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거리"
우연일까요? 의지일까요? 가끔은 우연에도 의지가 있습니다. 보고 싶었던 마음을 스스로를 속이며 기대를 눌러보지만, 마치 영화처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잠시 숨을 멈추며 머뭇거렸을 테고 지나온 시간을 조금 후회하겠죠, 조금은 용기를 내볼걸. 처음 만났을 때처럼 우연히 "조금 더 머물렀다면" 하는 여운. 당신은 어땠을 까요? 잠시 멈춰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면 놀란 마음을 들켜 뒤돌아 도망가볼까? 아니면 나처럼 모른 척 지나가볼까? 오늘도 창 밖을 바라봅니다. 우연은 의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 보고 싶지 않았나요?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보고 싶지 않다고 단념해버리면 당신을 보았을 때 조금은 담담할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 그럼, 우연이었을까요?
잘 가던 길이 아니었어요. 평소라면 돌아가지 않았을 길, 그날따라 일부러 돌아 나왔던 길. 그리고, 마주쳤습니다. 마치 작은 틈 사이로 스며든 빛처럼.
― 당신은 피하려 했나요?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피하려는 걸음이 멈춰 섰어요. 연습했던 담담함은 잊어버린 채 그대로 긴장했습니다. 한번 마주치길 바랐었지만, 애써 못 본 척 지나쳤습니다.
잘 가던 길이 아니었지만 한 바퀴 빙 돌아가던 학교 옆 오르막 계단에는 당신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피하고 싶은 인연이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을 때 그렇게 우연처럼 다가왔습니다.
"정말 고차원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얼굴. 고민할 것 없이, 당신이 있을 것만 같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확했습니다."
"아마도 너무 쓸데없는 우연인 것 같습니다."
"우연에도 의지가 있을까요."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옷매무새는 당신을 만날 것처럼 섬세했습니다. 멀찌감치 서서 혼자 우연이라고 가정하고 나서는 발걸음에는 어쩔 수 없다며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작은따옴표처럼 우연의 의지는 저만 갖고 있는 기대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발이 다가가는 발걸음에, 창밖을 바라보는 느낌에, 오늘따라 느낌이 그러했습니다.
‘정말 고차원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확했으니까요.’
‘너무 쓸데없는 우연인 것 같습니다.’
‘우연에도 의지가 있을까요.’
매일 가던 길이 아니었는데,
그냥 가고 싶어서 갔더니,
우연히 너를 만났다.
너는 그러했을까?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그냥 오늘따라 느낌이 그러해서 보았더니,
네가 있었다.
너는 그러했을까?
네가 있을 거 같은 기대감에,
갔더니 있었다.
나는 그러했다.
지나친 기억을 집어내어 표현할 때는 과묵해야 합니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전의 내가 그랬듯이 당신을 마주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정말 고차원적인 발상입니다. 그때를 회상하는 일은 왜곡되지 않아야 합니다. 비교적 사실에 가까워야 합니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 번 더 마음이 지쳐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꿈을 꾸었을 때 당신을 만나러 가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확했지만, 단지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깨달았습니다. 쓸모없는 우연도 있다는 것을.
우연에도 의지가 있을까요, 해야 할 일들은 늘어놓고 나서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우연을 기다리겠습니다. 망설이면서도 바라게 되는 마음,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니지만, 섬세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당신도 그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우연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지나온 실수는 하기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친 기억이라도 집어내어 표현하는 마음은 과묵해야 합니다. 때문에, 핑계에 대한 답을 알면서도, 자꾸 핑계 대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연의 의지를 빌리려 그러는가 봅니다.
‘정말 고차원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확했으니까요.’
‘너무 쓸데없는 우연인 것 같습니다.’
‘우연에도 의지가 있을까요.’
오늘따라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달이 너무 이쁘게 떠올랐으니까요.
우연이라도 당신을 마주치려 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