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삶의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에게 밝게 미소 짓는 경험조차 은은하게 기억될 수 있는 반면에 난폭운전, 남을 배려하지 않은 불친절한 행동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강렬한 기억을 남길 수 있다. 수치, 불명예, 후회, 증오, 분열, 상처와 같은 기억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감동과 전율을 주며 인간 존재의 아름다운 빛을 비춰주는 경험을 통해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기억될 것인가?
베토벤이 남긴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의미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인생이 의미 있어지는 때는 이 순간이 절대로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라고 한다. 건강을 잃게 되었거나, 성공가도에서 불쑥 고개를 쳐드는 삶의 공허함과 같은 감정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나게 해 준다. 근본적인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때가 마지막 1분도 채 남지 않은 죽음의 순간이어서는 곤란하다.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그걸 앞당겨 성찰하고 언제라도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은 가치 중심적인 행동을 더 하게 됨으로써 인생에서 보다 많은 의미를 채워나갈 것이다. 인간은 인생의 마지막에 살아온 가치와 의미를 반드시 되물을 수밖에 존재다. 삶의 의미와 가치에 집중하는 마음매력은 인생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가치 중심적 결정을 하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다.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는데,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간 경험과 남을 돕는 구제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라는 보물의 흔적이 남겨진 그곳에는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무엇을 추구했던 마음의 흔적도 같이 남아 있을 것이다. 곧 하늘에 쌓아둘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담는 것은 마음이고,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다 환전시켜 놓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남길 가치는 사랑이고, 천국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평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빛나는 시간을 잡아 영원한 희소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구현될 수 있다.
정신분석가 에릭 에릭슨은 노년기의 발달과제로 성공과 행복한 경험과 실패와 좌절, 고통을 수용하는 통합성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년기에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살아올 날들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며 자신의 생애가 가치 있는 삶이었는지를 음미해 보게 되는데, 그때 자신의 삶이 의미 있었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의식적으로 죽는 것이 더 두려워진다고 말했다.
노년기가 되어서나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이런 고민을 하면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아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진지한 고민을 평소에 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본질적 한계다. 죽음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사는 사람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대해 삶의 의미를 충분히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매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지나온 삶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웠고, 가치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지 하루마다 점검하고 결산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오늘 나는 삶의 의미와 가치라는 정신적 성과물을 일구며,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고 완성해 가는 삶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마다 죽음을 의식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필요한 현명한 삶의 태도일지 모른다. 서경(書經)에선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면, 대비를 하게 되고, 근심이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하루를 살아내는 삶, 주어진 하루란 삶에서 의미와 가치와 효용을 충분히 뽑아내는 삶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은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지 않은 죽음이란 운명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실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태도가 우리 삶의 가치와 품격을 지킬 수 있다.
오늘 하루 내가 머무른 곳에서 나는 아름다웠는가? 오늘 하루 소중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가치 경험을 제공했는가? 자신이 믿는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본다 해도 한 점 부끄럼이 없었을까?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자신에게 중요한 내적가치를 떠올려보고, 가치에 걸맞은 행동을 일상에서 실천했는지 돌아보자. 그러면 죽기 전에 인생의 의미를 결산해야 하는 단판 판결을 받는다는 부담감은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의 정신분석가 캘빈 콜라루소는 ‘죽음이란 잘 살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간 존재의 자연적인 종말’이라 죽음을 정의했다. 삶의 가치를 만들고, 의미를 이루는 품격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잘 죽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고, 세상에 남겨진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나마 덜 아쉬워하며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면서 그저인간답게 살아가겠다는결심을 새겨본다. 감사합니다.