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토끼 Nov 09. 2022

여행 꼭 가야 하나요.

여행 강박을 갖고 있는 엄마입니다 ㅜㅜ

 개근 거지라는 말이 생길 만큼, 여행은 초등학교 시절에 필수 항목이 되어 버렸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의 자존심은 차치하고서라도, 아이들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말을 주변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그런지 연휴나 대체휴일에 여행을 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기 봄방학에 단기 가을방학, 교장 재량휴일까지 쉬는 날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게다가 중학생이 되면 애들이 같이 안 간다는 둥, 시간이 없다는 둥, 그리하여 꼭 초등학생 때 열심히 가야 한단다.


 어느 집이든 엄마나 아빠 중에 상대적으로 귀가 얇은 사람이 이런 강박에 시달리게 되는데, 우리 집에서는 내가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나날이 안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딜 가나 검색에 검색을 반복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1년에 봄, 가을 두 번 가족여행만 가는 것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나름 정책(?)을 정리했더니, 마음은 좀 편안해졌다. 년 2번을 제외한 연휴는 그냥 당일로 어디를 다녀오거나, 동네에서 신나게 노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이들도 우리는 봄과 가을에 가족여행 간다는 명분(?)이 생겨 다른 아이들의 여행 소식에 딱히 흔들리지 않아 했고, 더 이상 휴일마다 '엄마 우리 이번에 어디가?'라고 묻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친구들이 하나 둘 캠핑을 가기 시작했다. 텐트에 의자에, 식탁을 멋지게 차려 들고 캠핑을 간단다. 내가 아는 그 궁색하고 낭만만 있는 캠핑이 아니라,,, 장비 발 뿜 뿜 하는 럭셔리 캠핑이더라. 아니 왜 깔끔한 호텔, 리조트 놔두고 여름엔 습하고, 겨울엔 추운, 봄/가을엔 예약 전쟁으로 얼룩진 캠핑을 가냐고~ 지금까지는 나만 안 가면 되는 거라 아무리 주변에서 캠핑을 찬양해도 흘려 들었지만, 아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엄빠랑 같이 가서 불멍도 하고 물멍도 하고 바베큐도 먹어야지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캠핑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건만, 또 이 엄마의 안달병이 문제지. 왠지 다른 사람 하는 것은 다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 그 휘황 찬란(?)한 장비를 갖출 엄두는 나지 않고, 그래서 몸만 가면 다 해주는 리조트였는지 호텔인지를 찾았다. 바베큐 패키지가 있어, 음식 준비도 하지 않고 나름 깨끗한 곳에서 별도 보고, 불멍도 하고, 고구마도 굽고, 꼬치도 해 먹는 딱 나한테 알맞는 상품이었다.


거기까지가 딱 좋았는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이 붙어 시간제한 없이 마냥 앉아서 낭만을 즐기려는 마음에 바베큐장이 있는 펜션에 도전했다. 쌈장에 돼지고기, 깻잎, 밥, 김치만 딱 준비해 갔는데 정말이지 처참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옆 테이블에 아마도 바베큐 전문가들인지 수박에, 대하에, 닭꼬치, 생선구이, 치즈구이, 김치찌개 뭐 없는 게 없도록 음식을 챙겨 왔던 것이다. 모두 똑같은 음식 시켜먹는 리조트에서는 박탈감이 없었지만, 자유 경쟁(?) 환경에서는 너무도 초라하여 아이들이 옆 테이블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웃픈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 후로는 글램핑류는 하지 않기로 했다;


 큰 아이가 고학년인 지금, 처음 계획한 대로 봄/가을 가족여행을 열심히 지키고 있다. 아이들을 키워 본 많은 부모들은 말한다. 어릴 적 여행 간 것 하나도 기억 못 한다고~ 나도 동의한다. 돌아보니 어린아이일 때 견문을 넓히는 방법은 여행 말고도 무수히 많다. 베란다에서의 물놀이, 비 오는 날 달팽이 찾기, 놀이터에서 흙 만지기, 공벌레 갖고 놀기(더럽지만 좋아함), 뒷산 숲 체험장에서 놀기 등 집 밖에만 나가도 신기한 나이인데, 굳이 먼 여행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엄마의 내려놓음이 필요할 뿐. 그러므로 돈과 계획이 필요한 여행은, 가급적 초등학생 이상 때 가는 것을 추천한다.


 가족 여행 장소로는 엄빠의 정보력이 정확하겠지만 워낙 고전 장소들을 찾다 보니(대명~, 롯데~ 이런...) 오히려 아이가 책에서 본 맛집, 사회책 유적지(은근히 첨성대를 좋아함), 좋아하는 유투버가 추천하는 곳 등 아이의 관심을 반영하여 정하는 것이 신선도 측면에서 나을 수 있겠다. 머리 큰 부모 기준에 맞추기보다, 아이의 기준에 맞추면 비용도 낮출 수 있고, 만족은 높일 수 있으니 혼자 너무 머리 싸매지 말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자. 아이들은 의외로 부모랑 노는 것 자체를 좋아하니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