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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토끼 Oct 27. 2022

생파는 언제 해주지

4학년 때 홈파티해주면 생기는 일

아이의 생일파티는 초등학생 부모라면 한 번쯤 큰 고민이 되는 주제이다. 저학년의 경우, 보통 보호자도 같이 오게 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또 집에서 할지, 키즈카페 등 다른 장소에서 할지도 고민이 된다. 음식은 어떻게 공수할지, 선물을 주면 답례품을 준비해야 하나, 동생들은 오지 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할 것이 줄줄이 생기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게 된다.


1, 2학년 때는 친한 친구도 너무 쉽게 바뀌고,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고가 아이 관계뿐만 아니라 엄마들 관계에서도 민감사안이라 골치가 아프다. 고학년이 되면 돈만 있으면 코노에, 맥도널드로 자기들끼리 놀 것이니 생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그래서 나는 3학년으로 정했다. 엄마들이나 동생들이 따라오지 않는 제일 어린 나이! 생파에 다녀오면 그 선물 받는 친구 모습이 너무 부러워 나는 언제 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3학년에 할 거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생일상도 잘 차려주고 나도 나름 여러 가지를 상상해놓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결국 3학년 때 생파를 할 수가 없었다. 꼭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못하게 되니 어찌나 아이에게 미안한지. 이럴 줄 알았으면 1학년 때, 돈이 좀 들어도 해줄걸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때가 있으니, 하고 싶어 할 때 해주라던 친정엄마 말이 마음속에 하울링 되었다. 일찍 해줄 걸 후회하다가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이 되니, 친구관계가 더 복잡해지고 학원시간들까지 있으니, 생파 하기가 까다로워졌다. 5학년이 되면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코시국에 맞게 4명만 초대하여 조촐하게 홈파티로 진행하기로 했다. 아이는 앞으로 자기와 자주 만나고 지낼 친구들 중에서 초대할 친구들을 고심 끝에 정했고, 친구들이 오면 할 게임도 준비하며 기대에 찬 모습을 보였다. 나도 현수막도 준비하고, 닭강정에 샌드위치, 초콜릿, 김밥, 케이크, 과일 음료수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오면 보여줄 우리 아이 성장 영상도 간단하게 준비했다.


만든건 없는데 멋진 생일상!

생파 당일! 우리 집에 4학년들이 5명이 모였다. 4학년, 11살 아이들의 대화는 생각보다 어리지 않았다. 엄마 몰래 핸드폰 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성장 영상을 보더니 우리 엄마가 저런 거 만들면 엄청 쪽팔릴 것 같다는 여과 없는 감상평을 늘어놓고, 친구나 자기 부모 험담도 하고... 허허; 내게는 놀라운 문화 영접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음식도 많이 먹지 않길래, 뭐 더 먹을래? 라면? 하고 생각 없이 던졌는데,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긍정의 신호를 보낸다. 그래도 음식을 좀 먹었다 싶어 신라면 3개만 부랴부랴 끓여냈더니, 매울텐데도 국물까지 싹싹 비우는 게 아닌가? 그래서 더 끓여줄까? 물었더니, 세상에나 그렇단다. 정말 먹을 수 있냐고 세 번 물어본 후 2개를 더 끓여줬다. 집에서 라면을 안 준다며 가볍게 한번 더 엄마를 디스하고는, 너무 맛있다고 흡입하며 진짜 좋은 생파라고 후한 점수도 주더라. 아이 생일상에 라면 5개 끓일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실화라는 사실...


4학년의 생파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라면을 엄마 눈치 안 보고 맘껏 먹을 수 있는... 누구 험담을 눈치 보지 않고 깔 수 있는... 소파에 늘어져 수다를 떨 수 있는... 다른 날보다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갈 수 있는 구실인 것이다. 나는 좀 더 잘 짜여진, 우리 아이가 주인공인 그런 생파를 기대했지만, 아이는 너무 커버렸고 이런(?) 생파라도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 치른 생파가 우리 아이 기억 속에 '엄마가 나를 위해, 휴가를 내고 음식을 준비하고, 친구들에게 라면을 끓여줘서 친구들이 즐거워한 날'이라고 남을 테니, 그거면 됐다. 나중에 커서 어린 시절을 떠 올렸을 때, 생일파티의 기억 하나쯤은 선물해주고 싶었다. 제대로 된 기억을 선물하려면(천정에는 풍선이 주렁주렁, 큰 테이블에 초콜릿 과자 케이크가 잔뜩 쌓여있고, 내가 한가운데 멋지게 차려입고 고깔모자를 쓰고 앉아,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는...) 11살보다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해주는 것이 더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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