아름답습니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겨울의 냄새를 아시나요? 여름 바다의 냄새는 복잡한 것들이 가득했다면, 겨울의 숨결은 깊이 들이마실수록 더 비워집니다. 겨울 공기의 신선함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한구석 저미듯 흩어졌습니다.


 문득 밤바다를 떠올렸다. 하지만 겨울의 공기는 그마저도 차갑게 지워버렸다. 당신의 계절은 어디쯤일까요?



 모처럼 우리는 만났다. 겨울의 시작이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어쩌면 겨울은 가을보다 바람이 더 많이 불지 몰라. 추운 겨울밤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고, 주위엔 아무도 없지만, 너에게 필요한 사람은 딱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울지 않는다는 네가 내 품에 잠시 기대었을 때, 싸늘한 밤바람 속 한숨 섞인 울음소리는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외로움에 기대고 있는 네가 미웠다. 그런 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너는 항상 좋은 사람이야”


 나에게 가끔씩 말하는 너는 밉다가도, 좋았다.


 가끔씩 하는 말. “그 영화 개봉했던데?”


 하루가 넘어갈 무렵, 영화를 보는 내내 잠에 들었다. 무겁게 짓누르는 이 공간에서, 너무 많은 너의 모습. 살며시 너의 이름을 부르는 울림에 너는 한 번 더 뒤척였다. 네가 계속 기대면 계속 기대하고 싶다. 수 많았던 추억 속에서 함께 있으면 편하다던 네가, 계속 기대어갔으면. 함께 있으면 편하다던 네가, 아픔 없이 사랑하기를. 잠시 졸았다 깨어 보니 너의 숨소리만 들렸다. 창밖은 해가 떠오르고 긴 밤에는 눈이 왔다 갔다. 차가운, 겨울 철없던 나의 막막함을 너는 알고 있을까. 변질된 기댐 속에서 나의 마음은,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너의 웃음소리에 기대했었다     

너의 미소에 기대었었고     

너의 눈웃음에 설레었었다     

가끔은 울기도 하는 네가     

가끔은 기대어 갔으면 했었고     

가끔은 한편으로 미워지기도 했다     

너무 이기적 이게도

너는 그렇게 잠시 잠시 다가왔었다

잠시 잠시 기대었었고

잠시 있다가 가버렸다         

                                                                                                     




‘스물몇 살 나이에 기댈 곳이 많지 않지.’


저녁 늦바람 부는 쌀쌀한 겨울 날씨에 고깃집으로 향한 발걸음에. 우리는 술에 기대어 너는 나에게 기대었고 나는 너에게 기대했지. 웃음소리에 너에게 기대하는 걸까, 너에게 기대는 걸까. 술기운에 이것은 분명 “술기운에 기대는 그런 거야” 하고 생각했지. 잘 울지 않는다는 너는 가끔은 울기도 했으면서 가끔은 기대어 갔으면 했다.


스무 살 내기 홀로서기는 그렇게 고민이 많았나 보다. 너는 그렇게 잠시 잠시 다가왔다가도, 잠시 잠시 기대어 갔고, 잠시 기대어가길 바라면서도, 잠시 기대고 가는 네가 미웠다. ‘기대를 하면 기대게 된다.’는 말이 있다. 기대는 것과 기대하는 것은 ‘너’와 ‘나’의 모습이 다르다. ‘잠시’와의 시간마저 다르다. 그렇게 변질된 기대 속에서, 나는 기대를 하면서, 네가 기대어 갔으면 했다.


내가 계속 기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네가 잠시만 기대어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하루 더 너에게 사랑을 배웠던 것만큼, 언제 그랬냐는 듯 언젠가 또 기대어 갔으면 좋겠다. 지친 위로의 말은 언제든 해줄 수 있으니,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내게 사랑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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