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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 May 30. 2024

달라진 건 없어, 그렇게 생각해

부정도 그렇다고 긍정도 아닌 임신 초초기




© elnazasadi, 출처 Unsplash



좋은 일이었다.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논문도 마쳤고, 이사도 했고, 이 정도 나이면 아이 때문에 나의 젊은 날을 다 소진했다는 생각 같은건 안할 것 같았다. 더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어쩌면 너무나도 적당한, 좋은 때에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준비 여성 5명 중 1명이 '난임'(2023년 4월 기사)이라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오늘날 자연임신이라니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미안하지만) 어쩐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 너무 초기이고, 실제로 초기에는 자연유산, 화학유산이라고 하는 그런 일들도 많이 벌어지니 우선은 기다려보자 싶었다.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지만, 조심하고 싶었다. 아니,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처음 두 줄을 확인한 그 날 이후로 매일, 몇 차례에 걸쳐 임테기를 해보았다. 검색해보니 매일 해서 색이 진해져야 임신이 유지되는 거라고 했다. 너무 일찍 병원에 가봤자 심장소리도 못 듣고, 아기집 확인도 못할 거라 했다. (정말 맘카페에는 없는 게 없다.) 그래서 기다리기도 했다. 궁금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그냥 예전처럼, 늘 그래왔듯이 나의 삶을 살면 된다고 그렇게 되뇌였다.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나는, 방학 시즌이 가장 바쁘다. 사실 특별히 안 바쁜 시즌이 있을까 싶지만 일 년 중 여름, 겨울에 큰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에 슬슬 분주한 일들이 몰려왔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없던 모임들이 생기기도 하고, 야근도 생기고 말이다. 친한 언니는 임신한 순간(?)부터 뭔가 냄새가 달라지고 몸이 훅훅 달라지는게 느껴졌다던데, 나는 잘 느끼지 못했다. 정말 느끼지 못한 건지, 의도적으로 달라진게 없다고 생각한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심한다고 특별히 달라질까, 조심하지 않으면 달라질까.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한창 바쁠 때이니 어쩌면 무리가 될 수 있는데 그럼 어떡하나. 아니, 어쩌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니 원래 하던대로 하는게 나을지도 몰라. 임신 초초기의 마음가짐이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미안. 미안해.


아무 생각 없이 축하하고 기뻐했으면 좋았으련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갈팡질팡 못했나 모르겠다. 어쩌면, 나 뿐 아니라 남편도 그랬던 것 같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서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지만, 내가, 우리가 준비되었냐고 묻는다면 마냥 기뻐하기보다는 부담, 그래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 서로의 속내를 살짝 감춘 채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나의,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그 일이 정말 일어난 건지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하지 않기로. 




© akramhuseyn, 출처 Unsplash


처음 임신을 확인하고 3주가 지나서야 집 근처 산부인과에 갔다. 혼자서 갔다. 만약 아니면 그 실망감을 남편과 함께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굳이 출근한 남편에게 시간을 따로 내달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확인해보고 싶었다. 진짜 그 일이 벌어졌는지. 

병원에 가서 맘카페에서 알려준 대로 준비한 내용을 말했다. 마지막 생리일은 언제인지,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한 날은 언제인지. 그리고 그날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힘차게 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나와 같은 배에 탄 새로운 생명을 말이다. 


말로만 듣던 아기집 그리고 심장소리




같이 올걸 싶었다. 와, 심장소리를 처음 듣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같이 올걸. 

세상이 좋아져서 어플로 내가 본 영상과 들은 소리를 반복해서 보고 들을 수 있지만, 처음 보고 들은 그 순간은 나만 경험하기 아깝게 느껴졌다. 


여전히 나는 새롭게 찾아온 이 생명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크게 바뀌지 않기를 바라며, 바뀌지 않게 하겠다 다짐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말랑해졌다. 새로운 시작을 어쩐지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이한 내 생일. 많은 이들의 축하가 오갔지만, 이 비밀을 아는 나와 남편은 그 누구보다 더, 그 해 생일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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